미국 칼턴 대학의 역사학과장인 윌리엄 노스 교수.
미 칼턴대 노스 교수 ‘국정화 비판’
“풍부한 관점과 큰 통찰력은
많은 사람들을 통해
활발한 토론을 통해 얻어져
정부가 역사해석 독점할 경우
권력이 진실을 결정하게 돼”
“풍부한 관점과 큰 통찰력은
많은 사람들을 통해
활발한 토론을 통해 얻어져
정부가 역사해석 독점할 경우
권력이 진실을 결정하게 돼”
미국 미네소타주 칼턴 대학의 역사학과장인 윌리엄 노스 교수는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박근혜 정부의 역사 교과서 국정화 추진과 관련해 “이 문제는 한국에서 발생했지만 어느 나라에서나 발생할 수 있는 일이며 우리가 어디에 있는지를 돌아보게 하는 문제이기 때문에 관심을 갖게 됐다”고 밝혔다. 노스 교수는 특히, 한국 정부에 “(역사에 대한) 다양한 견해의 존재는 국가의 약함이 아니라 강함을 보여주는 것이고, 그 자체로 국가적 자부심의 원천이 되는 것”이라고 조언했다. 1866년 설립된 칼턴 대학은 ‘숨어있는 아이비리그 대학’이라고 불릴 정도로 교양 및 인문학 분야에서 상위권을 기록하고 있는 미국의 유명 사립 대학이다. 인터뷰는 지난 19일(현지시각) 전화와 전자우편을 통해 진행됐다. 다음은 노스 교수와의 일문일답이다.
-어떤 국가가 역사교과서를 통제하려는 시도가 세계적 추세와 맞는다고 생각하는가? 특히 민주주의 국가에서 말이다.
“많은 국가들이 역사나 사회 등의 교과목에 대해 교과기준을 개발한다. 예를 들어 한국 정부가 고등학교 학생들에게 국가 제도의 속성이나 기능, 핵심 문서, 법률 체계 등을 배우도록 요구한다면 이것은 아주 정상적이고 칭찬할만한 것이다. 국민들이 정부에 대해 더 잘 이해하고 참여할 수 있도록 해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국 정부의 최근 결정이 독특한 이유는 역사 교육의 모든 요소들을 정부의 손으로 통합하겠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정부가 역사교과서의 내용과 그 내용에 이르는 접근법, 이런 것들이 표현되는 방식 등을 결정하려 하는 것이다. 정부의 초청장이 없으면 다른 견해나 목소리들은 들어설 공간이 없게 된다.
이러한 정책은 세계적 추세와 병행하는 것인가?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 병행한다는 측면에선 지구상의 몇몇 특정국가들 안에서 ‘역사적 보호주의’라 불릴 수 있는 추세가 있다. 그것은 국가에 대한 특정한 생각이나 국가의 특정한 면에 도전할 수 있는 순간이나 인물, 주제 등과 관련된 논의를 제한하고 억압하려는 흐름이다. ‘아니오’ 측면에선, 한국 정부의 결정은 세계의 대다수 지역에서 더 활발하고 개방적이며 질문 중심의, 그리고 다양한 목소리를 내는 공공 영역의 발전과 역행하는 것이다. 한국은 분명히 역사적 보호주의와 역사적 개방주의라는 두가지 충동을 모두 갖고 있다는 점에 주목하고 싶다. 희망컨대, 한국이 역사적 개방주의가 실제로 잠재력을 충분히 실현하는 데 더 좋은 길이라는 점을 알았으면 좋겠다.”
-중고등학생에게 역사에 대한 단일한 관점만을 가르치려는 한국 정부의 결정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중학교나 고등학교 등) 어떤 수준의 교육기관에서든 단일한 역사관을 부과하려는 계획은 두가지 이유에서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첫째로, 그것은 기본적으로 역사의 속성을 질문과 탐구 과정이 아닌, 하나의 결과물로 오해하는 것이다. 물론, 역사가들은 과거 사건과 그 이유에 대한 서술을 만들어낸다. ‘그러나’, 역사가들은 완전히 포착하기 어려운, 우리의 능력을 뛰어넘는 사회와 사안의 복잡성을 이해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함으로써 그런 서술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또한 이런 작업은 확인하고 해석해야만 하는 일련의 증거들의 기초 위에서 이뤄지는 것이며, 그조차 끊임없이 변화한다. 따라서 ‘올바른 역사’ 교과서를 만들어냈다고 주장하는 기관이 있다면, 그것은 두가지 가운데 하나를 의미한다. 하나는 더 이상 논쟁의 여지가 없을 정도의 아주 기본적인 사실들만을 포함했다는 것인데, 이것은 전혀 역사가 아니다. 다른 하나는 진정으로 ‘올바른’ 역사서술에 필요한 증거들이 제시하는 복잡하고 풀리지 않는 문제들을 무시해버리는 것이다. 이것은 모든 증거와 문제들을 적절하고 책임있게 해결한 것이 아니라 오직 한가지 견해만 허락됐기 때문에 발생한다. 이것도 전혀 역사가 아니며 일종의 이데올로기다.
역사에 대한 그러한 접근 방식은 불행이다. 암묵적으로 권력이 역사적 진실을 결정할 능력을 갖고 있고, 가져야 한다고 선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거의 불가피하게 역사를 정치권력의 노예로 만들 것이며, 지배집단에 봉사하도록 끊임없이 역사를 바꾸도록 할 것이다. 그러한 유일 견해는 젊은 층에 퍼졌을 때, 젊은이들도 진실에 대한 비슷한 접근을 추구하도록 하거나, 공개적으로 무엇인가를 얘기하는 것에 대해 자신감을 상실하도록 만들 것이다. 기업 임원이 ‘올바른 이야기’를 하기로 결정하고, 잘못된 결정이나 실수, 재고 요청에 대한 설명을 억누른다고 상상해봐라. 국민과 국가는 과거 성공과 실수를 무시하거나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배움으로써 점점 더 강해지고 똑똑해진다.”
-역사 교사나 교수들은 역사 해석의 다양성을 인정해야 한다며, 한국 정부의 결정에 반대하고 있다. 그런 주장에 동의하는가? 그렇다면 그 이유는 무엇인가?
“전적으로 동의한다. 왜냐하면 풍부한 관점과 커다란 통찰력들은 어떤 증거를 바라보는 서로 다른 많은 사람들을 통해, 그리고 활발하고 집중적인 토론을 통해 얻어지기 때문이다. 마치 의사들이 까다로운 사례에 부딪혔을 때 최대한 폭넓은 이해를 위해 서로 다른 사람들과 상의하는 것과 비슷하다. 이처럼 사람들도 어떤 증거에 대해 많은 해석자들의 의견을 들어야 한다. 어떤 사람은 정치적 차원에, 다른 사람들은 경제적 차원에, 또 어떤 사람들은 성(gender) 문제나 문화적 측면에 초점을 맞출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관점들을 묶음으로써, 또한 다양한 관심들을 갖고 있는 사람들을 묶음으로써, 궁극적으로 역사적 이해가 강화된다. 더 중요한 것은 진실이나 가장 좋은 해답은 진행 중에 있는 것이며, 증거에 기반한 논쟁을 통해 나타난다는 점이다. 건강한 민주주의를 위해 이보다 더 중요한 생각은 없을 것이다.”
-정부가 역사 해석을 독점할 경우 구체적으로 어떤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생각하나?
“정부가 역사해석권을 독점하려는 노력은 수많은 문제를 야기할 것이다. 우선, 권력이 진실을 결정하고, 또한 결정해야 한다는 생각을 강화할 것이고, 따라서 역사는 승자에 의해 쓰여지고, 쓰여져야 한다는 생각을 강화할 것이다. 두번째로, 자신의 역사에 대한 해석권자로서의 한국인의 능력을 약화시킬 것이다. 한국인들은 복잡함으로 가득찬 증거 대신 특정한 범위의 수용할만한 증거나 해석에만 노출될 것이기 때문이다. 세번째로, 각 국가들이나 특정 집단의 평판을 보호하기 위해 “자신의 역사를 수호해야 한다”는 생각들을 세계적으로 조장할 것이다. 이러한 접근은 각 국가 및 집단간 서로 대화할 수 있는 능력을 침해할 것이다. 증거에 기반한, 공통의 이해를 위한 기초는 없고 자신의 평판과 자부심만을 보호하려는 국가들만 존재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진지한 역사적 연구가 가져다주는 세심함이나 조심성 대신에 자부심만 가진 국가들간의 갈등을 유발할 것이다.”
-미국 교과서 채택 시스템에 대해 설명해줄 수 있겠나?
“미국의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교육은 고도로 지방분권적이며, 민주적으로 선출된 지방이나 주정부의 학교 이사회가 상당한 권력을 갖고 어떤 교과서를 선택할지, 어떤 교과과정을 선택할지 결정한다. 결과적으로, 주마다, 지역마다 미국 역사 교육이나 다른 교과 교육에 대해 상당한 다양성이 존재한다. 물론 이러한 지방 수준의 정책 결정자들이 항상 다양한 목소리나 비판적 관점을 선호하는 쪽으로 결정하지는 않으며 잘못도 한다. 그러나 전반적으로 이용가능한 광범위한 관점과 접근법들이 있으며, 서로 다른 강조점과 접근을 취하는 폭넓은 교과서가 존재한다.”
-한국의 국정교과서 추진을 일본의 교과서 왜곡과 비교하면 어떨까?
“일본에선 1990년대 후반부터 일본의 제국주의 군사적 활동에 대한 역사를 더 우호적으로 가공하려는 시도가 있어왔다. 아베 신조 총리도 이러한 노력에 동조적이었으며 교과과정에 있는 ‘자학적 역사관’을 끝내기를 원하고 있다. 중국의 난징 대학살이나 한국의 종군 위안부가 두 주제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행동에는 ‘국가’를 보호하기 위해 역사를 통제해야 한다는 생각들이 있다. 역사해석의 다양성이 분열과 혼란을 초래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역사 교육에서 가장 중요한 기준이나 가치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역사를 특정한 서술이 아니라 방법으로 간주하는 것, 역사적 증거를 찾기 위한 엄격한 입장, 그리고 증거에 대한 주의깊은 해석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역사는 비판적 사고를 키우고, 사람들에게 인간과 생활 영역 간의 복잡한 상호연관성을 알려주고, 특정 시기나 발전 단계에 대해 이해하려고 노력함으로써 시대와 문화를 넘어 공감하도록 북돋우는 것이다. 역사는 다양한 종류의 행동, 선택, 세력들의 결과를 비판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일종의 실험실을 제공하는 것이다. 궁극적으로 역사적 작업은 누구 편을 드는 것이 아니고, 제한된 증거 속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고, 왜 그리고 어떤 결과를 초래했는지 판단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런 작업은 과거에 대한 환상이나 신화에 기초해 이뤄지는 것이 아니며, 증거의 토대 위에서 과거의 행동과 생각들을 정직하고 철저하게 이해하는 것에 기초한 것이다. 과거에 대한 더 행복한 버전을 만들어내 현재를 보호하는 식으로 역사를 만들어내는 것은 궁극적으로는 치유도, 학습도 제공하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한국 정부에 하고 싶은 조언이 있다면 얘기해 달라.
“현재의 접근법은 옆으로 치워놓고, 역사에 대한 다양한 견해가 존재함을 고려해 보라는 것이다. 다양한 견해의 존재는 국가의 약함이 아니라 강함을 보여주는 것이고, 그 자체로 국가적 자부심의 원천이 되는 것이다. 나는 역사 해석을 통제하거나 동질화하는 것이 아니라 증거에 기반한 역사 해석 방법론의 교육이나 활발한 질문, 공정한 평가, 토론에 대한 개방성 등 ‘역사 문화’를 강화하는 데 투자하라고 권하고 싶다. 이러한 접근법은 한국이 역사, 그리고 토론이나 논쟁에 두려워하지 않게 만들 것이다.”
워싱턴/이용인 특파원yy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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