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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미국·중남미

‘힐러리는 소아성애자’ 뉴스가 말하는 것

등록 2016-12-23 20:58수정 2016-12-23 21:10

[토요판] 다음주의 질문
영국의 <가디언>은 최근 2016년을 달군 음모론을 다뤘는데, 이 중에는 ‘힐러리 클린턴은 죽었고, 그 대리인이 활동했다’는 내용도 포함돼 있다. 사진은 힐러리 클린턴의 선거 유세 장면. AP 연합뉴스
영국의 <가디언>은 최근 2016년을 달군 음모론을 다뤘는데, 이 중에는 ‘힐러리 클린턴은 죽었고, 그 대리인이 활동했다’는 내용도 포함돼 있다. 사진은 힐러리 클린턴의 선거 유세 장면. AP 연합뉴스
정의길 국제뉴스팀 선임기자 Egil@hani.co.kr

‘지구는 평평하다’, ‘미국 공화당 대선 경선주자였던 테드 크루즈는 연쇄살인범이다’, ‘피델 카스트로는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의 아버지이다’, ‘힐러리 클린턴은 죽었고, 그 대리인이 활동한 거다’, ‘기후변화는 중국이나 유엔의 거짓말이다’, ‘도널드 트럼프는 민주당의 간첩이다’….

영국 <가디언>이 21일 보도한 2016년을 달군 음모론들이다. 올해 들어 음모론은 술자리 뒷담화에 머물지 않았다. ‘페이크 뉴스’(가짜 뉴스)로 발전해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정치 이벤트인 미국 대선에도 영향을 미쳤다.

미국 대선이 절정에 오르던 지난 10월30일 미국의 한 백인우월주의자는 트위터에 뉴욕경찰국이 민주당원들이 연관된 아동매춘단을 적발했다는 글을 올렸다. 뉴욕경찰이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대선 후보의 최측근 후마 애버딘의 남편 앤서니 위너의 섹스팅 스캔들을 조사하다가 그의 컴퓨터 이메일에서 이를 발견했다는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후보 지지자들, 특히 대안우익 세력들은 위키리크스에 의해 폭로된 힐러리 진영의 선대본부장 존 포데스타의 이메일에서 소아성애와 인신매매를 뜻하는 암호를 찾았다며, 그 주장과 연결시켰다. 포데스타와 그의 로비스트 동생의 만찬 약속에 ‘치즈 피자’(cheese pizza)라는 단어가 있는데, 이는 아동포르노(child pornography) 단어의 약자 ‘c.p’와 같다는 것이었다. 이는 곧 포데스타가 워싱턴의 피자 식당 ‘코밋 핑 퐁’의 주인과 연락해, 그 식당에서 아동매춘이 벌어진다는 페이크 뉴스로 발전했다.

이어 ‘인포워즈’, ‘플래닛 프리 윌’, ‘비질런트 시티즌’ 등 페이크 뉴스 사이트를 통해서 유통되면서, 그 식당에서 클린턴과 참모들, 심지어 팝스타 레이디 가가까지 합세해 아동매춘뿐만 아니라 피와 골수를 마시는 악마교 의식도 거행했다는 엽기적 뉴스로 번져갔다. 특히 뉴욕경찰이 클린턴의 집을 급습해 증거를 찾았고, 연방수사국도 이를 확인했다는 그럴듯한 뉴스도 번졌다. 이 페이크 뉴스는 결국 지난 4일 한 백인 남성이 코밋 핑 퐁 식당을 찾아가 진상을 규명하겠다며 총기를 난사한 사건으로 번졌다.

트럼프 차기 행정부의 국가안보보좌관에 지명된 마이클 플린 전 국방정보국장도 트위터에 “당신들이 판단해라-뉴욕경찰국이 새로운 힐러리 이메일에 호각을 불었다: 돈세탁, 아동섹스 범죄 등… 필독!”이라는 글을 올리며 관련 페이크 뉴스를 링크했다. 그의 비서실장 역할을 했던 아들도 코밋 핑 퐁의 총기난사 사건이 난 뒤에도 “피자 게이트는 허위로 증명될 때까지는 이야기로 남을 것이다. 좌파들은 포데스타의 이메일과 이와 연관된 많은 우연의 일치를 잊어버린 것 같다”는 글을 트위터에 올렸다.

클린턴의 소아성애 페이크 뉴스는 이제 전통적인 음모론으로 결국 귀결되고 있다. 일루미나티라는 세계적 차원의 비밀 결사조직이 중앙정보국 등 각국 정보기관을 장악해서는 세계를 자신들의 지배하에 두려 한다는 음모론이다. 클린턴이나 버락 오바마는 일루미나티에 뿌리를 둔 글로벌리스트(세계화주의자)들이라는 것이다. 헛웃음도 나지 않는 이야기이나, 이는 미국 등에서 다른 정치적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글로벌리제이션이 몰고 온 사회 양극화의 불만은 트럼프를 그런 글로벌리스트를 저지하는 영웅으로 보는 담론으로 발전했다.

20세기 초, 유대인이 세계를 지배할 음모를 꾸민다는 ‘시온장로의정서’라는 최악의 위조문서는 당시 1차 세계화의 조류에 휩쓸리던 중하류층이 유대인이라는 희생양을 찾기 위한 기폭제가 됐다. 이는 결국 나치의 유대인 박해로 이어지는 한 요인이 됐다. 아돌프 히틀러는 유대인의 세계 지배를 박멸하는 영웅으로 부상했다.

지금 난무하는 음모론과 이에 기반한 페이크 뉴스는 그때와는 다른 것인가?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클린턴은 소아성애자라고 주장하고, 트럼프 대통령 당선자는 기후변화가 중국이나 유엔의 농간이라고 태연히 말한다. 이들이 미국뿐만 아니라 세계 안보를 좌지우지할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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