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단적인 반이슬람·반중국 주장을 펼치는 스티븐 배넌 백악관 선임고문 겸 수석전략가가 국가안보위원회 수장회의 참석자가 됨으로써, 트럼프의 대외정책도 그의 영향력 아래 놓이게 됐다. 사진은 지난 대선 당시 배넌이 트럼프 유세 현장을 지켜보는 모습. AFP 연합뉴스
정의길 국제뉴스팀 선임기자 Egil@hani.co.kr
박근혜에게 최순실이 있다면, 도널드 트럼프에게는 스티븐 배넌(63)이 있다. 최순실은 박근혜의 미용 등 주변 신상을 챙기며 이권과 인사에 개입했다. 배넌은 트럼프의 이데올로기를 만들며, 미국의 정책과 정치를 장악하고 있다.
백악관 선임고문이자 수석전략가인 배넌이 국가안보위원회 수장회의 참석자가 됐다는 것은 트럼프의 대외정책도 그의 영향력 아래 들어갈 수 있음을 뜻한다. 글로벌 엘리트들이 세계를 지배하려 한다는 그의 극우 음모론은 백인민족주의에 입각한 반세계화 노선으로 이어지고, 이는 반중국, 반이슬람 전쟁을 수행하지 않으면 유대·기독교 서방은 몰락한다는 종말론으로 발전한다. 2014년 이후 그는 자신이 설립한 대안 우익 매체 <브라이트바트>의 라디오쇼인 ‘브라이트바트 뉴스 데일리’ 등에서 자신의 세계관을 여과 없이 드러냈다.
그는 2014년 우파 싱크탱크인 인간존엄연구소가 주최한 한 회의에서 “세계의 중산층, 일하는 남녀들은 이른바 다보스당에 의해 지배받는 것에 염증을 보이고 있다”며 스위스 다보스에서 매년 개최되는 다보스포럼의 참가자들을 세계를 조종하는 글로벌 엘리트로 지목한다. 미국이나 서방 국가들은 이런 세계화 음모에 맞서 주권을 회복해야 한다는 주장이 이어진다. “강력한 국가와 강력한 민족주의 운동이 강한 이웃을 만든다. 그거야말로 정말 서구 유럽과 미국을 세우는 구축물이다. 그게 우리를 전진하게 할 것이다.”
이를 위해 배넌이 제안하는 하나의 해법은 다자무역협정을 폐기하고 양자협정을 맺는 것이다. 그는 2015년 11월 자신의 라디오쇼에 출현한 트럼프에게 이렇게 말했다. “상원 3분의 2의 동의로 대만이나 일본과 양자협정을 맺어야 한다. 당신이 가서 주장해야 한다. ‘어이, 이게 좋은 협상이고 우리 건국의 아버지들이 원하는 것이다’라고 말해야 한다.” 트럼프와 그 행정부는 지금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등 다자자유무역협정을 폐기하고, 양자협상으로 가고 있다.
그는 2016년 3월 주권 회복은 이민 축소를 의미한다고 말했다. 그는 미국 기업에 해외로부터 고급 기술인력을 충원할 수 있도록 하는 H-1B 비자 프로그램을 비판했다. “실리콘밸리의 진보 금권정치가들이 세계를 돌아다니며 사람들을 미국으로 데려오는 무제한적인 능력을 가지려 한다. 공대는 남아시아, 동아시아에서 온 사람들로 가득 찼다. (…) 외국 학생들을 내보내 직장을 얻지 못하게 해야 한다.” 숀 스파이서 백악관 대변인은 최근 H-1B 비자 발급을 재고하겠다고 밝혔다.
극우 음모론에 바탕한 그의 세계관은 종말론으로까지 전개된다. ‘유대·기독교 서방’은 지금 전쟁중인데도 이를 알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는 2016년 2월에 라디오쇼에서 “팽창주의 이슬람과 팽창주의 중국이 있다. 그들은 결의에 차 있고 오만하다. 전진 중이다. 그들은 유대·기독교 서방이 퇴조 중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전쟁으로 위협받는 유대·기독교 서방이라는 그의 세계관에서 주축은 극단적인 반이슬람과 반중국이다. 이 당면한 적들에 대처하기 위해서 러시아와의 이견을 접고 연대해야 한다고 말한다. 러시아와 관계 개선을 추구하는 트럼프 주장의 배후이다.
그는 바티칸 회의 연설에서 “푸틴과 그 일족들은 정말로 도둑정치꾼들이다. (…) 하지만 러시아보다 더 큰 우려들이 있다. (…) 러시아를 잠시 뒤로 제쳐두자고 말하는 것은 아니나, 먼저 대처해야 할 우선 사안들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유대·기독교 서방이 이슬람 및 중국과 “실존하는 글로벌 전쟁” 중이라고 말한다. “우리가 전쟁 중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우리는 확실히 중동에서 다시 큰 전쟁으로 들어가고 있다.”
2016년 3월 라디오쇼에선 중국과의 전쟁을 예고했다. “우리는 5년에서 10년 사이에 남중국해에서 중국과 전쟁을 할 것이다.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들은 (거기에) 부동 항공모함을 만들고 미사일을 장착하고 있다. 그들은 여기 미국으로 와서 우리 면전에서 그건 옛날부터 우리의 영해라고 말한다.”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도 미국은 남중국해에 있는 인공섬 7개에 대한 중국의 접근을 막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런 봉쇄가 전쟁으로 이어질 것임을, 전문가가 아니라도 예측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