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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미국·중남미

트럼프 시대, 물만난 정치 풍자 코미디쇼

등록 2017-03-02 15:46수정 2017-03-02 21:49

SNL·레이트 쇼, 트럼프 풍자로 시청률 상승
볼드윈 “트럼프는 메인 작가” 비꼬아 칭찬하기도

진보적 콘텐츠 갈망하는 시청자는 충족시킬 수 있지만
심각한 이슈를 웃음거리로 전락시킬 수 있다는 비판도
<에스엔엘>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흉내내고 있는 앨릭 볼드윈. 유튜브 갈무리
<에스엔엘>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흉내내고 있는 앨릭 볼드윈. 유튜브 갈무리
“트럼프, 이거 텔레비전 법정이라는 거 다 아시죠?”(판사)

“괜찮아요. 나도 텔레비전 대통령인걸요.”(트럼프)

지난달 11일 방영된 텔레비전 프로그램 <새터데이 나이트 라이브>(SNL).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으로 분장한 배우 앨릭 볼드윈이 법정의 원고석에 서자, 피고석에는 연방항소법원 판사로 분장한 배우 3명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등장했다. 트럼프는 판사들을 향해 “내가 매우 위대한 행정명령에 사인했는데, ‘소위’(so-called) 판사들은 너무 무례했다”고 고함을 지르며 법원의 ‘반이민·난민 행정명령’ 효력 부활 신청 기각을 성토했다. 이어 트럼프 쪽 증인으로 등장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트럼프는 나의 귀여운 해피밀(맥도날드 어린이 메뉴)”이라며 트럼프와 러시아 사이의 유착관계를 비꼬았다.

코미디 쇼의 트럼프 특수 미국의 정치풍자 코미디 쇼가 ‘트럼프 특수’를 톡톡히 누리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반이민·난민 행정명령을 비꼰 <에스엔엘>의 에피소드는 시청률 7.2%, 시청자 수 1080만명을 기록했는데, 이는 8년 만에 기록한 최고 시청률이다. 프로그램에 붙는 30초짜리 광고 단가도 평균 11만9천달러(1억3600만원)로, 직전 시즌에 견줘 86%가량 급증했다. 트럼프의 발언과 정책이 논란이 될수록 풍자는 더욱 신랄해지고, 풍자 수위가 높아질수록 시청률과 광고 단가도 동시에 상승하는 식이다.

트럼프 대통령 취임 이후, 미국 사회가 이전에 경험하지 못한 반자유주의적 억압을 겪고 있지만, 코미디 프로그램은 이전과 마찬가지로 성역 없는 풍자가 가능하기에 이런 현상이 빚어질 수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정치풍자 코미디가 일종의 카타르시스나 피난처 구실을 하고 있는 셈이다.

백악관 인물들을 연기하는 배우들의 인기도 뜨겁다. 숀 스파이서 백악관 대변인으로 분장한 배우 멀리사 매카시는 브리핑에서 기자들을 향해 고함을 지르고 물총을 쏘며 웃음을 자아냈는데, 이 영상은 한 달여간 유튜브 조회수 2460만회를 기록했다. 힐러리 클린턴으로 분장했던 코미디언 케이트 매키넌은 대선 이후엔 켈리앤 콘웨이 백악관 선임고문으로 변신했고, 실제 콘웨이처럼 트럼프의 각종 논란을 수습하는 모습을 연기해 호평을 받았다.

트럼프를 연기한 볼드윈은 <월스트리트 저널> 인터뷰에서 “<에스엔엘> 메인 작가는 트럼프다. 주말만 되면 늘 소재가 가득 쌓이는데, 거기서 몇 개만 고르면 된다”고 밝히며, 트럼프한테 ‘공’을 돌렸다. ‘웃음’으로는 도저히 대통령을 이길수 없다는 코미디 제작자들의 자조적 목소리도 있다. 유명 코미디 애니메이션인 <사우스 파크> 제작자 트레이 파커는 “재미있는 대본을 쓰려 하지만 잘 안 된다. 현실 그 자체가 코미디이기 때문”이라며 “예상을 늘 뛰어넘고, (코미디보다) 더 어처구니없는 현실이 매주 등장한다”고 말했다.

미국 <시비에스>(CBS) 방송 심야 토크쇼인 <레이트 쇼> 진행자 스티븐 콜베어. 유튜브 갈무리
미국 <시비에스>(CBS) 방송 심야 토크쇼인 <레이트 쇼> 진행자 스티븐 콜베어. 유튜브 갈무리
물 만난 심야 토크쇼 밤 시간대 방영되는 각 방송사 토크쇼에서도 트럼프는 ‘효자’다. <시비에스>(CBS)의 <레이트 쇼>는 트럼프 대통령 취임 직후인 지난 1월 말부터 최고 시청자 수 300만명을 기록하며 동시간대에 방송되는 <엔비시> 방송의 <투나잇 쇼>를 3주 연속 앞섰는데, 진행자 스티븐 콜베어의 장기인 ‘정치풍자’가 트럼프와 만나 시청률 상승 원동력이 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지난달 26일 아카데미 시상식 사회를 보면서, 트럼프에게 직접 트위트를 보내는 장면으로 웃음을 자아낸 지미 키멀은 <에이비시>(ABC) 방송의 <지미 키멀 라이브>에서 정치풍자 모놀로그(독백)로 인기를 끌고 있다. <에스엔엘> 작가 출신으로 <레이트 나이트>(NBC) 쇼를 진행하고 있는 세스 마이어스 역시 ‘클로저 룩’이라는 고정 정치풍자 코너를 진행한다. 서던캘리포니아 대학의 데이비드 크레이그 언론학 교수는 “정치적 콘텐츠를 즐기는 시청자들은 트럼프 당선 직후 더욱 진보적인 콘텐츠를 갈망하고 있다”며 “(토크쇼는) ‘워싱턴 리얼리티 쇼’ 같은 정치를 겨냥한 비판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고 분석했다.

<에스엔엘>에서 숀 스파이서 백악관 대변인을 흉내내며 마음에 들지 않는 질문을 한 기자를 향해 물총을 쏘고 있는 배우 멀리사 매카시. 유튜브 갈무리
<에스엔엘>에서 숀 스파이서 백악관 대변인을 흉내내며 마음에 들지 않는 질문을 한 기자를 향해 물총을 쏘고 있는 배우 멀리사 매카시. 유튜브 갈무리
트럼프 풍자, 약일까 독일까 트럼프도 본인을 풍자하는 코미디 쇼에 관심이 많다. 트럼프는 지난해 12월 트위터로 “<에스엔엘>은 편견으로 가득 찼고, 재미도 없다. 볼드윈의 연기는 끔찍하다”며 강한 불쾌감을 보인 데 이어, 1월에는 “<에스엔엘> 프로그램은 <엔비시>의 가장 끔찍한 프로그램”이라 일갈하기도 했다.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는 백악관 소식통을 인용해 “트럼프는 자신의 직원들이 약하게 묘사되는 걸 좋아하지 않는데, 스파이서 대변인을 흉내낸 배우가 여성이었다는 것에 대해 매우 불쾌해했다”고 전했다.

지나친 정치풍자를 경계하는 목소리도 있다. 티브이 평론가인 켄 터커는 ‘야후 티브이’ 기고문에서 “매카시가 스파이서 대변인을 우스꽝스럽게 흉내내고, 볼드윈이 트럼프의 말투와 행동만을 비꼴수록 정작 중요하게 비판해야 할 문제는 사소해진다”고 지적했다. 트럼프로 인해 촉발되는 사회적 논란들이 가벼운 웃음거리로 전락될 수 있다는 의미다. 반면, <더 데일리 쇼>, <사우스 파크> 등을 방영하는 케이블방송인 <코미디 센트럴>의 켄트 올터먼 대표는 “지금 미국처럼 사회가 극단적일 경우, 코미디는 (그나마) 좋은 치료제가 된다”고 긍정적 평가를 내렸다.

황금비 기자 withb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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