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하원이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에 들어가는 자금줄 차단 수단을 행정부에 대거 부여한 대북제재법을 압도적 찬성으로 통과시켰다. 다만 제재를 가할지 여부는 대부분 행정부의 재량적 판단에 맡겨져 있는 데다, 중국을 겨냥한 것이 대부분이어서 실제 이행 여부는 향후 한반도 정세에 달려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하원은 4일(현지시각) 전체회의에서 공화당 소속의 에드 로이스 외교위원장이 지난 3월 대표발의한 ‘대북 차단 및 제재 현대화법’(제재 현대화법)을 표결에 부쳐 찬성 419명 대 반대 1명으로 통과시켰다. 이 법은 지난해 초 북한의 4차 핵실험 및 탄도미사일 발사에 대응해 공화·민주 양당이 초당적으로 통과시킨 ‘대북제재 강화법’을 수정하는 식으로 제재 내용을 보강했다.
신규 제재 항목들은 거의 대부분 행정부가 판단해 결정하도록 한 재량 사항들이다. 인도적 목적을 제외하고는 다른 국가들이 북한에 대한 원유 및 석유제품의 판매와 이전을 금지하도록 한 항목이 대표적이다. 다른 국가들의 북한 노동자 고용 금지나, 북한의 식품·농산품·어업권·직물의 구매나 획득, 북한에 대한 전화·전신·통신 서비스의 제공 등에 대한 제재도 행정부 재량에 맡겼다.
이는 행정부가 당장, 그리고 반드시 이행해야 하는 의무 사항은 아니라는 것을 의미한다. 다만 행정부의 대북 제재 권한을 대폭 확대시켜 준 측면이 있다.
원유 공급과 어업권, 직물 구매 등은 북한과 거래하는 중국이나 러시아 기업을 겨냥한 조처들이다. 미국이 이들 국가의 반발을 무릅쓰고 일방적 제재를 단행하기는 쉽지 않다. 특히 원유 공급의 경우 북한의 6차 핵실험 등 특별한 계기가 없으면 미 행정부가 중국에 중단을 요구하기도 어렵고, 미국의 요구가 있어도 중국이 공급 축소를 넘어선 전면 중단을 실행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예상하고 있다.
이와 함께 법안은 △북한의 국제금융망 차단 불이행자 목록 △북한 송출 노동자 고용 외국인 및 외국기관 목록 △북한-이란 협력 내용 등에 대한 보고서를 의회에 제출하도록 행정부에 요구했다. 법안은 ‘김정남 암살 사건’을 거론하며 미국 행정부에 북한에 대한 테러지원국 재지정을 촉구하고, 법안 통과 뒤 90일 이내에 재지정 여부를 의회에 보고하도록 했다.
법안은 각국의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안 이행에 대한 감시·감독을 강화하는 내용도 담았다. 북한 선박이나 항공기, 화물에 대해 충분한 검사를 하지 않은 국가의 선박이나 안보리 결의를 지키지 않는 국가의 선박에 대해서는 미 항행 수역 진입과 활동을 금지하도록 했다. 대북 방산물자 거래 국가에 대한 대외원조 금지, 안보리 한도를 초과하는 북한산 석탄 수입 때 자산 동결 규정도 들어 있다.
법안은 외국 은행의 북한 대리계좌 보유 금지와 북한산 물품의 미국 수입 금지 등을 명시했으며, 신포해운과 금강그룹, 조선중앙은행 등 6개 북한 기업과 단체를 추가로 제재 명단에 올리는 방안을 검토하도록 했다.
에드 로이스 위원장은 법안 통과 직후 성명을 통해 “이번 법안은 북한의 자금줄을 차단하는 강력한 수단을 행정부에 부여한 것”이라고 밝혔다. 법안은 향후 상원 의결 절차를 거쳐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서명하면 공식 발효되며, 상원 표결 일정은 정해지지 않았다.
워싱턴/이용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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