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중국이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갈등을 봉합하고 관계 정상화에 나서기로 합의하면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도 한국의 향후 외교 행보에 촉각을 곤두세울 것으로 보인다.
우선, 단기적으로는 트럼프 행정부도 한-중 합의에 대해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힐 것으로 예상된다. 중국이 표면적으로는 기존에 배치된 사드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재확인했지만 실제로는 철회가 쉽지 않다는 현실을 수용한 것이어서, 미국 입장이 관철된 것으로 볼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미국은 그동안 한국이 중국의 사드 철회 요구를 수용할 경우 한반도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이 급속히 확대될 수 있다고 보고, 사드 배치를 한-미 동맹의 시금석처럼 간주해왔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트럼프 행정부는 중국의 보복에 따른 막대한 경제적 손실을 감수한 ‘한국의 버텨주기’로 중국에 ‘외교적 승리’를 거뒀다고 자평할 것으로 예상된다. 워싱턴 외교 소식통도 “미국이 중국한테 한국을 제재하지 말라고 얘기해오지 않았냐”며 “미국이 좋아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고 내다봤다.
절차적으로도 한국 정부가 미국과의 사전 조율에 상당히 신경을 쓴 흔적들이 있다. 한-미는 지난 28일 안보협의회(SCM) 공동성명에서 사드 배치가 ‘임시적’이라는 점과 ‘어떤 제3국도 지향하지 않을 것’임을 재확인했다. 미국 쪽의 양해가 있었다는 뜻이다.
이와 관련해 청와대 핵심 관계자도 31일 브리핑에서 “미국과도 긴밀히 협의했다”면서 “협상 과정을 중간에 (미국에) 알려주고 동맹 간 불필요한 오해나 마찰이 없도록 주의했다”고 밝혔다. 다른 관계자는 “미국이 중국에 ‘사드가 제3국을 겨냥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해줬고 ‘사드 보복’에 대한 우려를 전달하기도 했다”고 밝혔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30일 국회에서 △미국의 미사일방어체계(MD·엠디)에 참여하지 않고 △한·미·일 안보협력이 군사동맹으로 발전하지 않을 것이라고 발언한 내용까지 한-미가 밀도 있는 논의를 했는지는 다소 불확실하다. 정부 당국자는 “(강 장관의 발언에 대해 미국의 반응이) 괜찮은 것 같다. (양국 간) 문제는 없다”며 “(미국이) 이해하고 긍정적이었다”고 전했다. 하지만 ‘3가지 입장’에 대한 구체적 논의가 있었는지 여부에는 답하지 않았다.
강 장관의 발언은 한-미 동맹을 대북 억지 동맹으로 한정시키겠다는 뜻으로, 한·미·일 군사협력 강화를 통해 장기적으로 중국의 부상을 견제하겠다는 미국의 동북아시아 전략과 충돌하는 측면이 있다. 미국 입장에선 사드라는 ‘전쟁터’에서만 이기고, 중국과의 한반도에 대한 장기적 영향력 경쟁이란 측면에선 오히려 행보가 제한됐다고 인식할 가능성도 있는 것이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이 아시아 순방 과정에서 중국을 강하게 견제하는 내용의 ‘자유롭고 개방된 인도-태평양’ 전략을 발표할 것으로 알려져, 한-미 정상회담에서도 이와 관련된 한국의 역할을 주문할 가능성이 있다. 익명을 요구한 미국 전문가는 “워싱턴에선 한·미·일 군사협력 강화를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있다”며 “한국이 (이런 압박에) 얼마나 버틸 수 있느냐가 관건”이라고 내다봤다.
워싱턴/이용인 특파원, 김지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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