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박찬수 특파원
[현장에서]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이 동아시아 순방을 마치고 돌아온 21일 저녁(현지시각), 워싱턴엔 비가 내렸다. 우산을 받쳐 들고 짙은 어둠 속으로 대통령전용기를 내려서는 그의 모습은 왠지 쓸쓸했다. 이 광경을 보도하는 <시엔엔방송>의 화면엔 “빈손으로 돌아오다”라는 자막이 깔렸다.
이날 아침 <뉴욕타임스> 1면엔 부시 대통령이 베이징에서 기자회견을 연 뒤, 나가는 문을 못 찾아 당황하는 사진이 실렸다. 보좌관의 안내로 간신히 출입문을 찾은 부시는 기자들에게 “탈출하려고 했는데 잘 안되네…”라고 익살을 부렸다. 베이징 현장에선 웃음이 터졌지만, 워싱턴에선 그렇지 않았다. <시엔엔>은 이걸 ‘부시에겐 탈출구가 없다’는 제목으로 보도했다.
부시 순방을 바라보는 미국 언론의 평가는 싸늘하다. 일본에선 미국산 쇠고기 수입 재개의 날짜를 받아내지 못했다. 한국 정부는 한-미 정상회담 직후 이라크 파병 병력을 줄이겠다고 밝혔다. 중국은 부시 방문에 맞춰 최소한 몇명이라도 정치범을 석방해 달라는 미국의 기대를 저버렸다.
백악관 관리들은 “이런 방문은 정상 간 신뢰 조성을 위한 것이지, 구체적 성과가 당장 나타나는 건 아니다”라고 말한다. 그러나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는 사람은 거의 없다. 국내 정치에 발목이 잡혀 외교적 추진력을 상실했다는 게 대체적인 평가다. 동아시아까지 부시를 따라다닌 이라크 철군 논란은 가라앉을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베이징에선 그래도 찾았지만, 워싱턴에서 부시 대통령이 탈출구를 찾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워싱턴/박찬수 특파원 pc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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