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화, 내년 선거 겨냥 미군 발빼나
수만명 철군 방침 가시화…“이라크 내전 불씨 가능성” 우려도
미국의 이라크 주둔군 감축방침이 가시화하고 있다. “임무 완수 때까지 철군은 없다”고 완강하게 버티던 조지 부시 행정부 관리들의 태도가 변하는 조짐이 뚜렷하다. “이라크군이 치안을 떠맡을 준비가 됐다”는 말이 백악관과 국방부 관리들의 입에서 서슴없이 나온다.
부시 대통령도 30일(한국시각 1일 새벽) 이라크 치안상황에 대한 낙관적 견해를 밝힐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뉴욕타임스〉를 비롯한 현지 언론들은 “백악관이 현재의 16만 이라크 주둔 미군 가운데 내년 중 4만~5만명을 감축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또 2007년엔 더 많은 병력을 빼낼 수 있다”고 보도했다.
‘이라크 상황평가’ 말바꾸기=로런스 디 리타 미 국방부 대변인은 28일 “12월의 이라크 총선이 끝날 때까지 미군 감축에 대한 어떤 결정도 없을 것”이라면서도 “주요 진지의 관할권이 이라크군에 넘어가는 건 미군 감축의 필요성을 제기한다”고 말했다.
바그다드 주둔 미군 대변인인 프레드 웰먼 중령도 “최근 45개 이라크군 대대가 미군과의 협력에서 주도권을 행사하기 시작했다”며 “바그다드를 비롯한 일부 도시의 치안권이 이라크군에 넘어갔다”고 밝혔다.
이런 발언들은 철군 명분을 쌓으려는 시도로 해석된다. 지난 9월만 해도 조지 케이시 이라크 주둔군 사령관은 “최고 준비상태에 있는 이라크 대대 숫자가 3분의 1로 떨어졌다”고 말했다. 이라크 주둔 3사단장인 윌리엄 웹스터 장군도 지난달 “이라크군이 독자 임무를 수행하려면 18개월~2년이 더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갑작스런 태도 변화는 미 국내정치적 상황을 반영한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내년 중간선거 때문에”=부시 행정부의 태도를 바꾼 건 내년 11월에 열릴 미 중간선거다. 국민들의 이라크정책 지지율이 계속 떨어지고, 특히 여당인 공화당에서도 “중간선거 전에 단계적 철군을 시작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거세지자 어쩔 수 없이 따르는 형국이다.
언제 얼마 만큼 병력을 빼낼지는 아직 유동적이다. 국방부 관리들은 “12월의 이라크 총선이 끝난 뒤 새 이라크정부가 어떤 태도를 취할지가 중요하다”고 말한다. 새 정부가 명확한 철군일정 제시를 원하면 그걸 계기로 단계적 철군을 본격화하겠다는 뜻이다. 가능성이 적긴 하지만 새 정부가 철군을 원하지 않으면 미군 감축은 늦춰질 수 있다.
국내정치적 판단에 따른 병력감축 움직임에 비판의 목소리도 나온다. 국방부 관리들은 조급한 미군 철수가 이라크 내전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앤서니 코데스먼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선임연구원은 〈뉴욕타임스〉 인터뷰에서 “이라크군이 자립하기 전에 성급하게 미군을 빼내는 건 지금의 불확실한 상황에서 패배를 자초하는 꼴이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워싱턴/박찬수 특파원 pcs@hani.co.kr
워싱턴/박찬수 특파원 pcs@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