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엔엔> 뉴욕지국 앵커 포피 할로(왼쪽)와 짐 스치우토가 24일 미국을 발칵 뒤집어 놓은 폭발물 배달 속보를 전하고 있다. 이때까지만 해도 <시엔엔> 스튜디오가 있는 뉴욕 타임워너 빌딩에 폭발물이 배달됐다는 소식은 알려지지 않았다. <시엔엔> 누리집 갈무리
24일 오전 10시10분(현지시각)께 <시엔엔>(CNN) 방송 뉴욕지국 스튜디오에선 앵커 포피 할로와 짐 스치우토가 긴급 뉴스를 전하고 있었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 등 ‘반트럼프’ 인사들에게 잇따라 배달된 폭발물 소포 소식을 토머스 푸엔테스 전 연방수사국(FBI) 부국장과 함께 분석하려 했다. 별안간 스튜디오에 화재 경보가 울리기 시작했다. 시청자들에게도 뚜렷이 들릴 정도로 큰 소리였다.
두 앵커는 “여기도 알람이 울렸다. 무슨 일인지 보겠다. 곧 다시 오겠다”며 화면을 워싱턴지국 스튜디오로 넘겼다. 화면을 넘겨받은 앵커 르네 마시는 <시엔엔> 뉴욕지국이 있는 타임워너 빌딩에도 폭발물 소포가 배달됐다고 전했다. 이어 뉴욕을 다시 연결했다. 긴박한 상황은 그대로 전달됐다. 방금 전까지 스튜디오에 앉아있던 할로와 스치우토는 건물 밖으로 대피한 상태에서 휴대전화로 상황을 생중계했다. 뒤편으로 수사관들이 오갔고, 리포팅에 사이렌 소리가 뒤섞였다. 다른 직원 200여명도 건물 밖으로 급히 대피했다. 겉옷도 챙겨입지 않고, 가방, 지갑, 노트북도 남겨둔 채 밖으로 뛰쳐나왔다. 대피 상황은 5시간 넘게 이어졌다.
<시엔엔> 뉴욕지국 앵커 포피 할로(왼쪽)와 짐 스치우토가 24일 스튜디오가 있는 뉴욕 타임워너 건물에도 폭발물이 배달됐다는 소식이 전해진 뒤 밖으로 대피해 현장 상황을 전하고 있다. <시엔엔> 방송화면 갈무리
우편물 수신인 자리엔 존 브레넌 전 중앙정보국(CIA) 국장 이름이 적혀있었다. 버락 오바마 정부에서 일한 브레넌 전 국장은 이 방송의 ‘스테이트 오브 유니온’ 등에 출연해 트럼프 행정부를 비판해왔다.
<시엔엔>은 트럼프 대통령과 날을 세워온 대표적 언론사다. 그는 이 방송을 “가짜 뉴스”, “미국인들의 적”이라고 비난해왔다. 기자회견장에서는 <시엔엔> 기자들의 질문 기회를 노골적으로 박탈했다. 백악관 회견에 아예 출입을 금지시키기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8일에도 언론에 대한 폭력 행사를 응원하는 듯한 발언을 했다. 그는 몬태나주에서 재선에 도전한 그레그 지안포르테 공화당 하원의원 지지 유세에서 “보디 슬램(머리 위로 들었다 메치는 프로레슬링 기술)을 할 수 있는 사람은 내 사람”이라고 말했다. 지안포르테 의원이 지난해 5월 질문을 하러 따라붙는 <가디언> 기자를 들어서 내동댕이친 행위를 잘했다고 격려한 셈이다. 폭발물 소포로 <시엔엔> 뉴욕지국이 대소동을 겪은 뒤인 24일 밤 유세에서도 “언론도 부드러운 말을 써야 하고, 끝없는 적의와 부정적이거나 거짓된 공격을 멈춰야 한다”고 했다. 지난해 8월 샬러츠빌 백인민족주의 난동 때 양비론을 편 것과 비슷하다.
제프 저커 <시엔엔> 사장은 사건 직후 성명을 내어 “백악관은 계속 언론을 공격하는 게 얼마나 심각한지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 방송의 데이비드 거젠 정치 분석가는 트럼프 대통령이 “증오의 개들을 풀어놨다”고 말했다.
김미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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