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15일(현지시각) 사우디아라비아를 방문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왼쪽)이 모함마드 빈살만 사우디 왕세자와 제다의 알살람궁에서 만나 주먹인사를 하고 있는 모습. 제다/AFP 연합뉴스
지난 8월 사우디아라비아에서는 트위터를 이용했다는 이유로 여성 2명이 처벌받았다. 이들에게 45년형과 34년형이라는 중형이 선고되면서 비판의 목소리가 컸다. 이러한 극단적 판결의 배경으로 사우디 법원이 왕실에 충성하는 형사와 검사 출신으로 채워졌기 때문이라는 주장이 나왔다.
12일(현지시각) 미국 워싱턴에 본부를 둔 인권단체 ‘아랍 세계를 위한 민주주의’(DAWN)는 사우디에서 2018년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 살해 사건 은폐에 관여한 형사가 국가대테러법원장으로 임명됐다고 밝혔다. 카슈끄지는 사우디 왕실에 비판적인 보도를 해왔는데, 현재 사우디의 실질적 통치자로 불리는 무함마드 빈살만 왕세자가 바로 이 카슈끄지 살해 사건의 배후로 지목된다.
단체가 입수한 6월9일 왕실령에 따르면, 국가대테러법원뿐 아니라 특별형사법원에도 10명 이상의 형사와 검사가 판사로 임명됐다. 판사가 되기 위해선 일정 이상의 학위 취득과 경력이 필요하지만 이와 무관하게 입맛에 맞는 형사와 검사를 판사로 임명했다는 것이다. 특별형사법원은 8월 말 트위터 이용자에게 ‘반테러리즘법’을 근거로 중형을 선고한 곳이다.
단체는 사우디가 왕실에 충성하는 인물로 재판부를 꾸린 뒤로 “작은 사회적 반대 의견에도 지나친 처벌을 하고 있다”며 이번 임명이 “유례가 없다”고 비판했다. 이 단체의 압둘라 알라우드 걸프지역 국장은 “왕세자는 판사로서 기본적인 훈련도 되지 않은 충성파들을 대테러법원에 임명하고, 가장 온건한 비판에도 충격적인 판결을 내리고 있다”며 “정의와 절차적 정당성에 대한 사우디 정부의 엄청난 경시를 엿볼 수 있다”고 말했다.
특히 빈살만 왕세자가 7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만난 뒤로 극단적인 처벌이 늘었다고 평가했다. 트위터 이용자에 대한 중형 외에도 사우디 법원은 이 시기에 네옴시티 건설을 위한 강제 퇴거를 거부한 활동가에게 징역 50년과 여행금지 50년 선고를 내리기도 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대선 과정에서 ‘사우디를 국제적으로 고립시키겠다’고 말했으나, 올해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에너지 시장이 요동치면서 사우디를 방문해 빈살만 왕세자와 회동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당시 회담 뒤 기자회견에서 “카슈끄지 살해 문제를 회담 처음에 제기했다”고 말한 바 있다. 알라우드 국장은 “바이든과 빈살만의 만남이 사우디에서 더 극단적인 수준의 억압과 인권 침해로 이어졌다는 사실에 의심의 여지가 없다”고 말했다.
조해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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