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오넬 메시가 15일(현지시각) 베이징에서 열린 중국-아르헨티나의 친선경기에 출전하고 있다. EPA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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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5월 세계적 축구스타 리오넬 메시는 보트에 앉아 해가 지는 바다의 석양을 바라보는 사진을 팔로워만 4억7천만명인 소셜미디어 자신의 계정에 올렸다. 사진 아래에는 “홍해의 발견 #사우디 방문”이라는 설명을 달았다. 사우디아라비아의 관광부가 ‘메시가 사우디를 처음 방문했다’고 알리며 “그렇지만 마지막 방문이 아닐 것”이라고 홍보한 지 겨우 몇 시간 만이다.
<뉴욕타임스>는 18일(현지시각) 당시 메시의 사우디 방문이 메시와 사우디 정부의 계약에 따른 것이었다며 관련 계약서 내용을 공개했다. 계약서에 따르면, 메시는 가족과 사우디를 방문해 공개 행사에 모습을 드러내고 소셜미디어에 관련 사진을 올리는 등 몇 가지 조건을 이행하면, 사우디 정부로부터 3년간 2250만유로(2500만달러·315억원)를 받게 돼 있다.
구체적으로 메시는 가족과 함께 사우디를 한 해에 한 차례 5일간 또는 두 차례 3일간씩 방문하면 200만달러(25억원)를 받는다. 5성급 호텔 숙박을 포함한 모든 여행 경비는 사우디 정부가 대며, 메시는 최대 20명까지 가족과 친구를 데려올 수 있다. 여기에 한 해 10차례 소셜미디어에 사우디를 홍보하면 추가로 200만달러, 연례 사우디 관광 홍보 행사에 참석하면 또 200만달러 이상, 자선행사에 참석하면 또 200만달러를 받게 돼 있다. 대신 메시는 사우디의 평판에 “먹칠하는” 발언을 전혀 할 수 없다. 신문이 입수한 계약서는 2021년 1월1일자로 메시와 매니저인 그의 형 로드리고가 서명했고, 사우디 쪽 서명은 아직 없었다.
이번 일은 사우디 정부가 스포츠 행사 개최와 유명선수의 명성에 기대어 가혹한 인권침해와 폭압적 독재 체제에 대한 국제사회의 비판을 비껴가려는 이른바 ‘스포츠 워싱’의 대표적 사례라고 신문은 지적했다. 실제 사우디는 최근 몇 년 동안 오일 머니를 이용해 유명한 프로축구 구단을 사들이고 자동차경주대회 포뮬라원(F 1)을 유치한 데다 최근엔 프로 골프 대회에도 진출했다. 또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와 카림 벤제마 같은 유명 축구 선수를 자국 리그에서 뛰게 하려고 몇십억달러를 아낌없이 쓰고 있다.
메시도 최근 이들과 비슷한 제안을 받았으나 이를 거절하고 미국 메이저리그의 인터 마이애미에서 뛰기로 했다. 그렇지만 메시와 사우디의 관계가 틀어진 건 아니다.
메시는 2021년 2월 사우디 정부와 계약하고 몇 주 뒤 사우디 관광부 장관에게 편지를 보내, 예정된 사우디 방문을 할 수 없게 된 사정을 설명하고 사과했다. 당시 에프시(FC) 바르셀로나에서 뛰던 메시는 편지에서 아흐메드 알 카테브 장관을 “각하”(Your Excellency)라고 존칭한 뒤 “스포츠맨”으로서 경기에 빠질 수 없었다며 “깊이 안타깝게 여긴다”고 적었다.
메시는 결국 계약서대로 몇 달 지나 그해 5월 처음 사우디를 방문했다. 지난달엔 1년 만에 사우디를 다시 찾았는데, 훈련을 빼먹고 간 것이어서 소속팀 파리 생제르맹의 징계를 받았다. 메시는 팀과 팬들에게 사과하며, 사우디 여행이 선택 사항이 아니어서 취소할 수 없었다고 해명했다.
2021년 메시와 사우디 정부의 관계를 둘러싼 보도가 처음 나왔을 때, 사우디 정부의 탄압을 받던 이들의 가족은 공개편지를 통해 메시에게 “사우디는 이미지 세탁을 하려고 당신을 이용하려는 것”이라며 사우디와의 관계를 끊어달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메시는 이에 대해 침묵했다. 그리곤 사우디를 방문해 “사우디가 이렇게 푸르른 곳이라고 누가 생각했겠느냐”며 사우디의 아름다움을 상찬하는 글과 사진을 올렸다.
박병수 선임기자
suh@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