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종청소·민간인 학살·정권의 학살방조…
10여년 전 르완다·보스니아 참상 재연
수단 정부군 본격 투입 사태악화 우려
10여년 전 르완다·보스니아 참상 재연
수단 정부군 본격 투입 사태악화 우려
10여년 전 르완다와 보스니아에서 벌어졌던 학살의 참상이 수단의 다르푸르에서 재연되고 있다. 두 분쟁의 양상을 합친 듯, 국제사회의 얽힌 이해관계 속에서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는 것도 비슷하다.
다르푸르에선 이미 20만명의 사망자가 발생했지만, 비극은 더 확대될 수 있다. 분쟁의 한 당사자인 수단 정부군이 분쟁지역에 본격 투입될 조짐이기 때문이다. 얀 에옐란 유엔 인도주의업무조정관은 “안보리가 즉시 대처하지 않으면 몇주 안에 참사가 일어날 것”이라고 경고했다.
르완다와 보스니아를 합친 다르푸르=식민 유산에 따른 인종 갈등, 민병대나 무장단체들의 민간인 학살, 인종청소, 현지 정권의 학살 방조, 이해관계로 나눠진 무기력한 국제사회…. 르완다와 보스니아 분쟁에서 제기됐던 모든 문제가 다르푸르에서 나타난다. 그것도 더 악성이다.
2003년부터 지속된 다르푸르 분쟁의 근원은 영국 식민통치가 조장한 지역·종교·인종 갈등이다. 수단은 1956년 독립 뒤 북부 이슬람계와 기독교 및 토속신앙을 믿는 남부 흑인들 사이의 내전에 시달렸다. 1899년부터 수단을 식민통치한 영국은 북부에 특혜를 주고 남부를 뒤떨어진 상태로 유지하는 등 남·북부 지역을 분리 통치했다. 이는 남부를 인접한 식민지와 결합시키려는 정책이었다. 벨기에가 원활한 통치를 위해 르완다의 후투족과 투치족을 ‘분할통치’해, 독립 뒤 두 종족 간의 치열한 내전이 일어난 것과 비슷하다.
1989년 이슬람계의 지원을 받아 쿠데타에 성공한 오마르 알바시르 현 수단 대통령은 민병대인 ‘잔자위드’를 지원해, 다르푸르를 비롯한 남부 억압정책을 시행했다. 남부는 석유 등 자원이 풍부해, 수단 정부뿐만 아니라 국제사회의 이해관계가 걸린 곳이다. 다르푸르 지역의 아프리카계 반군들은 자원의 균등한 분배 등을 외치며 2003년 저항을 시작했다.
이에 친정부 민병대 잔자위드는 아랍계 피를 아프리카에 이식한다는 명분으로 인종청소를 시작해 8만명이 넘는 민간인을 살해하고 성폭행을 저질렀다. 그동안 전쟁과 질병, 기아로 20만여명이 숨졌으며, 200만명이 넘는 난민이 발생했다. 미국은 이를 제노사이드(대량학살)라고 부른다. 제노사이드 예방 단체인 영국의 ‘이지스 트러스트’도 “수단 정부의 행위는 제노사이드”라고 비난한다. 수단 이슬람계는 서방 쪽의 이런 비난에 ‘이슬람계의 기독교계 탄압’이라는 구도를 만들려는 의도도 깔려 있다고 보고 있다. 이 때문에 유엔 평화유지군 파견도 거부하고 있다.
유명무실한 평화협정=지난 5월에는 미국 등의 주선으로 평화협정이 체결됐지만, 반군 중 일부만 참여한 바람에 지금은 휴짓조각에 지나지 않는다. 아프리카계의 수단해방군은 2002년 이후 자그하와족 중심의 미니 미나위 그룹과 푸르족 중심 압델 와히드 누르 그룹으로 양분돼, 미나위 그룹만이 평화협정에 서명했다.
지난달 31일 유엔 안보리는 유엔 평화유지군 1만7천여명을 다르푸르 지역에 파병한다는 내용의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빈약한 재정과 7천명에 불과한 병력으로 분쟁 관리는커녕 오히려 사태를 악화시켰다는 평가를 받는 기존의 아프리카연합(AU)군을 대신하려는 것이다. 하지만 수단 정부는 ‘서구 제국주의자’인 유엔 평화유지군이 파병되면 이에 맞서 전투를 벌일 것이라고 밝혔다. 수단 정부는 또 4일 아프리카연합군에 대해 ‘일주일 안에 유엔군 배치안을 거부하지 않겠다면 철군하라’는 내용의 최후통첩을 보냈다. 이와 함께 1만명의 정부군을 다르푸르에 파병하겠다고 밝혔다. 분쟁이 민병대와 반군 사이의 전투를 넘어 정부군까지 참여하는 본격적인 내전으로 비화되는 셈이다.
국제사회의 뜻도 하나라고는 할 수 없다. 유엔 평화유지군 파견 결의안 표결에서 러시아와 중국, 카타르는 기권했다. 카타르는 같은 이슬람 국가인 수단 정부를 지지하고, 중국은 수단 하르툼에 정유 공장을 건설하는 등 석유 자원에 막대한 지분을 소유하고 있다. 평화유지군 파병에 반대하는 쪽은 군사능력을 지닌 미국과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의 개입은 문제를 더 복잡하게 만든다고 지적한다. 박현정 기자 saram@hani.co.kr
국제사회의 뜻도 하나라고는 할 수 없다. 유엔 평화유지군 파견 결의안 표결에서 러시아와 중국, 카타르는 기권했다. 카타르는 같은 이슬람 국가인 수단 정부를 지지하고, 중국은 수단 하르툼에 정유 공장을 건설하는 등 석유 자원에 막대한 지분을 소유하고 있다. 평화유지군 파병에 반대하는 쪽은 군사능력을 지닌 미국과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의 개입은 문제를 더 복잡하게 만든다고 지적한다. 박현정 기자 sara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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