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디 “이성과 차량 동승 탓”
사우디아라비아의 한 법원이 집단 성폭행을 당한 피해 여성에게 ‘이성과 함께 차 안에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징역 6개월과 태형 200대의 ‘중형’을 선고했다. 이에 사우디 내부에서도 ‘지나치게 남녀 차별적인 판결’이라는 비판이 일고 있다.
사우디 동부 카티프시에 사는 한 여성은 19살이던 지난해 옛 남자 친구와 만나던 중 남성 7명에게 납치돼 14번이나 성폭행당했다. 지난해 1심에서 법원은 가해자인 남성들에게 1~5년이라는 비교적 가벼운 판결을 내린 반면, 피해자인 여성에게 ‘태형 90대’의 유죄 판결을 내려 논란을 촉발했다.
사우디의 법률체계는 보수적인 와하브파 이슬람 율법 해석을 채택해, 여성이 가족이나 남편이 아닌 남성과 같은 차에 들어간 것을 ‘음란죄’로 규정하고 있다. 피해 여성은 1심 선고 뒤 “그날 옛 남자 친구와 만난 것은 다른 남성과의 결혼을 앞두고 사진을 돌려받기 위해서였다”며 항소했다.
그러나 카티프의 항소 법원은 13일 태형을 200대로 늘리고, 징역형까지 추가하는 어처구니없는 판결을 내렸다. 법원은 “여성이 언론에 사건을 알려 사태를 악화시키고 판결에 영향을 끼치려 했기 때문에” 처벌의 수위를 높였다고 밝힌 것으로 <아랍뉴스>는 보도했다. 법원은 또 여성의 변호인인 압둘라만 알라헴의 변호사 자격증을 빼앗는 동시에 이달 말 징계위원회에 출석하라고 명령했다. 유명 인권운동가인 알라헴은 과거 사우디 왕정을 비판해 정권의 미움을 산 바 있다. 가해자들에 대한 징역형은 최대 9년으로 늘어났다.
<뉴욕타임스>는 이번 사건이 사우디 법률체계의 문제점을 다시 한번 드러내는 계기가 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국왕에 의해 임명된 남성 판사들에게 지나치게 넓은 법률 해석권이 주어지다보니, 성차별적인 판결이 남발되고 있다는 것이다. 사우디 변호사 바셈 알리는 “간통에 대한 처벌도 통상 태형 60~80대를 넘지 않는다”며 이번 판결이 얼마나 부당한지를 강조했다. 피해 여성은 사건 뒤 결혼했으며, 그의 남편은 이번 판결에 불복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서수민 기자 wikk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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