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나지르 부토 전 총리라는 거목(巨木)을 잃은 파키스탄 최대 야당 파키스탄인민당(PPP)이 부토의 아들인 빌라왈 부토 자르다리(19)와 남편인 아시프 알리 자르다리(51)를 새 주인으로 맞아들인 뒤 총선 참여를 선언했다.
이에 따라 날로 확산되는 소요사태 속에 연기쪽으로 기울던 총선이 예정대로 치러질 수 있을 지 주목된다.
또 총선이 예정대로 치러질 경우 최대 야당의 '구원투수'로 투입된 빌라왈과 자르다리가 암살된 베나지르 부토의 막강한 대중지지력을 재연해 낼 수 있을 지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 야권 총선참여 선언…1.8 총선 예정대로 치러질까 = 부토의 후계자 임명 후 가장 먼저 나타난 변화는 연기 가능성이 높았던 파키스탄 총선이 예정대로 치러질 가능성이 커졌다는 점이다.
당초 파키스탄 선거관리위원회는 부토 암살 이후 발생한 소요 사태로 총선 준비에 차질이 생기자 이를 연기하는 방안을 고려해왔고 31일 긴급회의를 소집해 총선 연기 여부를 결정키로 했었다.
또 페르베즈 무샤라프 대통령을 지지하는 여권도 야당이 대거 불참하는 선거의 정당성을 문제삼아 총선 연기를 기정사실화하는 분위기였다.
그러나 총선에 불참할 것으로 예상됐던 PPP가 예상을 뒤집는 결정을 함에 따라 상황이 급변했다.
PPP의 공동의장으로 부토의 후계자인 빌라왈을 보좌하게 된 알리 자르다리는 이날 "위험한 상황이 지속되고 있지만 총선에 참여할 것"이라고 밝혔다.
또 자르다리는 최대 보수정당인 파키스탄무슬림리그(PML-N)을 이끌고 있는 나와즈 샤리프 전 총리에게도 총선 보이콧 결정을 철회해 줄 것을 당부했다.
이런 그의 요청은 즉각 효과를 발휘해 샤리프 전 총리의 PML-N도 총선 참여를 선언했다.
이로써 여권이 우려한 선거 연기 사유가 사라진 셈이며 부토 암살 사건 이후 확산일로에 있는 소요사태가 진정돼 선거 준비가 정상궤도에 오르면 총선은 예정대로 치뤄질 수도 있다.
◇ 빌라왈.자르다리의 영향력은 얼마나 = 총선 일정과 함께 관심을 모으는 것은 PPP의 새 주인으로 임명된 빌라왈과 자르다리가 과거 부토가 확보했던 막강한 대중지지도를 복원할 수 있을 지 여부다.
올해 19세의 대학 새내기인 빌라왈은 정치경력이 전무한데다 태어난 이후 줄곧 어머니를 따라 망명생활을 해온 터라 정치적인 기반이 있을리 만무하다.
또 자르다리 역시 상하원 의원과 환경부 장관을 지내기는 했지만 아내인 부토 전 총리의 후광을 입었던 것으로 자생적인 정치력은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이들은 암살당한 부토의 정치적 지지기반을 그대로 물려받았다.
또 '독재정권의 피해자'라는 가족사도 고스란히 대물림된 만큼 부토 전 총리 못지 않은 영향력을 발휘할 수도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부토의 정치적 기반 가운데 상당부분은 과거 군부독재자에 의해 사형선고를 받고 의문의 죽음을 당한 아버지 줄피카르 알리 부토 전 총리에게서 물려받은 '독재의 피해자'라는 이미지에서 비롯됐다.
"민주주의를 향한 오랜 싸움은 새로운 활력 속에 계속될 것이다. 어머니는 민주주의가 항상 최고의 복수라고 했다"는 빌라왈의 발언도 이런 효과를 어느 정도 염두에 둔 것으로 풀이된다.
여기에 총선을 불과 며칠 앞두고 터진 암살 사건에 대한 동정표까지 더해질 경우 이번 총선에서 승산이 있을 것이라는 전망도 가능하다.
◇ 소요사태 진정될까 = 부토 암살과 함께 파키스탄을 무법천지로 변화시킨 소요사태는 총선 등 남은 정치일정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게 될 변수다.
부토 사망 이후 이어지고 있는 소요사태로 파키스탄에서는 이날까지 40여명이 죽고 50여명이 부상했다.
또 반정부 시위와 폭동으로 상점과 은행, 사무실, 주유소 등 1천200여곳에 화재가 발생했고 차량 370대가 불탔다고 집계된 바 있다.
이 밖에도 곳곳에서 여당 인사 등을 겨냥한 테러 미수사건도 발생하고 있다.
그 동안 소요사태가 집중됐던 곳은 부토의 고향이자 정치적 기반인 남부 신드주와 펀자브주 등이었다.
그러나 신드주에 기반을 둔 PPP와 펀자브주가 기반인 샤리프의 PML-N 등이 총선 참여를 통한 정권교체에 나선 만큼, 이 지역의 민심이 다소 가라앉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다만 파키스탄 정국 혼란을 목적으로 한 부토 암살사건과 같은 폭탄테러 등은 향후에도 지속적으로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관측이다.
김상훈 특파원 meolakim@yna.co.kr (뉴델리=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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