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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중동·아프리카

일감 사라진 이주노동자 “굿바이 두바이”

등록 2009-12-01 13:14수정 2009-12-01 14:50

세계에서 가장 높은 부르즈두바이의 앞을 지난 5일 노동자들이 걸어 지나가는 모습. 두바이월드의 모라토리엄 선언까지 겹쳐 외국인이 대부분을 차지했던 노동자들은 일자리를 잃고 있다. 두바이/AFP 연합뉴스
세계에서 가장 높은 부르즈두바이의 앞을 지난 5일 노동자들이 걸어 지나가는 모습. 두바이월드의 모라토리엄 선언까지 겹쳐 외국인이 대부분을 차지했던 노동자들은 일자리를 잃고 있다. 두바이/AFP 연합뉴스
‘두바이 쇼크’ 진원지를 가다
인도 등서 건너온 막일꾼 잇따라 고향으로
마천루 떠받쳤으나 모라토리엄 최대 희생양
지난 5월 어느날, 구루무띠(22)는 돈을 벌러 다섯 친구와 함께 고향을 떠났다. 인도 남동부 타밀 나두에서 출발한 그의 목적지는 3000㎞나 떨어진 아라비아반도의 두바이. ‘두바이 드림’을 쫓아 온 그를 가장 먼저 반긴 건 사막의 이글거리는 태양이었다.

그는 세계 최고층 빌딩 부르즈(버즈)두바이가 한눈에 들어오는 비즈니스베이 공사판에서 일자리를 얻었다. 매달 그가 손에 쥐는 돈은 1600디람(약 54만원). 그나마 막노동꾼 치곤 많이 받는 편에 속한다.

숙소는 일터에서 승합차로 약 30분쯤 떨어진 샤자에 있다. 월급의 절반이 넘는 1000디람을 매달 고향에 있는 부모님과 형한테 보낸다. 좋아하던 담배도 끊었다. 한달 담뱃값 50디람을 절약해 고향에 조금이라도 더 송금하기 위해서다. 29일(현지시각) ‘왜 이 먼 곳까지 왔냐’는 기자의 물음에, 그는 “돈을 벌기 위해서”라고 말했다.

두바이의 부동산 경기가 가장 침체돼 있던 때 이곳에 와서 그나마 지금까지 일거리가 있는 그는 무척 운이 좋은 사내다. 다섯 명의 친구 가운데 셋은 벌써 서너달째 놀고 있다. 일감이 없는 친구들은 고향으로 돌아가야만 하는 게 이곳의 ‘법칙’이다.

부동산 거품이 꺼지면서 두바이를 떠나는 이들이 늘고 있고 있다. 지난해 금융위기 이후 일자리가 없어서 고향으로 역류하는 세계 곳곳의 이주민 행렬은 이주민들이 절대 다수를 차지하는 두바이에서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이주노동자 숙소가 밀집한 알쿠오즈 공단 곳곳에 빈 숙소가 눈에 들어왔다. 3층짜리 건물 벽 한 귀퉁이에 일련번호 ‘11’이라고만 쓰인 텅빈 숙소엔 “세 놓습니다”란 펼침막이 내걸렸다. 방이 30개나 되는 이 작은 건물 한쪽엔 240명이 집단으로 쓰는 공용 화장실과 부엌, 세면대가 있었다. 두바이에서 부동산업을 하는 강창희(47)씨는 “불과 1년 전만 해도 이곳에 빈 숙소들이 즐비하리라곤 상상도 못했다”고 말했다. ‘캠프’라고 불리는 노동자들의 공동 숙소는 한때 거주자들이 넘쳐 인근 샤자, 아즈만, 옴 알퀘인으로까지 뻗어나갔다. 하지만 이주노동자들이 하나 둘 떠나면서 빈 캠프도 그만큼 늘어났다.

손님의 99%가 이주노동자들이라는 그랜드시티몰에서 만난 인도 출신의 세일즈맨 베룬은 “지난 다섯 달 동안 약 3만명 이상이 두바이를 떠났다”고 말했다. 인도인들은 150만 두바이 인구의 80%를 웃도는 전체 이주민 중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

이주노동자들은 채무지급 유예(모라토리엄) 선언으로 이젠 빛이 바랜 두바이 신화의 숨은 주인공들이다. 그러나 이젠 위기의 가장 큰 희생양이다.


공사판 일꾼, 식모, 식당 및 호텔 종업원 등으로 일하는 수십만명의 인도, 파키스탄, 필리핀, 방글라데시인들은 한국 돈으로 불과 월 30~50만원을 받으면서 두바이의 위험하거나, 더럽거나, 어려운 일을 해왔다. 이는 세계에서 가장 비싼 호텔, 가장 높은 마천루를 자랑하는 두바이의 화려함과 도저히 잘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불편한 현실이다.

강훈상 전 <연합뉴스> 두바이 특파원은 올 초 펴낸 <두바이 패러독스>에서 “두바이는 돈과 피부색의 스펙트럼이 거의 일치한다”고 썼다. 마치 이집트 피라미드처럼 두바이의 경제, 정치, 사회 권력의 최상층엔 ‘로컬’로 불리는 두바이 토착민들과 백인들이 자리하고 있다. 두바이 신화가 흔들리면서 이들은 자산 가격이 떨어지는 손실을 보지만, 이주노동자들은 삶의 터전에서 쫓겨나고 있다.

두바이/류이근 기자 ryuyige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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