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형섭 국제부 기자
[토요판] 리뷰&프리뷰 친절한 기자들
안녕하세요. 국제부의 친절한 기자 이형섭이에요. 오늘은 생각만 해도 답답한 예멘 이야기를 해볼까 해요.지난 21일 예멘의 수도 사나에서 군사퍼레이드 리허설 도중에 한 병사가 자신의 몸에 지니고 있던 폭탄을 터뜨렸어요. 사망자는 96명이고 부상자는 300명이 넘었어요. 이 퍼레이드가 예전에 북예멘과 남예멘으로 나뉘어 있던 예멘이 1990년 통일된 것을 기념하기 위한 것이었던 만큼 충격은 더욱 컸어요.
알카에다는 이 테러가 자신들의 소행이라고 발표했어요. ‘웬 알카에다? 오사마 빈 라덴도 죽고 알카에다는 괴멸된 거 아냐?’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이는 전혀 사실과 달라요. 2인자였던 아이만 알자와히리가 지도자 자리를 이어받은 알카에다는 여전히 중동과 북아프리카 지역에서 상당한 세력을 형성하고 있어요. 소말리아,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예멘 등의 일부 지역은 알카에다가 사실상 점령하고 있어요. 외신에는 알카에다 조직원 사살 소식만 주로 나오니까 알카에다가 소멸될 위기에 처한 듯 느껴지지만 사실 알카에다는 ‘아랍의 봄’에 이어진 혼란기를 틈타 세력을 더 넓히고 있다는 분석도 나오죠.
예멘은 알카에다에는 최적의 장소예요. 지난해 아랍 전역에 불어닥친 민주화 바람은 예멘에도 어김없이 불어왔고, 33년간 독재정권을 끌어오던 알리 압둘라 살레 예멘 대통령은 역시 어김없이 시위대를 유혈진압했어요. 사실상 내전 상태로 치닫던 예멘은 살레가 대통령궁에서 로켓포 공격을 받고 부상당한 뒤 사우디아라비아로 치료를 위해 떠나면서 정리되는가 했지요. 살레는 국제사회의 압력 속에 독재 시절의 죄를 묻지 않기로 약속받고 정권을 넘겨줬어요. 임시 대통령이던 압드라부 만수르 하디 부통령이 올해 2월 치러진 대선에서 단독 출마해 대통령이 되면서 극심한 혼란은 대충 정리되는가 했어요.
하지만 이런 정치불안 와중에 예멘 지역의 알카에다 아라비아반도지부(AQAP)는 세력을 넓힐 절호의 기회를 맞았어요. 예멘 남부의 산악지대를 대부분 점령하고 있는 알카에다는 정부군을 틈틈이 공격하는 한편 배움의 기회가 없는 산악지대 어린이들을 위한 학교를 세우는 등 지역민들의 마음을 파고들었어요. 예멘 정부군과 미군의 무인기가 공세를 퍼붓고 있지만 알카에다의 반격도 만만치 않아요. 이번 퍼레이드의 자살폭탄 테러공격은 더이상 우리를 건드리지 말라는 대표적인 본보기 공격이죠.
하디 대통령은 취임 연설에서 예멘의 가장 급선무가 알카에다 척결이라고 일갈했어요. 하지만 분열 상태인 정부군이 알카에다를 제대로 쫓아낼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아요. 하디 대통령은 현재 군부 요직을 장악한 살레 일가를 쫓아내려고 시도하고 있는데, 이들은 물러날 생각이 없어요. 지난달에는 공군 총사령관을 맡고 있는 살레의 동생 무함마드 살레 아흐마르를 사임시키려고 시도했다가, 공군이 이에 반발해 사나 국제공항을 점령하는 웃지 못할 일이 벌어지기도 했어요. 공군이 자국 공항을 점령하는 판에 알카에다 괴멸이 가당키나 한 일인가요.
지난해 봄 살레 퇴진을 외치는 민주화 시위대로 가득 찼던 사나의 ‘변화의 광장’에는 아직도 수천명이 각종 요구사항을 외치며 머물고 있어요. 여성인권 신장부터 이슬람주의 회복까지 주장이 너무 제각각이라 중지가 모아지질 않아요. 집권당이었던 국민의회당 안에서는 2014년으로 예정돼 있는 대선에서 살레를 출마시키겠다는 말도 종종 나오고 있어요. 한마디로 여전히 예멘의 정국은 아수라장인 셈이죠. 이런 와중에 국민들의 삶은 나락으로 떨어졌어요. 세이브더칠드런 등 국제구호단체들은 최근 예멘 인구 2300만명의 44%가 적절한 식량을 공급받지 못하고 있고, 어린이 3명당 1명꼴로 심각한 영양실조에 걸려 있다며 긴급구호를 촉구했어요.
읽는 여러분도 참 답답하시죠? 예멘 기사를 매일 읽는 저는 속이 터져요. 역사는 가끔 퇴보한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은 전진해요. 2000명이 넘게 희생당하면서도 결국 독재자 살레를 퇴진시킨 예멘 민중의 힘을 믿어볼 수밖에요.
이형섭 국제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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