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회해산뒤 입법·예산권 독점하는 헌법 수정안 발표
무바라크 축출 때 중립지켰던 군이 권력투쟁 전면에
무바라크 축출 때 중립지켰던 군이 권력투쟁 전면에
“군을 믿어주십시오. 우리는 권력을 원하는 게 아닙니다.”(맘두흐 샤힌 소장)
“우리는 대통령에게 모든 권한을 줄 것입니다.”(무함마드 앗사르 소장)
이슬람 원리주의 조직인 무슬림형제단이 ‘대선 승리’를 선언한 지난 18일 밤, 현재 이집트의 최고 권력기구인 ‘최고군사위원회’를 대표하는 두명의 장군이 수도 카이로에서 긴장된 얼굴로 기자회견을 했다. 이집트 뉴스통신 <메나>(MENA)는 군이 “새 대통령은 대통령직에 부여된 모든 권한을 가지며, 군부는 새 의회가 구성될 때까지 입법권만 보유할 것”이라고 선언했다고 보도했다. 샤힌 소장은 최근 군에 대한 비판적 시선을 의식한 듯 “대통령은 총리와 국방장관 등 모든 각료의 임면권을 행사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군의 이런 해명에도 불구하고 이집트인들의 시선은 싸늘하기만 하다. 군이 지난주 합법적인 선거를 통해 구성된 의회를 해산한 데 이어, 지난 17일에는 입법권, 예산권, 신헌법 초안을 만드는 위원 임명권 등을 군이 독점하고 대통령의 군에 대한 감시·통제를 배제하는 것을 뼈대로 한 잠정 헌법 수정안을 발표했기 때문이다.
권력을 손에서 놓지 않겠다는 군의 노골적인 폭거에 무슬림형제단은 “군의 조처는 원칙적으로 무효”라며 반발했다. 외신들은 이집트 군부와 무슬림형제단 사이에 길고 지루한 권력투쟁이 예상된다는 분석 기사들을 쏟아내고 있다. 미국 정부는 18일 “빠른 시일 내 민간에 권력을 이양하지 않으면 수십억달러에 이르는 군사·경제원조를 중단할 수 있다”고 군부를 압박했다.
이집트에서 군은 오랜 시간 동안 이집트의 자존심을 지킨 개혁적이고 청렴하며 유능한 집단으로 신뢰를 받아왔다. 직접적인 계기는 아랍과의 전쟁에서 불패 신화를 자랑해 온 이스라엘의 콧대를 꺾은 1973년 10월전쟁(4차 중동전쟁)이었다. 이집트는 이 전쟁의 서전에서 이스라엘군을 압도했고, 후속 협정을 통해 6일전쟁(3차 중동전쟁) 때 빼앗겼던 시나이 반도 전역을 되찾을 수 있었다. 이집트군의 저력에 놀란 미국은 이스라엘 일변도였던 아랍정책을 수정했고, 이는 이집트-이스라엘 평화조약(1978년)과 뒤이은 평화로 이어지게 된다.
지난해 1월 시작된 ‘이집트 혁명’ 때도 마찬가지였다. 거리에서 시민과 경찰의 유혈충돌이 거듭되자 군은 정권과 시민군 사이에서 중립을 지키는 방법으로 사실상 호스니 무바라크 대통령의 ‘결단’을 압박했다. 그래서 군의 탱크가 카이로 시내에 진입했을 때 시민들은 탱크에 꽃을 꽂고, 군인들과 나란히 사진을 찍었다.
군부와 시민세력의 동상이몽은 거기까지였다. 지난해 2월 권력을 넘겨받은 군부는 대선 일정을 세번이나 미루는 등 보수성을 점점 노골화해왔다. 18일 기자회견에서도 군은 대통령에게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게 되는 보좌진에 군부의 압둘 모멘 압둘 바세르 장군을 선임하고, 이집트 안보에 관한 중대 사안을 다루는 국방위원회를 부활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이런 와중에 대선 결과에 대한 전망도 엇갈리고 있다. 무슬림형제단은 무함마드 무르시 자유정의당 후보가 51.8% 득표해 승리했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무바라크 정권의 마지막 총리였던 아흐마드 샤피끄 쪽도 19일 자체 집계 결과 51.5%를 얻어 승리했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무슬림형제단은 이날부터 본격적인 반군부 시위에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 혼란은 여전하고 혁명은 오리무중이다. 길윤형 기자 charism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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