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사드 몰락 바라는 서구·친미국가
무기 위험성 알리는 비확인 보도해
우방인 이란·러시아는 언급도 안해
무기 위험성 알리는 비확인 보도해
우방인 이란·러시아는 언급도 안해
지난 21일 아랍권의 위성방송 <알아라비아>는 전 세계 언론의 이목을 잡아끈 동영상을 공개했다. 동영상에는 2~3명의 아랍 어린이들이 호흡 곤란 증세를 호소하며 바닥에 누워 있고, 이들 주변으로 산소마스크를 들고 다급히 오가는 젊은이들의 모습이 담겨 있다. <알아라비아>는 이 화면에 대해 시리아 동부 도시 디에르 에조르의 반정부 활동가들이 “지난 20일 정부군의 유해 가스 공격을 받은 피해자들의 모습”이라고 주장하며 공개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보도가 나온 뒤 얼마 안 돼 아모스 길라드 이스라엘 국방부 군사정책국장은 “시리아 정권이 화학 무기를 잘 관리하고 있다”며 관련 보도 내용을 부인하는 발언을 했다.
시리아가 다량으로 확보하고 있는 화학 무기에 대한 엇갈린 보도는 ‘시리아 사태’를 둘러싼 국제사회의 대립구도를 이해할 수 있는 하나의 관전 포인트다. 시리아는 1993년 체결된 화학무기금지조약(CWC)에 가입하지 않은 7개국 가운데 하나로, 사린, 타분, 신경작용제(VX), 겨자 가스 등과 같은 인체에 치명적인 화학 무기를 다량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네번에 걸친 지난 중동전쟁이나 1982년 레바논 내전 등 전시 상황에서도 이를 사용한 적은 없다.
시리아의 화학 무기 사용 위험을 강조해 온 쪽은 아사드 정권의 몰락을 바라는 서구 국가들과 페르시아만 주변의 친미적 성향의 수니파 산유국들이다. 이들은 아사드 정권에게 비판적일 수밖에 없는 망명자들과 자유시리아군(FSA) 관계자의 입을 빌어 화학 무기의 위험성을 강조해왔다. 대표적인 예가 수니파 산유국들의 정서를 반영하는 아랍권의 주류 언론인 <알자지라>와 <알아라비아> 등이다. ‘아사드 때리기’를 위해서라면 미확인 정보도 여과 없이 보도하는 사례가 잇따르자, <알자지라>의 기자 알리 하셈은 지난 3월 “시리아에 대한 선입견으로 가득한 프로답지 못한 보도를 하고 있다”며 사표를 던지기로 했다.
서구 언론의 사정도 비슷하다. 이달 초 미국 <월스트리트저널>이 “시리아의 화학 무기가 어디론가 이동 중”이라고 보도한 뒤, 영국 <비비시>(BBC) 방송은 16일 “아사드가 화학무기를 사용할 것이라고 확신한다”는 전 주 이라크 시리아 대사 나와프 파레스의 발언을 소개했고, 다시 이틀 뒤 18일 요르단의 압둘라 2세는 “시리아의 특정 지역에 알카에다가 있다는 정보가 있다”며 화학무기와 테러 세력을 연결 지었다. 화학무기를 사용할 경우 무력개입의 가능성을 시사하는 미 백악관 대변인과 이스라엘 총리의 발언이 뒤를 따랐다.
이에 견줘 시리아와 같은 시아파 국가로 끈끈한 혈맹 관계를 이어오고 있는 이란과 전통의 우방 러시아는 시리아의 화학 무기에 대한 발언을 삼가고 있다. 알리 아크바르 살레히 이란 외무장관은 시리아 거주민들을 자국으로 불러들이고 있는 다른 나라들과 달리 “시리아에 있는 이란인들을 송환할 이유가 없다”며 되레 시리아의 편을 들기도 했다. 23일 영국 <파이낸셜타임스>가 지적했듯 “아사드 정권이 무너진다면 지역의 세력의 균형이 깨져 가장 큰 피해를 입는 나라는 (수니파 국가들에게 둘러싸인) 이란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지난해 3월 이후 1만9000여명의 시리아인을 학살해온 아사드 정권이 궁지에 몰릴 경우 최악의 사태가 벌어질 가능성을 배제할 순 없다. 그러나 아직까지 화학무기 사용의 진실은 가려지지 않은 채 국제사회의 대립의 골만 깊어지고 있다. 시리아의 형국은 더욱더 안갯 속이다.
길윤형 기자 charism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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