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명보위 위한 결정 반대불허”
헌법제정 전까지 잠정조처라지만
헌법제정위엔 ‘친 무르시’ 세력 많아
세속주의 세력 “독재꼼수” 반발
헌법제정 전까지 잠정조처라지만
헌법제정위엔 ‘친 무르시’ 세력 많아
세속주의 세력 “독재꼼수” 반발
이집트 혁명의 성과를 지키기 위한 결단일까, 또다른 독재의 시작일까? 21일(현지시각) 가자 사태를 성공적으로 중재해 중동 질서의 새로운 맹주로 떠오른 무함마드 무르시 이집트 대통령이 돌연 자신에게 무소불위의 권한을 부여하는 조처를 발표해 이집트 정국이 요동치고 있다.
야세르 알리 이집트 대통령궁 대변인은 22일 오후 “대통령은 혁명을 보위하기 위해 어떠한 결정과 조처도 내릴 수 있으며, 대통령이 내린 헌법선언·결정·법률 등은 최종적인 것으로 이의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고 선언했다고 <아에프페>(AFP) 통신 등 외신들이 일제히 보도했다. 현재 이집트는 지난해 2월 시작된 혁명의 여파로 헌법이 정지돼 잠정헌법에 의해 유지되고 있다. 무르시 대통령의 이번 조처는 이 잠정헌법에 규정된 대통령의 권한을 대폭 강화한 것이다. 야세르 대변인은 이와 함께 “어떤 사법 주체도 현재 헌법 초안을 만들고 있는 헌법제정위원회를 해산할 수 없다”는 점도 분명히 했다. 이번 조처는 이집트에 정식 헌법이 제정될 때까지 적용된다.
그러나 이집트의 과도한 이슬람화를 우려하는 세속주의 세력은 이번 조처가 이집트를 다시 독재로 몰아가려는 꼼수라고 반발하고 있다. 미래 이집트의 권력 구조를 결정하는 헌법 초안은 무르시와 뜻을 같이하는 무슬림형제단 등이 다수를 점하고 있는 정원 100명의 헌법제정위원회에서 만들고 있다. 이집트 야권이 무르시가 내놓는 일체의 조처에 이의를 제기할 수 없고, 헌법제정위원회를 견제할 수도 없다면 대통령에게 절대적인 권한을 부여하는 헌법이 만들어져도 막을 방법이 없다.
그와 함께 무르시 대통령은 지난해 혁명 과정에서 숨진 피해자들에 대한 재조사를 가능하게 하는 ‘혁명 검사’ 제도를 도입하는 한편, 평소 갈등을 빚어온 압둘마기드 마흐무드 검찰총장을 해임했다. 전임 호스니 무바라크 대통령 시절의 인사들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이집트 사법부는 지난 6월 대선 직전 시민들의 손으로 선출된 의회를 해산하는 등 반동적인 움직임을 보여왔다. 야세르 대변인은 이런 조처가 “무바라크 정권 시절의 국가기구를 깨끗이 정리하기 위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이집트 야권은 경악했다. 그동안 이집트를 이끌어온 군사정권은 이슬람 교의에 집착하는 대신 실리를 택하는 세속주의 전통을 지켜왔다. 6월 대선의 결과도 이슬람 근본주의 조직인 무슬림형제단 출신의 무르시 후보가 전체의 51.7%, 세속주의를 대표하는 아흐마드 샤피끄 후보가 48.2%를 득표하는 등 두 세력 모두 국민들의 지지를 받고 있다. 영국 <비비시>(BBC) 방송은 분노한 세속주의 세력들이 23일 전국 곳곳에서 대규모 항의시위를 진행했다고 전했다. 일부 시위대는 알렉산드리아 등 3개 도시에서 무슬림 형제단의 사무실을 습격해 불을 질렀다. 세속주의 세력의 저명 정치인이자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전 사무총장 무함마드 엘바라데이는 무르시를 “새로 등장한 파라오”라며 강력히 비난했다.
길윤형 기자 charism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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