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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함마드 무르시 이집트 대통령의 실각이 군부 쿠데타인지 논란이 많다. 무르시는 군부에 의해 실각된 걸까? 아니다. 그의 타도를 이끈 세력은 판검사들이었다. 군부는 판검사들이 차린 밥상에 최종적으로 숟가락을 올렸을 뿐이다.
호스니 무바라크 전 대통령이 하야한 뒤 치러진 의회 선거에서 무슬림형제단의 정당인 자유정의당 등 이슬람주의 세력이 다수를 차지했다. 자유정의당의 대통령 후보인 무르시의 당선이 유력시되던 대통령선거 이틀 전인 2012년 6월14일 최고헌법재판소는 의회 선거가 비례대표제 등을 위반해 위헌이라고 결정했다. 당시 국정을 담당하던 최고군사위원회는 곧 의회 해산을 명령했다.
7월에 취임한 무르시로서는 국정을 운영할 의회가 증발한 상태가 됐다. 무르시는 해산된 의회를 재소집하는 한편 연말로 예정된 신헌법 제정 뒤 새로운 의회 선거를 치른다는 칙령을 발표했다. 하지만 헌재는 무르시가 의회를 재소집할 권한이 없고, 무르시를 법원 모욕죄로 처벌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대법원 격인 파기원도 의회가 제기한 헌재 결정의 무효화 소송을 만장일치로 기각했다.
해산된 의회에 의해 구성된 헌법회의의 해산을 요구하는 소송도 제기됐다. 이 사건을 맡은 행정법원은 헌재의 의회 해산 결정을 다시 확인하면서도 헌법회의 해산에 관한 판결은 계속 미뤘다.
10월 들어 법원은 무바라크 하야의 결정적 계기가 된 타흐리르광장 시위대에게 폭력을 행사한 폭도 24명에 대해 무죄를 선고해 석방했다. 검찰도 이 사건에서 미온적으로 대응한 결과였다. 무르시는 검찰총장에게 물러날 것을 요구했다. 검찰총장은 대통령에 의해 해임될 수 없다는 법을 내세워 그 요구를 거부했고, 검찰 쪽도 반무르시 전선에 나섰다.
법원의 헌법회의 해산 결정이 어른거리자, 무르시는 11월 들어 신헌법이 제정될 때까지 자신의 결정이 사법부의 판결 대상이 아니며 최종결정권을 가지고, 헌법회의 해산 등을 금지하는 칙령을 발표했다. 반대세력들은 즉각 ‘현대판 파라오’라고 비난하며 본격적인 반정부 시위에 들어갔다. 무르시는 결국 이 칙령을 포기하며, 나중에 실각의 빌미만을 준다. 세속주의 세력들의 보이콧 속에서 헌법회의는 12월 들어 헌법 제정을 서둘러 국민투표까지 일사천리로 헌법이 통과됐다.
이 과정에서 무르시 지지세력은 헌법회의 해산 결정을 막으려고 법원을 봉쇄했고, 판검사들은 재판 및 국민투표 주재를 거부하는 거리시위까지 나섰다. 판사들은 또 자신들의 은퇴 연령 축소에 항의하는 태업과 시위를 벌였고, 반정부 세력들은 신헌법이 이슬람주의적이라고 대대적인 헌법 거부 시위에 나섰다. 올해 3월 법원은 무르시 정부의 선거법 위반을 들어 4월 총선 계획을 무효화했다. 야권도 총선을 보이콧했다. 무르시 정부는 붕괴되기 시작했다. 석달 뒤인 7월3일 압둘파타흐 시시 국방장관이 무르시 대통령의 퇴위를 발표했다. 1년간에 걸친 판검사들의 유례없는 정권타도 투쟁은 완성됐다.
이슬람권을 중심으로 판검사들의 법조 카르텔 세력이 기존 체제 수호의 보루로 떠오른다. 터키에서도 법원이 집권 이슬람주의 정당을 해산하는 판결을 시도했고, 파키스탄에서는 판검사들이 2000년대 중반 시효가 다한 무샤라프 군사정권을 무력화하는 투쟁의 선봉에 섰다. 세속주의 법률체계를 인정하지 않는 이슬람주의 세력의 위협에 맞설 수밖에 없는 이슬람권 법조인들의 절박한 이해관계가 있기는 하다. 하지만 군부의 무력보다는 판검사들의 법적 권한이 더 유용한 시대가 배경이다.
엔엘엘 논란에 이은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실종 사건이 결국 검찰로 넘어갔다. 1987년 군부독재 종식 이후 한국에서 모든 정치적 분란이 검찰에 맡겨지면서, 검찰공화국이라는 말이 나온다. 무한히 확장되는 검찰과 법원의 영역에서 어른거리는 과거 군부의 무소불위 역할을 보는 것은 지나친 우려인가?
정의길 국제부 선임기자 Eg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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