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판] 다음주의 질문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7일(현지시각) 밤 대국민 연설을 통해서 이라크의 이슬람 무장세력 ‘이라크·레반트 이슬람국가’(ISIL·이하 이슬람국가)에 대한 제한적 공습을 허가했다. 미국은 2011년 말 이라크에서 전투병력을 완전 철군시킨 이후 다시 이라크 전쟁에 발 하나를 담그게 됐다.
그는 “군 최고사령관으로서 미국이 이라크에서 또 다른 전쟁에 말려들게 하지는 않겠다”며 “우리가 테러리스트와의 전쟁에서 이라크 국민을 지원하기는 하지만 미국 전투병이 이라크에서 싸우려고 돌아가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미국이 이라크 전쟁의 수렁에 다시 빠지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오바마의 다짐은 과연 가능할까?
오바마는 “이라크의 전반적 위기와 관련해 미국이 군사적으로 취할 해결책은 없다”고 말했다. 미국 대통령이 미국의 군사적 해결능력이 없다고 명시적으로 말한 것은 이례적이다. 그만큼 이라크 사태에 대해 오바마가 말려들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시이다.
그럼 이라크 사태가 더 악화돼도 미국과 오바마가 이런 자세를 그대로 지킬 수 있을까? 이런 질문보다는 미국은 이라크 사태 악화를 막을 수 있느냐고 묻는 것이 현재로서는 의미가 있다. 하원 군사위의 민주당 간사인 애덤 스미스 의원은 “이번 경우는 별개의 상황이다”고 <뉴욕 타임스>에 말했다. 위기에 빠진 쿠르드족 세력을 지원하기 위한 것이고, “쿠르드족은 도움을 받고 방어해줄 만한 가치가 있다”는 것이다.
바그다드로 진군하던 이슬람국가는 최근 자신들의 후방에 있는 쿠르드족 민병대인 페슈메르가 쪽으로 전력을 돌렸다. 바그다드 진군에 저항이 심하자, 자신들의 후방에서 만만치 않은 군사력을 갖춘 페슈메르가를 먼저 제압해 뒤탈을 없애려 하고 있다. 미국으로서는 이슬람국가의 후방을 견제하는 쿠르드족을 돕고 강화시킴으로써 시간을 벌려고 한다. 그동안 이라크 정부군이나 온건 수니파 세력이 이슬람국가에 맞설 수 있게 준비하겠다는 계산이다.
현재 이슬람국가의 득세는 그들의 무장력 때문이 아니다. 이들이 이라크 내 어떤 세력보다도 목표와 사기가 뚜렷하고, 반면 다른 세력들은 구심력과 동기가 없기 때문이다. 이슬람국가는 불과 800명의 병력으로 이라크의 두번째 도시 모술을 점령했다. 미국이 이슬람국가에 맞설 대안 세력을 조직하지 못한다면, 남는 옵션은 이들의 봉쇄이다.
지금 이슬람국가가 점령한 시리아와 이라크 북부 지역은 그 자체로서는 미국에 전략적 이해관계가 크지 않다. 중동의 한가운데 지역이어서 분쟁을 확산시킬 지정학적 위상뿐이어서 봉쇄할 수 있다면 미국의 전략적 이익은 지킬 수 있다. 석유자원이 있는 쿠르드족 지역을 이슬람국가가 넘보자, 미국이 제한적 공습 카드를 내놓은 것도 그 일환이라고 할 수 있다.
사실 지금 미국이 할 수 있는 것은 별로 없다. 지상군 병력을 파견할 수도 없고, 파견한다고 해도 역효과만 우려된다. 이들을 지리적으로 봉쇄하고, 시간을 두고 실질적으로 영향력 확산을 차단하는 것 외에는 뚜렷한 해답이 없다. 문제는 이것도 가능할 것인가이다. 이슬람국가는 이라크 내의 일국 세력이 아니라 시리아와 이라크에 걸친 세력이 됐다. 이슬람권 전체에서 ‘전사’를 끌어모으는 초국적 세력이 됐다. 이라크와 시리아 내전은 연동화되어 광역전쟁화되고 있다.
10여년 전 이라크에 호기롭게 지상군 병력을 보내 침공을 감행하던 미국은 도대체 어디로 간 것인가? 알카에다를 능가하는 이슬람주의 무장세력들이 중동 한복판에서 ‘칼리프 국가’를 선포했는데, 미국은 지금 “군사적 해결능력이 없다”고 실토했다. 미국과 세계 모두에 이런 재앙이 없다.
정의길 국제부 선임기자 Egil@hani.co.kr
정의길 국제부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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