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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중동·아프리카

설레던 월급날, 21살 여공의 머리에 총알이 날아들었다

등록 2014-08-24 15:21수정 2014-08-25 16:13

지난 1월 방글라데시 치타공 외곽에 있는 한국수출가공공단(KEPZ) 내 영원무역 공장에서 최저임금 인상 시위 도중 경찰의 총에 맞아 숨진 파빈의 어머니가 딸의 영정사진을 들고 있다. 류이근 기자
지난 1월 방글라데시 치타공 외곽에 있는 한국수출가공공단(KEPZ) 내 영원무역 공장에서 최저임금 인상 시위 도중 경찰의 총에 맞아 숨진 파빈의 어머니가 딸의 영정사진을 들고 있다. 류이근 기자
총, 특권, 거짓말 : 글로벌 패션의 속살
방글라데시를 가다
① 10달러의 대가
국내 인권 및 노동단체들이 이달 들어 영원무역을 비롯한 한국 기업들의 방글라데시 사업장에서 빚어진 노동권 침해 실태를 조사했다. 지난 1월 방글라데시에서 한 여성 노동자의 사망으로 이어진 현지 진출 기업들과 현지 정부의 노동 탄압 사건에서 비롯된 움직임이었다. <한겨레>는 한국 기업의 사업장에서 일하는 방글라데시 노동자의 사망 사건 뒤 2명의 기자를 보내 약 한 달에 걸친 현지 취재 활동을 벌였으며, 이를 바탕으로 글로벌 패션 시장의 밑바닥을 이루고 있는 방글라데시 현지의 참상을 전한다.

# 2014년 1월, 영원무역 공장
기본급을 올린 회사가 내민 건
수당을 줄여놓은 월급명세서
기계가 서고, 5천명이 모였다

경찰의 구타, 연이은 총성…
무리속에서 파빈이 쓰러졌다

예부터 벵골과 펀자브에서 나는 쌀로 인도를 먹여살린다는 말이 내려왔다. 벵골의 나라란 뜻인 이곳 방글라데시는 갠지스강 하류의 넘쳐나는 물과 사시사철 따뜻한 기후가 어우러져 삼모작이 가능한 풍요로운 땅이다. 하지만 누구나 풍요를 누릴 수 있는 건 아니다.

땅 한 뙈기 없던 파빈의 아버지는 남의 집 농사일을 거들었다. 릭샤(자전거를 개조한 인력거)를 몰기도 했지만, 두 해 전 세상을 떴다. 늙고 병든 엄마는 일을 할 수 없었다. 그즈음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커다란 외국 공장이 들어섰다. 사람을 뽑는다기에 여동생 나시마가 줄을 서 면접을 봤다. 나시마는 면접 사흘 만에 봉제일을 시작했다. 없는 돈을 쪼개 치타공 시내까지 나가 학원에서 미싱을 배운 게 도움이 됐다. 나시마는 다달이 6000타카(약 8만원)를 벌어 왔다.

방글라데시 영원무역 신발 공장
월급 10달러 인상을 요구하다
미싱보조 파빈이 총탄에 쓰러졌다

“무섭지만 밥 달라는 ‘나쁜 배’ 때문에”
그녀 동생은 아직 미싱을 돌린다

나시마 덕에 엄마와 네 남매가 세 끼 밥을 제대로 먹을 수 있게 됐지만, 집안 형편이 별로 나아지지 않았다. 아픈 엄마는 병원은 고사하고 약국조차 갈 수 없었다. 3000타카(약 4만원) 넘는 빚은 쉬이 줄지 않았다. 집안 살림을 도맡던 파빈도 지난해 9월부터 돈을 벌러 나섰다. 동생 나시마의 추천으로 어렵지 않게 같은 회사에서 일자리를 얻었다. 이 나라에선 주로 친인척이나 친구의 추천을 받아 사람을 쓴다.

파빈은 올해 스물한 살이다. 이곳 여성들은 보통 이 나이면 결혼하지만, 파빈은 그럴 생각이 없었다. 딸은 엄마 곁을 지키려 했다. 파빈은 엄마에게 “시집 안 갈래. 엄마랑 같이 살 거야. 내가 돈을 벌게”라고 말하곤 했다. 파빈은 희망에 부풀어 있었다. 한두 달 더 공장에 다니면 동생처럼 헬퍼(보조)에서 오퍼레이터(미싱사)로 올라갈 수 있다. 방글라데시에서 가장 큰 외국계 기업인 영원무역 공장에 다니는 것도 자랑스러웠다.

지난 1월9일, 파빈은 여느 때처럼 새벽 5시30분께 눈을 떴다. 간단히 아침을 때우고, 7시께 동생과 집을 나섰다. 자매는 아침부터 들떠 있었다. 기다리던 월급날이다. 둘은 얼마 전 총리가 방송에 나와 “1월 월급분부터 최저임금이 인상된다”고 한 발표를 들었다. 각자 월급이 1000타카(1만3000원) 넘게 오를 것으로 잔뜩 기대했다. 파빈은 동생한테 “빚도 조금 갚고, 엄마를 의사한테 모시고 가자”고 말했다. 떨어지는 쌀도 급했다. 자매는 어느새 제복을 입고 긴 총을 멘 경비들이 지키고 서 있는 한국수출가공공단(KEPZ) 정문을 통과했다.

 

‘1000타카 인상되리라’ 설레던 월급날 21살 여공의 머리에 총알이 날아들었다

파빈은 7번, 나시마는 6번 공장으로 빨려들어갔다. 7번 공장에서 파빈은 퓨마(Puma) 브랜드 운동화를 만들었다. 아웃도어 브랜드 노스페이스의 제조업체로 유명한 한국 기업 영원무역은 노스페이스뿐만 아니라 나이키, 퓨마 등 수많은 스포츠, 아웃도어 브랜드들에 오이엠(OEM·주문자상표부착) 방식으로 의류와 신발 등을 납품한다. 스포츠, 아웃도어 오이엠 업체로는 세계 최대 규모다. 아직 헬퍼인 파빈은 서른명이 한 조로 일하는 작업대 맨 끝에서 하루 250~300켤레씩 쏟아져나오는 신발의 삐져나온 실밥을 잘라냈다. 흘러내린 본드도 깔끔하게 뜯어냈다.

갓 만들어진 신발이 내뿜는 독성에 종종 눈이 아렸다. 일할 때는 화장실에 가지 않는다. 가는 데만 4분이 걸리니, 볼일을 보려면 10분은 자리를 비워야 한다. 조장이나 매니저한테 갖은 욕설을 듣느니, 아침 8시30분부터 점심때까지 참는다. 파빈은 다른 노동자들보다 더 오래 참아야 한다. 헬퍼의 점심시간은 오퍼레이터 등 다른 노동자들보다 2시간 늦은 오후 2시부터 딱 30분 동안이다. 몇 달 더 일해 오퍼레이터가 되면 파빈은 동생과 같이 밥을 먹을 수 있다.

11시께, 기다리던 월급 명세서가 나왔다. 뭔가 이상했다. 약 3800타카(약 5만원)이던 이전 월급에서 700타카(약 9300원)밖에 오르지 않았다. 돌이켜보면 월급날이 보통때보다 4~5일 늦어질 때부터 수상했다. 수당이 문제였다. 정부의 최저임금 인상 방침에 따라 회사는 기본급을 올렸다. 대신 의료비 등 수당을 확 줄였다. 총액이 파빈이 기대했던 금액보다 낮을 수밖에 없었다.

다양한 자인과 색감의 운동화.
다양한 자인과 색감의 운동화.
이내 공장이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그러자 관리자들이 기계를 세웠다. 12시, 점심시간이 되자 5000여명의 노동자들이 밥을 먹지 않은 채 공장 앞 빈터에 모여들었다. 회사 쪽 연락을 받았는지 경찰도 이미 공단 안으로 들어와 있었다. 경찰이 무리 속 두 남자를 불러 세웠다.

“당장 공장 안으로 들어가, 다시 일을 시작해.” 두 남자는 “올린 월급을 주기 전엔 못 들어갑니다” 하며 버텼다. 그러자 경찰이 이들을 두들겨 패기 시작했다. 품질검사를 담당하는 하룬이 나서서 경찰을 말렸다. “우리가 기계를 부수거나 공장에 피해를 주지도 않았는데 왜 때립니까?” 그러자 경찰은 “네가 노동자 대표냐”며 하룬의 멱살을 잡고 검문소 쪽으로 끌고 가 폭행했다. 흥분한 노동자들이 경찰 쪽으로 몰려갔다. “하룬을 풀어줘라, 때리지 마라.” 당황한 경찰이 최루탄을 쏴댔다. 눈을 따갑게 쏘는 연기가 노동자를 순식간에 흐트러뜨렸다. 노동자들이 벽돌을 깨 던지기 시작했다. 나시마는 바닥을 빠른 속도로 휘젓는 최루탄의 불꽃이 행여 옷에 옮겨붙을까 무서워 종종걸음으로 허둥대며 다시 공장 안으로 들어갔다. 자리에 두고 온 히잡을 챙겨 언니와 서둘러 집으로 돌아갈 생각뿐이었다. 무슬림 여성들은 머리에 히잡을 두르지 않고 밖에 나가지 않는다.

“탕, 탕, 타당!” 밖에서 총소리와 비명소리가 터졌다.

공장 밖으로 뛰쳐나온 나시마의 눈에 언니 파빈의 모습이 들어왔다. 언니는 바닥에 누운 채 다른 노동자들에게 둘러싸여 있었다. 총알이 파빈의 머리를 관통했다. 병원이 있는 치타공 도심으로 들어가는 길목인 카르나풀리강 다리를 건너기 전 파빈의 심장은 더는 뛰지 않았다. 파빈은 결국 네번째 월급을 받지 못했다.

 

지난 1월 방글라데시 치타공 외곽 영원무역 공장에서 미싱보조사로 일하다 경찰이 쏜 총에 맞아 숨진 파빈 악터의 가족이 대나무를 엮어 만든 자신들의 집 앞에 서 있다. 류이근 기자
지난 1월 방글라데시 치타공 외곽 영원무역 공장에서 미싱보조사로 일하다 경찰이 쏜 총에 맞아 숨진 파빈 악터의 가족이 대나무를 엮어 만든 자신들의 집 앞에 서 있다. 류이근 기자

# 2010년 12월 영원YSL공장
“노동자대표가 누구야”
회사쪽에 불려간 이들
양쪽 손목·발목이 깊게 베였다

분노한 노동자 수천명의 시위
그러나 노동자는 ‘괴한’으로
회사는 ‘피해자’로 보도됐다

3년 전에도 월급날이었다.

파빈이 일하던 한국수출가공공단에서 카르나풀리강을 건너 차로 한 시간쯤 떨어진 곳에 치타공수출가공공단(CEPZ)이 위치하고 있다. 영원무역의 방글라데시 공장 대부분이 이곳에 모여 있다. 2010년 12월11일, 재단사 마슈는 여느 때처럼 출입문짝도, 후미등도 없는, 찌그러진 냄비처럼 곳곳이 파인 고물 버스를 타고 공장으로 향했다.

치타공수출가공공단 정문 앞에 8시쯤 내려 영원무역 공장까지 걸어갔다. 특별할 것 없는 아침이었다. 전날 퇴근할 때 받아 든 월급 명세서가 못마땅하긴 했다. 최저임금이 오른다는 정부 발표에 좋아했는데, 막상 손에 쥔 월급은 5400타카(약 7만2000원)가 안 됐다. 기대했던 액수보다 500타카(약 6700원)가량이 적었다.

‘결근도 한 번 안 하고 열심히 일했는데…’

하지만 공장 안에 있는 누구도 불만을 섣불리 입 밖에 내지 않았다. 괜히 나섰다가 해고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아무 일 없이 오전이 지나갔다. 경찰이 경비실에 와 있는 게 이상하긴 했다. 전엔 한 번도 없던 일이다.

점심을 먹으면서 제대로 오르지 않은 월급 얘기가 자연스럽게 나왔다. 한 친구가 마슈한테 주의를 줬다. “괜히 월급 갖고서 이러쿵저러쿵하지 마. 사장도 할 만큼 한 거야. 잘못 말했다간 우리만 손해봐.” 대화는 금세 끊겼다. 회사도 단속에 나섰다. “동요하지 말고, 일이나 열심히 해라. 서로 월급 얘기하지 말고, 문제가 있으면 나를 찾아와라.” 누구도 이 말을 한 관리자를 찾아가지 않았다.

한 시간쯤 지나, 한 여성의 목소리가 출입문 쪽에서 들려왔다. “우리는 밖에서 투쟁하고 있는데, 당신들은 여기서 뭣 하고 있는 거냐. 밖으로 나가자. 안 그러면 기계를 때려부수겠다.” 여성의 손엔 몽둥이가 들려 있었다. 놀란 건 노동자들보다 회사 쪽이었다. 관리자들이 서둘러 아래층으로 내려와 기계를 세웠다.

방글라데시 치타공 외곽에 있는 한국수출가공공단(KEPZ) 내 영원무역의 한 공장에서 여공들이 미싱을 돌리고 있다. 이곳은 지난 1월 최저임금 인상 시위를 벌이다가 경찰이 쏜 총에 맞아 숨진 미싱 보조사 파빈 악터가 일하던 공장이다. 외부인의 출입이 철저히 통제돼 있어, 공장 노동자가 휴대전화로 찍은 사진이다.
방글라데시 치타공 외곽에 있는 한국수출가공공단(KEPZ) 내 영원무역의 한 공장에서 여공들이 미싱을 돌리고 있다. 이곳은 지난 1월 최저임금 인상 시위를 벌이다가 경찰이 쏜 총에 맞아 숨진 미싱 보조사 파빈 악터가 일하던 공장이다. 외부인의 출입이 철저히 통제돼 있어, 공장 노동자가 휴대전화로 찍은 사진이다.

마슈는 동료들과 공장 밖으로 나갔다. 얼마 떨어져 있지 않은 영원무역의 와이에스엘(YSL) 공장 앞에 노동자들이 모여 있었다. 5층짜리 와이에스엘 공장에서는 영원의 대표 제품인 노스페이스 의류를 만든다. 노동자 대부분이 여성이다. 노동자들이 “우리 대표들이 안에 갇혀 있다. 협상을 하러 갔는데 아직까지 내려오지 않고 있다. 어디 있는지 찾아봐달라”고 말했다.

마슈는 10여명의 남자들과 함께 공장 안으로 들어갔다. 계단에 사람들이 몰려 있었다. 화분이 깨져 바닥에 나뒹굴고 있었지만, 공장 안 기계들은 멀쩡해 보였다. 4층으로 올라갔을 때, 한 사무실 캐비닛 안에서 세 사람을 발견했다. 누구한테 맞았는지 온몸이 멍들어 있었다. 마슈는 숨만 겨우 내쉬는 이들을 아래층으로 옮겼다.

다시 5층으로 올라갔다. 두 노동자가 사무실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둘 다 양쪽 팔목과 발목이 깊게 베였다. 피가 흥건했다. 경련을 일으키듯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들것을 만들어 옮겼다. 와이에스엘에서 오랫동안 오퍼레이터로 일해온 슈리와 그의 동료들도 이를 목격했다.

마슈의 공장과 달리 와이에스엘 공장은 아침부터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애초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적은 월급을 받은 노동자들은 9시30분께 기계를 세웠다. 관리자들은 노동자를 설득해 기계를 다시 돌렸다. 재봉틀이 점심 뒤 또다시 멈추자, 회사 쪽은 “파업을 이끄는 대표가 누구냐”고 다그쳤다.

모든 수출가공공단(EPZ·Export Processing Zone) 안에서는 노조 설립이 사실상 금지돼 있다. 외국자본을 끌어들이기 위한 방글라데시 정부의 오랜 선물이다. 노조가 없는 공장에 노동자 대표가 있을 리 만무했다. 회사 쪽은 다섯명을 지목해 위층 관리자 사무실로 불렀고, 그들은 제 발로 내려오지 못했다.

마슈는 테러로 중상을 입은 노동자들을 공단 정문 앞까지 옮겼다. 삼륜 택시인 시엔지(CNG)를 불러 세워 부상자들을 싣고 치타공대학병원으로 보냈다. 마슈는 “시엔지에 태울 때 이미 죽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들이 나중에 어떻게 됐는지는 모른다”고 말했다. 어떻게 된 영문인지 병원에 테러를 당해 실려온 이들의 의료기록이 남아 있지 않다.

마슈는 다음날 아침에도 평상시처럼 출근했다. 8시 전에 공단에 도착했지만, 정문을 지키는 경찰이 그를 들여보내지 않았다. 다른 한국 기업에서 일하는 아내만 들어갔다. 경찰은 사원증을 확인해 영원무역 노동자들만 통과시키지 않았다. 영원무역의 또다른 공장 와이에스에스(YSS)의 품질검사관 미루도 공장 안으로 들어가지 못한 채 정문 앞에서 서성거렸다.

공단 안으로 들어가지 못한 영원무역 노동자가 금세 수천명으로 불었다. 전날 와이에스엘 공장에서 있었던 노동자 테러 사건과 제때 제대로 받지 못한 월급이 노동자들의 분노를 키웠다. 노동자들은 수출가공공단을 관리감독하는 총리실 산하 투자청(BEPZA) 건물 정문을 부쉈다.

지난 1월 방글라데시 제2도시 치타공 외곽 한국수출가공공단(KEPZ)에 있는 영원무역 공장에서 최저임금 인상 시위 현장에 있다가 경찰이 쏜 총에 맞아 다리를 다친 청년 노비 알롬(22). 그가 총에 맞은 양쪽 대퇴부를 보여주고 있다. 류이근 기자
지난 1월 방글라데시 제2도시 치타공 외곽 한국수출가공공단(KEPZ)에 있는 영원무역 공장에서 최저임금 인상 시위 현장에 있다가 경찰이 쏜 총에 맞아 다리를 다친 청년 노비 알롬(22). 그가 총에 맞은 양쪽 대퇴부를 보여주고 있다. 류이근 기자

갑자기 경찰이 최루탄을 쐈다. 총도 이내 불을 뿜기 시작했다. 픽픽 사람들이 쓰러져 나갔다. 대테러부대 랩(RAB)도, 군인인 국경수비대(BGB)도 경찰에 섞여 있었다. 군경은 골목으로 달아나는 노동자까지 쫓아가 총으로 쐈다. 미루 옆에 서 있던 남자도 총을 맞아 그 자리에서 숨졌다. 그는 세명의 주검을 릭샤밴(짐수레를 단 자전거)에 실었다. 다른 곳에 있던 마슈도 세명의 주검을 릭샤밴에 올렸다. 마슈는 “이곳저곳에서 총에 맞아 죽은 사람을 릭샤밴에 실어 어디론가 운반하는 것을 봤다”고 말했다. 안와르는 아침까지 공단 정문 앞에 함께 서 있던 사촌동생을 밤늦게 치타공대학병원에서 만났다. 영원무역에서 함께 일했던 동생은 냉동고에 누워 꼼짝도 하지 않았다. 안와르가 병원에서 본 주검만 또다른 영원무역 노동자를 포함해 여덟이었다.

2010년 12월12일, 방글라데시와 전세계 언론은 치타공수출가공공단 노동자 시위 진압 과정에서 릭샤꾼을 포함해 최대 다섯명이 숨졌다고 보도했다. 희생자 가운데 영원무역 노동자는 없다고 했다. 마슈, 미루, 안와르가 목격한 많은 주검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이 중 마슈는 지금도 영원무역에서 일하는 노동자의 익명이다. 다음날 서울에서 영원무역은 기자들에게 ‘영원 치타공 공장, 괴한들에게 공격받다’라는 제목의 보도자료를 뿌렸다. 노동자들이 최저임금 인상을 잘못 이해해 불거진 사태였고, 정체를 알 수 없는 외부 불순세력이 공장을 무단 점검해 기물을 파손했다는 내용이었다. 파빈이 머리에 총을 맞고 숨진 다음날인 2014년 1월10일 영원무역이 낸 보도자료의 내용도 엇비슷했다.

파빈의 죽음에 영원무역 주가는 당일 잠시 하락했으나 이내 회복했다. 서울 여의도 한국유가증권시장에 상장된 영원무역의 주가는 1월9일 전날에 견줘 4.5%가량 하락했지만, 이후 상승 추세를 이어가다 1주일 만인 1월16일엔 사고가 있기 전보다 높은 3만8750원으로 뛰었다. 파빈의 죽음을 부른 최저임금 인상을 심각하게 보는 증권사 애널리스트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경쟁관계에 있는 다른 동남아시아 국가들도 마찬가지로 인건비 상승 요인이 있다고 봤다. 방글라데시의 임금은 조금 더 오른다 해도 여전히 세계에서 가장 낮은 수준이었다. 애널리스트들은 대규모 생산능력과 품질경쟁력을 갖춘 영원무역이 인건비 상승으로 인한 비용 증가를 글로벌 바이어들에게 전가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이들은 하나같이 투자자들에게 영원무역 주식의 매수를 권했다.

지난 3월 중순께 만난 나시마는 언니가 총을 맞아 죽은 공장에서 여전히 미싱을 돌리고 있었다. 언니가 죽은 뒤 처음 며칠 동안은 작업대에서 울기만 했다고 공장에서 같이 일하는 샤르민이 말했다. 나시마는 “무섭지만 밥을 찾는 ‘나쁜 배’가 있어서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 이제 나시마는 혼자 벌어 가족을 부양해야 한다.

공장은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 이전과 다름없이 돌아가고 있다. 시위 뒤 수당 삭감은 없던 일이 됐다. 하지만 잔업이 사라졌다. 그래서 6000타카(약 8만원)이던 나시마의 월급은 최저임금 인상에도 500타카(약 6700원) 오르는 데 그쳤다. 공장은 기존 생산량을 유지하면서도 잔업을 없애 임금 인상 부담을 덜었다. 나시마는 예전에 10시간에 하던 일을 지금은 8시간 안에 마쳐야 한다고 했다. 나시마는 “점심시간이 30분에서 15분만 더 늘었으면 좋겠다. 그러면 기도를 할 수 있을 것 같다. 화장실도 편하게 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치타공/류이근 유신재 기자 ryuyigeun@hani.co.kr

▷심층리포트 : 총, 특권, 거짓말: 글로벌 패션의 속살
-남동생의 ‘노스페이스’ 잠바 뒤엔 방글라데시의 눈물이 있었네

▷심층리포트 : 총, 특권, 거짓말: 글로벌 패션의 속살
-영원무역은… 내가 입은 ‘노스페이스’ 생산기지였네”

▷심층리포트 : 총, 특권, 거짓말: 글로벌 패션의 속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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