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권에 비판적 내용 보도했다고…터키, 언론인 등 27명 체포 ‘재갈 물리기’

터키 이스탄불에서 14일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에 비판적인 언론인 등을 정부가 체포한 데 항의하는 여성들이 법원 앞에서 정부를 비판하는 내용의 신문을 들어보이고 있다. 터키 정부는 에르도안 대통령에 비판적인 이슬람 성직자 펫툴라흐 귈렌에 대해 우호적인 보도를 한 터키 최대 일간지 <자만>의 편집국장을 비롯해 귈렌에 우호적인 기자 등 최소 27명을 체포했다. 이스탄불/AP 연합뉴스

일간지 편집국장·방송사 회장 등
‘대통령 정적 지지’ 32명에 영장 발부
미·EU “민주주의 위협” 유감표명

터키 경찰이 최대 일간지 편집국장을 비롯해 정권에 비판적인 언론인들을 대대적으로 체포했다. 유럽연합(EU) 등은 언론 탄압이라며 비판하고 나섰다.

터키 경찰은 14일 터키 전역에서 최대 일간지 <자만>의 에크렘 두만리 편집국장과 히다예트 카라카 <사만욜루 티브이> 회장, 방송사 프로듀서, 작가 등 언론인과 일부 경찰관 등 27명을 체포했다고 <아에프페>(AFP) 통신 등 외신들이 전했다. 체포영장은 모두 32명에 대해 발부됐고, 국가전복과 위조, 명예훼손 등의 혐의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날 이스탄불 외곽의 <자만> 본사 앞에서는 2000여명의 시민과 언론인이 모여 항의 시위를 벌였다. 경찰이 사복경찰을 투입해 두만리 편집국장을 체포한 데 대해 시위대는 “자유 언론을 침묵하게 만들 수 없다”고 외쳤다.

체포된 이들의 상당수는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60) 터키 대통령의 동지였다가 최대 정적이 된 이슬람 성직자 펫툴라흐 귈렌(73)을 지지하는 언론인들로 알려졌다. 미국에 망명 중인 귈렌은 이슬람에 뿌리를 둔 집권 정의개발당(AKP)을 창당한 에르도안 대통령과 정치적 노선이 같았으나 지난해말 에르도안 대통령의 부패 추문과 관련된 대규모 비리 사건이 터지면서 대립관계로 돌아섰다.

2002년 처음 총리로 집권한 에르도안 대통령은 세 차례 총선에서 승리한 뒤 연임 규정을 피해 올 8월 최초의 직선 대통령에 당선돼 장기집권의 길을 열었다. 대대적인 군부 숙청으로 지지기반을 굳히고 경제 성장과 이슬람주의 색채 강화로 보수층과 지방세력의 지지를 얻었다. 하지만 권위주의 통치를 강화하고, 최근 토건세력과 결탁한 부패 스캔들이 터지면서 반대파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미국과 유럽 등 서방진영 등은 터키 경찰의 언론인 체포에 유감을 표명했다.

젠 사키 미 국무부 대변인은 “언론의 자유, 정당한 법 절차, 사법권 독립은 건강한 민주주의의 핵심 요소”라고 강조했다. 페데리카 모게리니 유럽연합(EU) 외교안보 고위대표는 “경찰의 언론인 체포는 민주주의의 핵심 가치인 언론의 자유와 양립할 수 없는 일”이라고 비판했다.

박영률 기자 [e-mai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