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디의 새 국왕 살만이 지난 6일 사우디 국왕의 국정자문기구인 슈라위원회에 참석해 경례하는 자세를 취하고 있다. AP 연합뉴스
[토요판] 다음주의 질문
사우디아라비아의 왕자가 몇명인지는 알 수 없다. 23일 숨진 국왕 압둘라의 부고 기사에서 <뉴욕 타임스>는 그가 7천명에 이르는 왕자와 공주들의 수당을 감축했다는 업적을 소개했다. 사우디 왕가의 규모는 약 1만5천명에 달하고, 그중 2천여명에게 권력과 부가 독점되어 있다고 한다.
국방·내무·외무 장관, 13개 지사 중 리야드와 메카 등 주요 지사는 왕가가 독점한다. 재무·노동·정보·산업·석유 등 경제 분야 각료는 평민에게 돌아가기는 하나, 부장관은 왕가가 차지해 사실상 실권을 놓지 않는다. 30명이 넘는 내각 각료 중 보통 12명 이상이 왕가이다. 각료급이 아닌 군과 경찰, 정보기관 등 안보 관련 고위직은 모두 왕가 몫이다. 3천억달러 안팎인 나라 예산의 40%가 왕가의 영향력 아래 있다. 왕가 재산은 1조4천억달러를 넘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사우디 2013년 국내총생산인 7185억달러의 두 배이다.
과거 어떤 전제군주나 절대왕정도 사우디처럼 왕족들이 각료 및 주요 정부 고위인사직을 차지한 예가 없다. 전제적 왕권만큼이나 국가운영도 전제봉건적이다. 여성들이 운전하면 처벌받고, 도둑은 손발이 잘리고, 공개참수형이 시행되며, 음악이 금지된다. 종교경찰이 주민들의 사생활을 감시한다. 언제든지 이슬람율법 샤리아에 따라 처벌할 수 있다.
이런 사우디가 현대 이슬람 세계의 명실상부한 종주국 구실을 해왔다. 이슬람 세계의 모순을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사우디는 현대 이슬람 세계 모순의 축소판이다. 국왕의 사망은 사우디의 최근 위기를 더욱 재촉한다.
첫째, 지도부의 노쇠화이다. 현대 사우디 왕국을 건설한 이븐 사우드 국왕 뒤 6명의 국왕이 그의 아들들이었다. 6대의 왕이 내리 같은 형제이다 보니, 갈수록 나이가 많아져 최근에는 80살을 전후해 왕좌에 오른다. 새로 취임하는 살만 국왕은 79살, 다음 왕위에 오를 이복동생인 왕세자 무끄린도 68살이다.
둘째, 석유값의 하락이다. 석유값은 이제 배럴당 50달러를 하회하며 최고가의 3분의 1 정도이다. 사우디는 자신들의 시장 몫을 지키려고 현재 감산을 거부해, 석유값 하락을 주도하고 있다. 사우디는 다른 산유국에 비해 덤핑 공세를 버텨낼 여력도 있지만, 당장 감산으로 잃게 될 수입이 아쉬운 측면도 있다.
셋째, 이슬람국가(IS) 위기이다. 반년에 걸친 미군의 공습에 불구하고 이라크와 시리아에서 이슬람국가가 쇠퇴할 기미가 없다. 더구나 이슬람국가의 부상에는 사우디의 간접적 역할이 있다. 시아파인 시리아의 아사드 정권 견제를 위해 암묵적으로 이슬람국가로 뭉치는 수니파들을 지원했다.
넷째, 예멘 위기이다. 시아파인 후티 반군이 대통령궁까지 장악하는 득세로 기존 수니파 정부가 무력화됐다. 이는 현 정부와 내전 상태인 알카에다 세력에게 세력 확장의 기회를 준다. 이슬람국가가 시아파를 견제하려는 수니파들의 단결과 지원으로 성장한 것처럼, 예멘에서도 알카에다가 수니파의 중심으로 부상할 수 있다. 현재 알카에다 세력 중 가장 강력한 세력인 아라비아반도알카에다(AQAP)가 예멘에서 이슬람국가처럼 준국가화할 가능성이 있다.
사우디는 북쪽에 이슬람국가, 남쪽에 알카에다라는 이슬람주의 무장 세력에 노출됐다. 이들 세력에 적극적으로 대응하지도 못하고 있다. 그럴 경우, 시아파 이란의 입지가 커진다.
사우디는 개혁과 현대화를 바라는 대부분의 무슬림에게 시대착오적인 봉건국가로, 이슬람주의 세력한테는 미국 등 이교도에게 성지의 부를 팔아 배를 채우는 부패한 왕가일 뿐이다. 무엇보다도, 사우디의 평민들에게는 미국 등 서방과 친하다는 것을 빼고는 통치교리에서 이슬람국가, 알카에다, 탈레반과 별다른 차이가 없을 것이다.
정의길 선임기자 Egil@hani.co.kr
정의길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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