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아, 이라크, 레바논, 요르단, 팔레스타인이 탄생하게 된 배경을 보여주는 영화 <아라비아의 로렌스>. 세계 1차대전 중 아랍 지역에 파견된 영국 정보국 소속 로렌스가 오스만튀르크 제국 치하의 아랍 부족들을 선동해 봉기하는 장면. <한겨레> 자료사진
내전에 휩싸인 시리아와 이라크는 전쟁 이전 상태로 되돌아갈 수 있을까?
이 질문은 결국 현재 출구가 안 보이는 시리아·이라크 전쟁의 해법을 묻는 것이다. 이 질문에 답하려면 먼저 우리는 이 두 나라뿐만 아니라 주변의 요르단·레바논·팔레스타인 탄생의 역사적 근원을 봐야 한다. 이들 나라는 1차대전이 끝난 뒤 인위적으로 급조된 나라들이다. 주변의 이집트, 터키, 이란, 사우디아라비아 등과 비교해서, 하나의 나라, 별개의 나라로 성립될 역사적 근거가 별로 없다.
영화 <아라비아의 로렌스>는 이 나라들이 탄생했던 배경을 일부 보여준다. 1차대전 때 영국은 독일과 동맹국이던 오스만튀르크 제국 치하에 있던 주요 아랍 부족들을 선동해 봉기시켰다. 당시 메카를 관할하던 하시미테 가문의 둘째 아들 파이살이 그 영화 주인공인 영국 장교 로렌스와 손을 잡고 봉기에서 큰 역할을 했다. 영국은 하시미테 가문에 전쟁 뒤 통일 아랍 국가의 건설과 그 통치권을 약속했다. 하지만 전쟁이 끝나자 승전국인 영국과 프랑스는 사이크스-피코 협정 등을 통해서 자신들의 세력권을 나눠먹다가 현재의 이라크·시리아·요르단·레바논·팔레스타인 판도를 만들어냈다. 시리아와 레바논은 프랑스, 이라크·요르단·팔레스타인은 영국의 세력권으로 들어갔다. 파이살은 처음에는 시리아의 국왕이 됐다가 프랑스에 의해 축출된 뒤 아무런 연고가 없던 이라크의 국왕으로 ‘인사 이동’됐다. 이 나라들의 인위적 급조성을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오스만튀르크 제국 치하에서 이 지역은 수많은 민족과 종파가 뒤얽혀 살아온 곳이다. 종교나 민족, 부족별로 ‘미네트’라는 공동체로 공존하며 살아왔다. 예를 들어 유대교 주민 미네트도 있었다. 이들은 아랍어를 사용하는 유대교도였을 뿐이었다. 지금처럼 아랍 민족들과 대립적 관계의 정체성을 갖는 ‘유대인’이 아니었다. 이들은 나중에 유럽의 유대인들이 이곳에 와서 이스라엘을 건국하고 거기에 편입되면서, 현재와 같은 정체성의 유대인이 됐다.
현재 시리아나 이라크의 국경선은 사막지대에 직선으로 그어져 있다. 두 나라의 접경 지역은 원래 거기에 살던 수니파 아랍계 주민들이 경계가 없이 살던 곳이었다. 그곳은 지금 이슬람국가(IS)가 점령해서 국경선의 의미를 지워버렸다. 현재 이슬람국가의 영역은 이라크와 시리아의 수니파 아랍계 주민들의 전통적 영역과 거의 일치한다.
2003년 미국의 이라크 침공 이후 시리아와 이라크의 국경선은 지워지면서 판도가 바뀌었다. 이라크의 동남부는 시아파 지역, 이라크의 서부에서 시리아의 동북부까지는 이슬람국가가 점령한 수니파 아랍계 주민 지역, 이라크와 시리아의 북부는 쿠르드족 지역, 시리아의 지중해 지역은 바샤르 아사드 정권의 알라위파 주민 지역, 시리아의 레바논 접경 지역은 시아파 헤즈볼라 지역이 됐다.
지금은 고인이 된 미국의 외교 거물 리처드 홀브룩은 미국의 이라크 침공 뒤 이라크 삼분론을 주장했다. 이라크를 서북부의 수니파, 동남부의 시아파, 북부의 쿠르드족 국가로 사실상 나누는 연방제만이 이라크의 혼란을 잠재우는 방법이라고 주장했다. 이런 제안은 이라크에서만이 아니라 시리아까지도 포함해서 적용해야 할 시점이 아닌가? 이제 시리아와 이라크에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세력들을 인정하고 공존하는 방법을 생각할 때이다. 이슬람국가가 탄생하고 생존하는 근본 배경은 시리아와 이라크의 수니파 아랍계 주민들이 현재로서는 이슬람국가 외에는 선택할 대안이 없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그들을 위한 정부나 국가가 가능하다고 인정해야만, 그들이 이슬람국가에 대한 지지를 철회하고 대체하는 세력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이슬람국가는 제국주의의 산물인 이라크와 시리아 등 현재 중동 국가들이 만들어낸 배설물이다.
정의길 국제부 선임기자 Egil@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