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의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가 8일(현지시각) 이란의 수도 테헤란에서 종교도시 곰의 성직자들을 만나 “지난밤 (이라크 내 미군 주둔 기지에 대한) 미사일 공격은 단지 그들(미국)의 뺨을 한대 친 것”이라며 “보복이라고 할 수 없는 수준”이라고 연설하고 있다. 테헤란/AFP 연합뉴스
이라크 총리실은 8일(현지시각) 이란 혁명수비대가 이라크의 미군 주둔 기지를 미사일로 공격하기 직전 아딜 압둘마흐디 이라크 총리에게 계획을 간략하게 구두로 통보했다고 밝혔다.
총리실은 이날 “이란이 압둘마흐디 총리에게 ‘가셈 솔레이마니 사령관의 피살을 보복하는 작전이 개시됐다. 표적은 미군이 주둔하는 곳에 한정했다’라고 전달하면서도 정확한 위치는 특정하지 않았다”라고 확인했다. 이란의 미군 기지에 대한 공격 계획은 이라크 쪽을 통해 미국에도 전달됐다. 곧 ‘보복 공격’을 하겠다는 뜻을 보복할 대상에게 의도적으로 흘린 것으로 비쳐질 수도 있는 대목이다. 미국 언론들은 이날 이란의 공격이 외부의 예상보다는 극히 평범한(conventional) 형태로 나타났다며, 이란이 미국과의 무모한 확전을 피하기 위해 ‘주의 깊게 조율된 공격’에 나선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실제로 “미국인 테러리스트 최소 80명이 죽었다”는 이란 쪽의 주장과는 달리, 미국과 연합군 쪽에선 사상자가 없다는 소식이 속속 전해지고 있다. 이란이 반격하면 당장에라도 보복에 나설 것처럼 보였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도 트위터에 ‘모든 게 괜찮다’는 글을 올리기도 했다.
미국 <시엔엔>(CNN) 방송은 이와 관련 “이란이 미국인 사상자를 내지 않으려고 의도한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했다. 이 방송은 미 행정부 관계자 등의 말을 인용해, 표적이 된 아인알아사드 공군기지에서 미사일이 떨어진 곳은 미군이 많지 않은 지점인데다 공격 시간도 미군 부대원이 거의 활동하지 않는 한밤중이었다는 점을 그 근거로 들었다. 또다른 표적이었던 아르빌의 경우, 미사일 공격이 미국 영사관 인근에 이뤄졌다. 미국 영사관을 직접 공격하지는 않으면서 위협적인 메시지는 전달한 셈이다. 이란이 복수를 부르짖는 국내 여론을 진정시키면서도 미국을 과도하게 자극하지 않을 정도로 공격 수위를 조율한 게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워싱턴 소재 싱크탱크 ‘세계전략센터’의 파이살 이타니 부소장은 <블룸버그> 통신 인터뷰에서 “이란은 체면을 세울 만큼 극적이면서도, 미국의 압도적 군사행동으로 이어질 수 있는 긴장의 악순환을 피할 수 있을 정도로 절제된 반응이 필요했다”며 “이번 공격은 (복수로) 인정받을 만큼 스펙터클하지만 미국이 그 대응으로 긴장을 더 고조시키지는 않을 정도”라고 진단했다.
이와 관련 주목되는 것이 모하마드 자바드 자리프 이란 외무장관의 발언이다. 그는 이날 “우리는 긴장을 고조시키거나 전쟁을 하길 원치 않는다. 하지만 우리의 국민과 고위 군인을 겨냥한 비겁한 공격을 감행한 (미군) 기지에 대해 방어적인 비례 대응을 한 것”이라는 글을 트위터에 올렸다. 이번 공격이 ‘유엔 헌장 51조’에 명시된 무력 도발에 따른 자위권 행사라는 점을 강조하는 한편, 향후 전개될 추가적 상황에 대한 공을 미국 쪽으로 넘긴 것으로 풀이된다.
이정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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