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포칼립스 같아. 사방이 피투성이”…병원으로 부상자 밀려들어
사람들 피 흘리며 피신…시장 “히로시마 폭발 연상” 울음 터뜨려
병원 앞에 몰려든 레바논 베이루트 폭발 부상자들
4일(현지시간) 레바논 수도 베이루트 항구의 대규모 폭발 부상자들이 항구 인근 병원 밖에서 치료를 받기 위해 기다리고 있다. 베이루트 AFP/연합뉴스
4일(현지시간) 오후 6시가 조금 넘어 저녁 식사가 막 시작될 무렵 레바논 수도 베이루트의 항구에서 진한회색 연기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로 유포된 동영상을 보면 항구의 한 창고에서 불이 나 여기서 뿜어져 나온 연기 사이로 마치 폭죽이 터지듯 섬광이 번쩍였다.
평범한 화재처럼 보였던 이 불은 바로 옆 다른 창고를 달궜고 연기가 회색에서 암적색으로 바뀌더니 엄청난 폭발음과 함께 터져버렸다.
원자폭탄이 터진 것처럼 구형의 흰 구름이 순식간에 부풀어 올라 상승기류를 타고 버섯 모양으로 하늘로 치솟았고 폭발의 충격파는 초고속으로 베이루트 시내를 삼켜버렸다.
창고 안에 강한 폭발력을 지닌 인화성 물질이 대량으로 저장됐다는 점을 짐작게하는 장면이었다. 현지 언론들은 위험한 인화성 물질이 어떻게 시내와 가까운 곳에 저장됐는지 진상을 규명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현지 보도와 SNS로 전달된 사진, 동영상에는 단 몇 초 만에 초토화된 베이루트 시내 중심가의 모습이 담겼다. 충격파와 열파 탓에 타버린 자동차는 뒤집혔고 붕괴한 건물도 셀 수 없을 정도였다.
초강력 충격파에 10㎞ 거리에 있는 건물의 유리창까지 박살이 났다고 현지 언론들은 보도했다.
미셸 아운 레바논 대통령 관저, 사드 하리리 전 총리의 거주지도 손상됐다고 미국 CNN방송이 전했다.
한 목격자는 로이터통신에 "베이루트 하늘 위로 불덩이와 연기가 피어올랐고 사람들이 피 흘리며 소리 지르고 뛰었다"며 "건물에서 발코니가 떨어져 나갔고 고층 건물 유리가 깨져 거리로 떨어졌다"고 말했다.
항구와 가까운 도로와 공터에 피로 범벅된 시신이 널브러진 동영상도 SNS에 게시됐다. 레바논 정부가 발표하는 사망자와 부상자 수는 계속 늘고 있다.
자동차 안에서 찍은 한 동영상을 보면 현장에서 꽤 멀리 떨어진 곳을 달리던 이자동차가 폭발이 일어나고 불과 1초 정도 후 뒷유리창이 깨지더니 룸미러가 떨어져 나가는 모습이 담겼다.
요르단 지진관측소는 이날 폭발이 규모 4.5의 지진과 맞먹는다고 추정했다. 베이루트 항구 근처에 산다는 얀 초에이리씨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아포칼립스(세상의 종말) 같았다. 나는 목숨을 간신히 건졌지만 다른 사람의 생사는 지금 알 길이 없다. 사방이 피투성이"라고 적었다. 현지 병원에는 부상자들이 몰려들며 응급실들이 가득 차 있다고 CNN이 전했다. 베이루트의 주요 병원 '호텔 듀'는 약 500명 넘는 부상자를 치료 중이며 환자를추가로 수용하지 못할 지경이라고 현지 LBCI방송이 보도했다.
베이루트 시내의 세인트조지 병원의 경우 직접 피해를 봐 전기가 끊겼으며 주차장에서 몰려드는 부상자를 치료하고 있다고 알아라비야 방송이 전했다.
일부 환자들은 유리 파편에 맞았거나 팔다리가 부러졌으며, 의식을 잃은 사람들도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SNS에서는 헌혈을 요청하는 해시태그가 빠르게 확산했다.
레바논 적신월사(적십자사에 해당) 대표인 조르주 케타네는 부상자들이 수도 밖병원까지 이송되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아직 많은 사람이 폭발로 손상된 집에 갇혀있어 정확한 부상자 수를 파악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폭발의 직접적 피해뿐 아니라 유독 가스가 퍼지고 있어 어린이와 노약자는 베이루트를 탈출해야 한다는 보도도 나왔다.
베이루트 시장은 스카이뉴스 아라비아 채널과 생방송 인터뷰에서 "(원자폭탄이 투하된) 히로시마에서 일어난 폭발 같았다. 어떻게 복구해야 할지 모르겠다"라고 말하다가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