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 의료기관에 근무하는 의료인들의 단체인 정부의료인협회(GNOA) 회원들이 6일 스리랑카 수도 콜롬보에서 의약품 부족 현상에 대한 해결책을 내놓으라고 적은 펼침막을 들고 시위를 하고 있다. EPA 연합뉴스
“극심한 식량 부족과 기아가 있을 것이다.”
1948년 독립 이후 최악의 경제난을 겪고 있는 스리랑카에서 국회의장이 국민들이 기아 상태로 내몰릴 수 있다고 경고했다. 마힌다 야파 아베와르다나 의장은 6일 수도 콜롬보 의회에서 “최악의 위기라고 사람들이 말하지만 이건 시작일뿐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스리랑카는 현재 외화보유액이 거의 바닥 나 화력 발전소를 돌리기 위한 석탄과 석유를 수입하지 못해 계획정전이 실시되고 있다. 지난달 말에는 하루 13시간까지 계획정전이 실시됐다. 외화가 부족한 스리랑카 정부는 지난해 말 나이지리아 아부자 대사관, 독일 프랑크푸르트와 키프로스 니코시아 총영사관에 이어 지난달 30일부터 노르웨이 오슬로와 이라크 바그다드의 대사관, 호주 시드니 총영사관의 운영을 중단했다. 스리랑카 루피 가치는 7일 1달러당 300루피까지 가치가 떨어져 사상 최악의 통화가치 하락을 기록하고 있다. 이는 올해 초 달러 당 200루피 수준과 비교해도 50% 가치가 떨어진 것이다. 스리랑카 루피는 최근 세계에서 가장 가치가 떨어진 통화라고 <파이낸셜 타임스>는 전했다.
스리랑카 경제의 추락 원인은 급격한 감세 정책, 코로나19로 인한 국가 주요산업인 관광업의 추락, 세계적 물가 상승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지난 2019년 집권한 고타바야 라자팍사 대통령 정부는 부가가치세율을 15%에서 8%로 줄이는 등 대규모 감세 정책을 밀어붙였다. 또 2020년 초 코로나19 세계적 대유행으로 관광업 비중이 높은 스리랑카 경제는 직격탄을 맞았다. 중국의 ‘일대일로’ 사업에 참여해 중국에 과도한 채무를 지고 각종 사회기반시설을 건설한 점도 경제난의 원인으로 꼽힌다. 스리랑카는 2017년 남부 함반토타 항구 건설 과정에서 거액의 빚을 졌으나 운영 실적은 저조해 항구 운영권을 약 11억 달러를 받는 대가로 중국 자오상쥐그룹에 99년 동안 내준 것은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최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원유와 밀 등 국제적으로도 각종 원자재 가격이 오른 점은 엎친 데 덮친 격이었다.
지난 3일 라자팍사 내각 각료 대부분은 사표를 제출해 위기를 타개하려고 했으나 여론은 싸늘하다. 라자팍사 대통령 본인은 물론 그의 형인 마힌다 라자팍사 총리도 사퇴하지 않았다. 내각 총사퇴 전에는 라자팍사 대통령과 형인 총리 외에도 각료 3명이 라자팍사 가문 출신이었다. 스리랑카 경제난에 책임이 있는 것으로 지목되는 이 중 한 명으로 라자팍사 대통령의 동생인 바실 라자팍사는 재무부 장관이었다. 라자팍사 대통령은 지난 1일 전국에 비상사태를 선포했으나 여론 악화로 5일부 비상사태를 해제한다고 발표했다.
라자팍사 대통령은 사임은 여전히 거부하고 있다. 사표를 냈지만 재임명된 존스턴 페르난도 고속도로부 장관은 6일 의회에서 “대통령은 어떤 상황에서도 사임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말한다”고 말했다. “690만명이 대통령을 지지했다는 점을 상기시켜줘야 하는가”라고도 말했다. 존스턴의 발언 뒤 콜롬보에서는 의사 200여명이 시위에 동참했다. 공공 의료기관에 근무하는 의료인들의 단체인 정부의료인협회(GNOA)의 바산 라트나싱감 대변인은 “약 102개의 필수 의약품이 부족하다”고 말했다고 <알자지라> 등 외신들이 전했다. 스리랑카는 국제 금융시장에서 돈을 융통하기 어려운 사정이기 때문에 국제통화기금(IMF)의 도움에 기대야 할 형편이다.
조기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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