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가 15일 독립기념일 행사에 참여하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인도에서 종신형을 받고 복역 중이던 집단 성폭행·살인범들이 전격 감형으로 석방돼 논란이 되고 있다. 희생자 가족과 인권단체는 “그들의 죄악에 비춰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반발하고 있다.
인도 서북쪽 구자라트 주정부는 지난 15일 인도 독립기념일을 맞아 2002년 반이슬람 폭동 당시 무슬림을 대상으로 집단 성폭행·살인을 저지른 11명을 복역 14년 만에 석방했다고 <비비시>(BBC)가 보도했다. 소셜 미디어에 올라온 영상을 보면 이들은 교도소 밖에서 친지들의 환영을 받았고, 몇몇은 존경의 표시로 이들의 발을 만졌다.
구자라트 주정부 관계자는 주정부의 감형위원회가 이들이 14년간 복역했다는 점과 나이와 복역 태도 등을 감안해 감형 요청을 받아들였다고 말했다. 구자라트주는 나렌드라 모디 총리의 힌두 민족주의 정당인 인도인민당(BJP)이 집권하고 있다. 인도에서는 2014년 ‘위대한 힌두 문명의 부흥’을 외치는 인도인민당의 집권 이후 인도 내 소수 종교인 이슬람에 대한 증오·혐오발언과 폭력이 급증하고 있다.
이번 석방에 대해 야당과 시민단체, 일부 언론은 “소수 종교인 이슬람교도의 권리를 침해하는 일”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이들은 또 이번 석방이 성폭행과 살인에 대해서는 감형하지 않는다는 인도 연방정부와 구자라트 주정부의 가이드라인을 위반하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희생자 가족들은 큰 충격을 받았다. 가족 14명이 살해되는 것을 눈앞에서 보고 자신도 성폭행을 당한 빌키스 바노는 충격과 분노, 절망에 빠졌다. 그의 남편은 “아내는 살인자들이 풀려났다는 걸 믿을 수 없었다. 눈물을 터뜨리더니 침묵에 빠졌다. 넋이 나간 것 같다“고 말했다. 바노는 자신을 만나러 온 현지 언론에 “제발 날 혼자 있게 해달라. 숨진 내 딸의 영혼을 위해 기도했다”고 말했다.
바노와 같은 희생자 가족들의 격렬한 반응은 당시 사건의 엄중함과 이후 살인자들에게 법의 심판을 받게 하기 위해 분투했던 일을 생각하면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 아니다. 당시 끔찍했던 사건은 2002년 구자라트 고드라 마을에서 힌두교 순례자 60명이 열차 화재로 숨진 뒤 일어났다. 화재가 무슬림의 방화 때문이라는 소문이 돌면서, 힌두교 폭도들이 무슬림 거주지역을 습격해 닥치는 대로 살인과 방화, 파괴를 저질렀다. 1천명 넘게 살해됐고 희생자 대부분이 무슬림이었다.
나렌드라 모디 총리는 당시 구자라트 주정부 수석장관이었지만, 폭동을 막기 위한 조처를 전혀 하지 않았다. 그는 비판이 제기될 때마다 아무 잘못이 없다고 책임을 회피했고 2013년 대법원도 그를 기소할 충분한 증거가 없다며 그의 손을 들어줬다. 그러나, 미국과 영국 등은 그를 외교적 ‘기피 인물’ 명단에 올리고 그의 입국을 금지하는 제재를 했다.
바노는 폭동이 일어날 당시 19살로 세 살배기 딸과 함께 고드라 근처 마을 란드히푸르의 친정집에 와 있었다. 점심을 준비 중일 때 이모와 아이들이 달려와 “사람들이 몰려와 집을 불태워 몸만 빠져나왔다”며 “지금 당장 모두 달아나야 한다”고 말했다. 그 길로 바노의 가족 17명은 안전하다고 생각하는 곳을 찾아 나섰다. 그러다 3월 3일 한 무리의 남자들이 그들을 발견하고 공격했다. 그 자리에서 가족들 대부분이 잔혹하게 살해됐고, 바노와 네 살, 일곱 살 아이 두 명만 살아남았다. 바노는 성폭행을 당해 기절했으나, 폭도들이 죽은 줄 알고 떠나 목숨을 건졌다.
이들 폭도를 법정에 세우기 위한 바노의 싸움은 지난했다. 주정부 관리와 경찰은 폭도 편이었다. 증거는 사라지고 시신은 부검도 없이 매장됐고 바노를 검진한 의사는 바노가 성폭행을 당하지 않았다고 증언했다. 바노는 살해 위협으로 이사도 몇십 번했다. 바노 가족은 지금도 두려움 때문에 고향 구자라트에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 이들 폭도에 대한 본격 수사와 구속은 사건 2년 뒤인 2004년 인도 연방대법원이 사건 수사를 연방수사기관에서 맡게 하고, 관할 법정을 구자라트에서 뭄바이로 변경하는 것을 허락한 뒤에야 비로소 가능했다.
바노의 남편은 16일 인도 현지 언론에 그의 아내가 “고통스러워 하고 우울증에 빠져 있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가 오랫동안 해온 싸움이 한순간에 끝장났다”며 “우리는 이 뉴스의 충격을 감당할 시간도 갖지 못했는데, 범죄자들은 이미 그들이 집에 도착했다는 걸 안다”고 말했다.
박병수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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