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신 친나왓 전 타이 총리가 22일 방콕 돈므앙 국제공항에 도착해 세 자녀와 함께 걸어나오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탁신 친나왓(74) 전 타이 총리가 22일 길고 긴 해외도피 끝에 15년 만에 귀국했다. 타이 대법원은 그에게 8년형을 선고했지만, 군부와 ‘정치적 타협’을 통해 형이 제대로 집행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탁신 전 총리는 이날 아침 9시께 방콕 돈므앙 국제공항에 싱가포르발 개인 비행기를 타고 도착했다. 타이 방송은 그가 지난 5월 총선에서 원내 2당 지위를 획득한 타이공헌당을 이끄는 막내딸 패통탄 등 세 자녀와 함께 공항 터미널을 빠져나오는 모습을 생중계했다.
탁신 전 총리는 터미널을 나오자 입구에 붙어 있는 타이 국왕과 왕비의 사진 앞에 헌화하고 무릎을 꿇고 예의를 차렸다. 그는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지지자들과 기자들을 향해서 손을 흔드는 등 반갑게 인사했으나, 따로 인사말을 하진 않았다. ‘레드 셔츠’로 불리는 지지자들은 이날 그가 도착하기 몇 시간 전부터 붉은 옷을 입고 귀국을 환영하는 인사말을 적은 띠를 두르고 기다렸다.
2001~2006년 총리를 지낸 탁신은 지난 20여년간 타이 정치에서 가장 논쟁적인 인물이었다. 통신 재벌 출신으로 막대한 부와 서민친화적인 정책으로 정치적 지지를 모은 그는 2001년 총선에서 승리해 총리에 올랐고, 2005년 총선에서도 압승을 거둬 총리 연임에 성공했다.
그러나 동시에 왕실과 군부 등 상층 기득권 세력과 갈등을 빚었고 ‘금권정치’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군부는 그가 2006년 9월 유엔총회 참석을 위해 미국을 방문한 틈을 타 쿠데타를 일으켰다. 그는 귀국을 거부하며 국외에 머물다 2008년 2월 잠시 귀국했지만 8월 재판을 앞두고 베이징 올림픽 참관을 이유로 다시 출국한 뒤 망명을 선언했다. 이후 타이 법원은 궐석재판을 통해 권력남용, 부패, 왕실모독 등의 혐의를 적용해 12년형을 선고했다.
탁신은 이날 공항을 떠나자 곧바로 대법원에 출석했다. 대법원은 이날 그에게 세가지 혐의를 적용해 징역 8년형을 선고했다. 그는 방콕 교도소에 수감됐으나, 심장 질환 등을 이유로 교도소 내 병동 1인실에 머물고 있다고 ‘방콕 포스트’가 전했다.
탁신 전 총리가 귀국한 날 의회 상·하원 합동 회의에서는 타이공헌당이 후보로 낸 인물이 총리로 뽑혔다. 새 총리로 선출된 이는 부동산 재벌 출신 인사 세타 타위신(60)이다. 타이공헌당은 전날인 21일 군부 진영 정당인 국민국가권력당(PPRP)과 타이단결국가건설당(RTSC)을 포함한 11개 정당 연합을 구성했다고 밝혔다. 국민국가권력당과 타이단결국가건설당은 모두 2014년 군사 쿠데타를 일으켜 탁신 전 총리 여동생인 잉락 전 총리의 민간 정부를 전복한 군부 인물들이 이끌었거나 이끄는 정당이다. 이런 정황 때문에 권력남용 등의 혐의로 유죄판결을 받은 탁신 전 총리의 거취를 둘러싸고 군부와 모종의 합의가 있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애초 지난 5월 총선에서 제2당이 된 타이공헌당은 제1당인 전진당(MFP)과 연대해, 피타 림짜른랏(42) 전진당 대표를 총리 후보로 밀었다. 그러나 캐스팅보트를 쥔 군부의 반대로 실패하자 전진당과 결별하고 친군부 세력과 연대해 정부 구성에 나섰다. 지난 20여년 동안 타이 정치를 양분해온 탁신과 군부가 ‘전진당’이라는 개혁 세력을 배제하기 위해 믿기 힘든 화해를 선택한 모습이다.
박병수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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