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2월 미얀마 북부 카친주 룽 자르 마을에서 마약 퇴치를 목표로 결성된 시민단체 회원이 마약의 원료인 양귀비를 제거하고 있다. AP 연합뉴스
지난 8월 중국 전역에서 개봉해 흥행가도를 달렸던 영화 ‘구주일척’은 미얀마 샨주 일대에 만연한 대규모 사기범죄를 소재로 삼는다. 이 지역은 20세기 내내 세계적인 아편 생산지였고, 지금은 합성마약과 통신사기, 도박의 본거지다. 지금 이곳에선 세 개의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이 셋은 제각각 동떨어진 문제처럼 보이지만 실은 연결돼 있다.
첫번째 전쟁은 대규모의 통신 사기와 인신매매 범죄, 그리고 이를 방관할 수 없는 중국 정부 사이의 모호한 이해관계를 둘러싼 갈등이다. 중국은 올해 6월부터 미얀마 군부 및 소수민족 세력과, 중국인을 대상으로 한 미얀마 범죄집단 소탕 작전을 협의했고 지난 12일 중국 경찰은 미얀마 북부에서 대규모 통신사기 작전을 주도한 혐의로 코캉 자치구의 친군부 정치인 밍쉐창 등 4명에 대해 체포영장을 발부받았다. 이들은 고액의 급여를 미끼로 중국인들을 현지로 불러들여 감금한 뒤 중국인 대상 온라인 사기를 벌이고, 구금한 이들을 폭행·살해한 혐의를 받고 있다. 올해 10월에도 미얀마 샨주에 위치한 20여곳의 온라인범죄 소굴에 미얀마 소수민족인 와주연합군과 중국 공안이 투입됐다. 이를 통해 후원자 23명을 비롯해 4600여명의 사기죄 용의자가 체포됐는데, 이 중엔 친군부 성향의 와족 리더 2명도 포함돼 있다.
소탕 작전이 진행되면서 온라인범죄에 동원됐던 중국인 수백명도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됐다. 이들은 괜찮은 일자리가 있다는 속임수나 납치로 끌려와 하루 10시간 이상 강제노동을 할 수밖에 없었던 피해자들이다. 지난 9월5일과 9일에도 샨주 일대 11곳과 비공인 자치구역 와주에서 중국인 1400여명이 체포돼 중국으로 이송됐다. 유엔 인권사무소가 올해 8월 발간한 보고서를 보면, 미얀마인 12만명을 비롯해 수십만명이 온라인범죄에 강제동원되고 있다. 심지어 범죄조직들은 다른 경쟁 조직들과 인신매매를 벌이기도 한다. 이렇게 해서 벌어들인 돈은 카지노에서 세탁되고, 암호화폐로 전환된 뒤 방콕이나 싱가포르 같은 대도시에서 부동산과 사치품으로 바뀐다. 지난 9월엔 이렇게 세탁된 돈을 갖고 싱가포르에서 호화로운 생활을 즐기던 일당 10명이 13억달러어치의 현금 및 명품 시계를 갖고 있다가 체포되기도 했다.
두번째는 마약 생산과 유통을 통해 자금을 융통하는 소수민족 반군과 마약의 무분별한 양산을 막아야 하는 각 정부들 간 전쟁이다. 미얀마 샨주는 동아시아의 메스암페타민(필로폰) 등 합성마약 생산기지다. 지난 6월 유엔 마약범죄사무소(UNODC)는 “대량의 필로폰이 이 지역 안팎에서 계속 생산·밀매되고 있으며, 합성마약이 확산되고 있다”고 밝혔다. 특히 유엔 마약범죄사무소의 동남아지역총괄 제러미 더글러스는 지난 6월 타이 방콕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마약 단속이 전례 없이 감소됐다”며 우려를 표했다. 국제위기감시그룹(ICG)은 중국 국경을 통해 마약 생산에 사용되는 화학물질이 유입되고 이렇게 양산된 마약은 친군부 민병대(SDF)를 통해 세계로 퍼져나간다고 보고 있다.
중국 국가마약통제위원회 판공실의 ‘2022년 중국 마약상황 보고서’를 보면, 중국 내 약물 남용자 중 약 80%가 합성마약 중독자다. 공안부 반마약국은 자국에서 적발되는 마약의 92.1%가 골든트라이앵글(미얀마·라오스·타이 국경지대)에서 생산된다고 보고 있다. 유엔 마약범죄사무소는 저렴한 희석 필로폰이 동아시아에서 빠르게 확산되고 있으며, 주된 소비자는 캄보디아·라오스·미얀마·타이의 가난한 노동자들로 파악하고 있다. 장시간 노동에 지친 이들은 ‘기분전환제’로 마약을 사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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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얀마 군부는 샨주의 마약 생산기지를 단속하는 데 실패해왔고, 그럴 마음도 없다. 버마민족주의의 환상에 사로잡혀 있는 군부가 자치권과 연방 민주주의 약속을 지키지 않은 대가로 점증해온 소수민족 반군세력들이 계속해서 전투를 벌일 때마다 군부는 휴전을 대가로 마약 생산·밀매의 자율권을 부여하기도 했다. 2009년부터는 반정부 세력과의 전투에 동원하기 위해 샨주에서 수만명의 친군부 민병대를 모집했으며, 그 대가로 헤로인과 필로폰 거래를 묵인했다. 소수민족과의 연방제 민주주의 합의를 위반한 대가로 마약을 무분별하게 양산하고 있는 셈이다. 동남아 마약 카르텔을 연구해온 패트릭 윈은 2019년 1월 ‘사우스차이나 모닝포스트’ 인터뷰에서 “소수민족에게 더 많은 자치권을 허용한다면 많은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고 했다.
세번째는 소수민족 반군들과 미얀마 군부 간의 전쟁이다. 지난 10월27일 코캉족 무장단체인 미얀마민족민주동맹군과 아라칸군, 타앙민족해방군은 ‘북부형제동맹’을 결성하고, 쿠데타 이후 시민들이 결성한 시민방위군과 함께 동시다발로 군부를 타격하기 시작했다. ‘미얀마투데이’는 온라인사기 범죄 단속으로 친군부 민병대가 통제하는 북부의 혼란을 수습하고, 군부의 기반을 무너뜨리기 위해 기획된 일이라고 보도했다. 이에 대해 사우스차이나 모닝포스트는 “온라인범죄 조직과의 전쟁을 대의에 넣은 것은 중국과 국제사회의 동정을 얻으려는 시도”라고 분석했다. 북부동맹은 ‘10·27 작전’ 보름 만에 친슈웨호와 쿤롱 등 6개 국경도시를 점령했고, 약 150개의 군부 거점을 함락하거나 파괴했다.
미국국방대학 교수 재커리 아부자는 미국의 싱크탱크 스팀슨센터를 통해 지난 9월 발표한 칼럼에서 중국과의 무역은 “(미얀마) 군부 정권의 돈줄”이라고 짚었다. 따라서 이 지역의 정세는 향후 미얀마 전체 정세를 좌우할 수 있다. 지난 13일 민 아웅 흘라잉 군부 정권은 북부동맹으로부터 입은 후퇴를 만회하기 위해 계엄령을 선포했다. 국제전략문제연구소 분석가 모건 마이클스는 지난 2일 사우스차이나 모닝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현 상황이 “2021년 쿠데타 이후 미얀마 정권에 대한 가장 심각한 군사적 시험”이라고 설명했다. 아부자는 “(미얀마) 군부의 군사력은 생각보다 강하지 않고, 총체적인 무능을 보이고 있다”며 국제사회가 군부에 맞선 민족통합정부(NUG)와 연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마약과 사기의 소굴이 된 샨주의 모순은 소수민족 연방제 민주주의의 불완전한 약속이 낳은 산물이다. 이곳에서 마약 생산의 고삐가 풀리면 아시아 내 중독자 인구는 늘어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조직적 사기범죄나 도박이 횡행하는 현상은 단지 역사적 오판이나 부도덕이 빚은 문제만은 아니다. 그것은 중국과 동남아의 노동자들이 엄청난 빈부격차에 허덕이고 있으며, 이런 구조적인 모순이 해결되지 못한 채 거대한 덫에 빠져 있음을 상기한다. 미얀마 군부에 맞선 시민불복종운동은 끝나지 않았다. 그것은 불평등과 폭력에 고통받는 우리 모두의 현실과 연결돼 있다.
동아시아 연구활동가
플랫폼C 활동가. 동아시아 이야기를 씁니다. 각 사회의 차이를 이해하고, 같은 꿈을 지향하자(異牀同夢)는 의미로 이름을 붙였습니다. 이상을 품은 동아시아의 꿈(理想東夢)이라는 뜻도 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