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얀마 소수민족 박해에
“집단갈등엔 시간 걸린다”
“집단갈등엔 시간 걸린다”
세계적인 민주화 운동 지도자인 아웅산 수치도 민족 갈등 앞에서는 평범한 정치가일 뿐일까. 미얀마 제1야당의 지도자인 수치가 최근 벌어지고 있는 미얀마 다수 민족에 의한 소수 민족 로힝야족 박해를 막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다는 비난의 목소리가 흘러나오고 있다.
일본 <도쿄신문>은 3일 1988년 8월 미얀마 민주화 운동 때 수치를 지지해 군사 정권으로부터 탄압을 받았던 이슬람계 로힝야족들이 이번 사태에 대한 수치의 침묵에 실망감을 토로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수치는 지난달 28일 <아에프페>(AFP) 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이번 사태와 관련해 “집단 갈등은 문화적, 종교적 차이를 통해 발생하기 때문에 해결하려면 시간이 걸린다”, “시민권을 가진 합법적인 로힝야족을 가려내기 위해 법의 지배를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미얀마에서 로힝야의 역사는 영국 식민지 시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1885년 미얀마를 식민지로 삼은 영국은 이곳 미얀마인들의 토지를 수탈한 뒤, 값싼 방글라데시 노동자들을 끌어와 농사를 지었다. 원래 로힝야족 일부가 살고 있었다곤 하나 하루 아침에 땅을 빼앗긴 미얀마인들은 급증한 로힝야족에 분노를 키워가기 시작했다. 2차대전 발발로 영국군이 물러가자 로힝야족에 대한 미얀마인들의 본격적인 보복과 박해가 시작된다.
군사정권 아래서 혹독한 탄압을 당했던 로힝야족은 1988년 8월 민주주의를 요구하는 미얀마인들의 대규모 시위인 ‘8888혁명’이 발생하자 적극적으로 수치에 대한 지지를 선언한다. 그러나 혁명은 실패했고, 돌아온 것은 혹독한 탄압이었다.
수치가 ‘법의 지배’를 강조한 것도 문제로 지적된다. 대부분의 로힝야족은 1982년 군사정권에 의해 국적을 박탈당한 무국적 신분이기 때문에 법의 지배를 강조하다 보면, 국가에 의한 로힝야족 탄압을 용인하는 결과로 이어진다.
군부가 물러나고 민간정권이 들어섰지만 이들의 비극은 계속된다. 지난 5월28일 로힝야족 남성 세명이 27살 된 불교도 여성을 폭행한 사건이 일어난 뒤, 불교도들이 로힝야족 거주지를 공격해 지금까지 80명이 숨지고, 9만여명의 난민이 발생했다. 지난달 10일 라카인주 일대에 선포된 국가비상사태는 아직 풀리지 않고 있다.
길윤형 기자 charism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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