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외무상과 전화회담서 반대뜻
일 “방북 검토안해” 한발 물러나
일 “방북 검토안해” 한발 물러나
미국이 일본의 대북 접근을 노골적으로 견제하고 나섰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방북에 대해선 부정적인 견해를 밝히며 “방북을 하려면 ‘사전 통보’가 아니라 제대된 상담(협의)을 하길 바란다”고까지 했다. 아베 총리의 방북을 사실상 허용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힌 것으로 보인다.
존 케리 미국 국무장관이 지난 7일 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외무상과 전화 회담에서 일본의 대북 접근을 강력히 견제했다고 <마이니치신문> 등 일본 언론들이 16일 보도했다. 케리 장관은 이날 밤 약 40분에 걸쳐 이뤄진 기시다 외무상과의 전화 통화에서 “미국과 일본은 동맹국이다.
북한과의 교섭에 대해 투명성을 갖고 사전에 충분히 상담(협의)해 줬으면 한다”고 요구한 것으로 전해졌다. 케리 장관은 또 “아베 총리가 방북하는 것을 검토할 때도 사전 통보가 아니라 (정책 결정 단계에서부터) 제대로 협의하길 바란다”고도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도쿄신문>도 이날 복수의 미-일간 외교 소식통을 인용해 케리 장관이 “아베 총리가 북한을 방문하면 한-미-일 연대가 흔들릴 우려가 있다”며 자제를 요청했다고 전했다.
이에 앞서 기시다 외무상은 지난달 3일 참의원 외교국방위원회에서 “(납치 문제 해결에) 성과를 내기 위해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 무엇일까. 그 가운데 (하나의 선택으로) 방북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겠다”며 아베 총리의 방북에 긍정적 인식을 드러낸 바 있다.
그러나 케리 장관의 경고성 발언을 듣고는 “언론들이 답변 내용을 해석해 보도한 것일 뿐 총리의 방북은 절대 검토하고 있지 않다”고 한발 물러섰다고 <마이니치신문>이 보도했다. <엔에이치케이>(NHK) 방송은 기시다 외무상이 “납치 문제 해결을 위한 일본의 노력에 대한 이해를 구하기 위해 조만간 미국을 방문해 케리 장관에게 직접 설명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도록 조정을 진행 중”이라고 전했다.
일본 정부는 그동안 ‘납치 문제’는 북핵이나 미사일 문제와 분리해 대응하겠다는 뜻을 여러 차례 밝혔다. 지난 4일 북한이 납치자 문제 등을 재조사하기 위한 ‘특별조사위원회’를 가동한 시점에 맞춰 독자적 대북제재 조처의 일부를 해제했고, 북한의 연이은 탄도 미사일 발사에도 “납치 문제와는 별개”라는 태도를 지켜왔다.
한편, <니혼게이자이신문>은 8월 초 미얀마에서 열리는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에서 일본이 남북 양쪽에 외무장관 회담을 제안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북-일은 2002년 9월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의 방북을 앞두고도 적십자 회담, 국장급 회담, 외무상 회담 등을 차례로 진행한 바 있다.
그 때문에 일부 전문가들은 아세안지역안보포럼에서 북-일 외무상 회담이 성사되면 9월께 아베 총리의 방북도 가능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하지만 미국이 일본의 대북 접근을 견제하고 나서면서, 납치 문제 해결을 통해 장기집권의 길을 열려는 아베 총리와 한-미-일 대북 공조를 유지하려는 미국 사이에 치열한 줄다리기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도쿄/길윤형 특파원 charism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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