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진 건물 더미 속에 있던 생후 8개월 된 여자 아이가 경찰에 극적으로 구조되고 있다. 아사히 신문 누리집 영상 갈무리
일본 구마모토 강진, 삶과 죽음은 ‘깻잎 한장차’
“생존자 확인. 아기입니다! 구출 중, 구출 중!”
일본 구마모토현을 강타한 최대 진도 7의 강진이 일어난 지 6시간이 지난 15일 새벽 3시45분. 이번 지진의 최대 피해 지역인 마시키마치의 무너진 건물 더미 위에서 구조 작업을 펼치던 이들의 움직임이 아연 활기를 띄기 시작했다. 건물 더미 속에서 생후 8개월 된 여자 아이가 발견된 것이다.
14일 오후 9시26분께 규슈 중부 구마모토에서 발생한 강진 피해의 전모가 확인되고 있다. 15일 오후 현재 사망자는 마시키마치와 구마모토시 등에서 9명, 부상자는 1000여명 정도로 집계 중이다. 피난민은 애초 4만3000여명이었지만, 일부 시민들이 귀가해 현재는 1만6000명 정도로 줄었다.
이번 지진의 최대 피해지인 마시키마치에선 수십채의 건물이 내려앉는 등 크고 작은 피해가 발생했다. 아기가 머물고 있던 2층짜리 목조 건물도 같은 운명이었다. 엄마는 건물 더미를 헤치고 빠져 나오는데 성공했지만, 아이는 폐허 속에 남겨지고 말았다. 현장에 출동한 경찰 구조대가 계속되는 여진의 위험을 감수해가며 드릴로 건물 잔해를 뚫어내고 아이를 구해냈다. 구마모토현 경찰본부가 공개한 구출 당시의 화면을 보면, 경찰 대원의 품에 안긴 아기는 그다지 놀란 기색도 없이 발만 버둥거리고 있다. ▶영상 바로가기
일본 기상청은 이번 지진의 규모는 6.5로 크지 않았지만 진앙이 지표에서 11㎞에 불과해 진도 7의 강진이 발생했다고 밝혔다. 내진 설계가 되지 않은 건물은 진도 7을 견뎌낼 수 없다. 실제 방송의 헬기가 잡은 마시키마치와 인근 미후네마치 주변의 모습을 보면, 무너져 내리거나 크게 손상된 주택들이 무수히 확인된다. 또 일본의 중요문화재이자 현의 상징인 구마모토성도 석축이 무너지고 기와가 내려앉는 등 큰 피해가 발생했다. 이 성은 임진왜란 때 조선을 침략한 가토 기요마사의 본거지로 역사에 기록돼 있다. 일본에서 진도 7 이상의 강진이 발생한 것은 2011년 3월 동일본대지진 이후 처음이다.
삶과 죽음을 가른 것은 한 끝의 차이었다. 똑같은 2층 목조 건물이 무너졌지만 같은 마을의 무라카미 하나에(94)·마사타카(61) 모자는 숨졌다. 이들 이웃집의 60대 남성은 방송에 “지진이 나 밖으로 나가 보니, 옆집이 크게 무너져 내려 있었다. 밖으로 나온 아주머니가 남편과 할머니(시어미니)의 이름을 큰 소리로 불렀다. 구조가 이뤄질 때까지 7시간 정도 걸렸다”고 말했다.
일본 정부는 피해 복구와 구호 대책을 서두르고 있다. 현지엔 피난민들을 위한 오니기리(주먹밥), 식수, 모포 등 구호 물자가 속속 도착하는 중이다. 가바시마 이쿠오 구마모토현 지사는 “심대한 피해가 발생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피해 확대가 우려된다. 국가의 전면적인 지원을 요청한다”고 말했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최대한의 지원을 약속했다.
일본에서 가동 중인 유일한 원전인 가고시마현 센다이원전 1·2호기에는 별다른 이상이 확인되지 않았다. 일본 기상청은 앞으로도 “당분간 여진이 이어질 것이다. 추가 피해를 대비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16일 오후께부터 현장에 큰 비가 내릴 것으로 예측돼 주민들의 재산 피해가 더 커질 것으로 우려된다.
도쿄/길윤형 특파원 charism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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