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지난해 11월2일 청와대에서 취임 후 첫 한-일 정상회담을 가지면서 회담에 앞서 청와대 본관에 도착한 아베 신조 총리와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청와대 사진기자단
한국의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배치에 대한 일본 정부의 공식 입장은 “지역 안정에 기여하는 것으로 우리는 이 결정을 지지한다”(하기우다 고이치 일본 관방부장관)는 것이다.
언론들도 진보·보수를 가릴 것 없이 한국 정부의 이번 결정을 반기는 사설들을 쏟아내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의 2012년 8월 독도 방문 이후 한국의 대외정책을 혹평해 온 평소 태도를 떠올려 볼 때 매우 이례적인 모습이다.
이는 박근혜 정권이 이번 결정을 통해 그동안 유지해 온 대외정책 노선을 결정적으로 전환했다고 보기 때문이다. 한국 정부는 그동안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해선 중국의 협력이 필수적이라는 판단 아래 대중 외교를 전개해 왔다. 반면, 일본과는 위안부 문제 등 역사 문제로 긴장을 유지했다. 이런 노선의 하이라이트가 지난해 10월 박 대통령의 중국 승전 70주년 기념 열병식 참석이었다. 그러나 이번 사드 배치 결정을 통해 한국 정부는 대중 관계의 상당 부분을 희생하면서까지 한-미 동맹 강화, 나아가 한-미-일 3각 동맹을 중시하는 쪽으로 대담한 정책 전환에 나섰다는 게 일본의 평가다.
일본의 대 한반도 정책 핵심은 대륙의 위협에 맞서기 위해 한반도를 자신의 영향 아래 둬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일본 육군의 아버지라 할 수 있는 야마가타 아리토모(3·9대 총리)의 유명한 ‘이익선’ 개념이다. 일본은 제국주의 시대에는 이 노선을 조선의 직접 지배(식민지와), 냉전 시기엔 한일협정으로 대표되는 경제 지원 등으로 유지해왔다.
또 다른 이유는 미사일 방어(MD)와 관련된 현실적인 이유다. 한국 남반부에 배치된 사드가 일본 본토로 날아드는 북한·중국의 탄도 미사일을 방어할 순 없다. 그러나 일본 엠디의 명중률을 높이는데 매우 큰 기여를 할 순 있다. 현재 일본은 동해를 타고 날아오는 탄도 미사일의 상층 방어(150㎞ 이상)엔 이지스함의 SM-3 미사일, 하층 방어(40㎞ 이하)엔 패트리엇(PAC)-3 이라는 이중 방어 체계를 갖추고 있다. 주일미군은 적의 탄도 미사일을 포착·추적하기 위해 이번에 한국에 배치되는 사드에 포함되는 것과 동일 기종의 엑스밴드(X-band) 레이더인 AN/TPY-2를 2006년 6월 아오모리, 2014년 12월 교토에 각각 설치해 가동을 시작했다. 이와 별도로 자위대는 자체 개발한 FPS-3 레이더 7기, 개량형인 FPS-5 레이더 4기를 운영 중이다. 이번에 배치되는 사드는 주한미군의 자산이기 때문에 이 레이더가 포착한 정보는 실시간으로 일본과 공유된다. 일본 입장에선 자국 방어에 필수적인 전략 자산을 한반도 남부까지 서진시키는데 성공한 셈이다. 아무런 대가도 지불하지 않고서.
도쿄/길윤형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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