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판] 다음주의 질문
26일(현지시각) 오후 라오스 비엔티안 국립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아세안지역안보포럼 포토세션에서 리용호 북한 외무상이 기념사진을 찍기 위해 서 있다. 연합뉴스
통일외교팀장 nomad@hani.co.kr 회의 전부터 동북아 핵심 당사국의 ‘외교전쟁’으로 불린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을 비롯한 아세안(동남아국가연합) 관련 연쇄 외교장관회의가 24~26일 라오스 비엔티안에서 진행됐다. 회의를 지배한 쟁점은 세가지다. 남중국해 분쟁, 북핵 문제,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 체계 주한미군 배치 결정을 둘러싼 논란이 그것이다. 첫째, 남중국해 분쟁. 회의는 국제상설중재재판소(PCA)가 중국의 남중국해 영유권 주장을 무력화하는 판결(12일)을 내놓은 상황을 전제로 진행됐다. 중국은 일단 ‘방어’에 성공했다. 아세안과 아세안지역포럼 외교장관회의 의장성명에 판결 관련 언급이 전혀 없었던데다, 지난해 아세안지역안보포럼 의장성명의 남중국해 관련 문구에 있던 “국제법 존중”이라는 표현이 삭제됐다. 하지만 두 외교장관회의 의장성명은 구속력이 없다. 상징적 의미만 지닌다. 반면 국제상설중재재판소의 판결은 국제법적 권위를 지닌다. 하지만 “무효”를 외치는 중국 정부를 상대로 판결 내용 이행을 강제할 수단이 없다. 남중국해를 둘러싼 미-중 대결의 교착이다. 교착 국면을 자기 쪽에 유리하게 타개하려는 미-중의 움직임이 가속화할 수밖에 없다. 존 케리 미국 국무장관은 아세안지역안보포럼이 끝나기도 전에 중국을 국제상설중재재판소에 제소한 당사국인 필리핀을 방문했다. 남중국해 공세를 강화하려는 행보다. 그러나 중국으로서도 시진핑 국가주석이 제시한 ‘일대일로’ 전략을 성공적으로 추진하려면 남중국해에서 우월적 지위의 확보·유지가 관건이다. 창과 방패의 싸움은 계속될 것이다. 미-중의 동남아국가들을 상대로 한 ‘설득·강압 외교’도 더 뜨거워질 것이다. 둘째, 북핵 문제. 북한의 4차 핵실험 등에 대응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결의 2270호를 채택한 터라, 애초 논란 대상이 아니다. 다만 미-중이 남중국해·사드 문제로 대치하는 상황이 북핵 문제에 부정적 영향을 끼칠지는 관심사였다. 아세안지역안보포럼 의장성명 문안만 보면 ‘영향 없음’이라는 평가도 가능하다. 더구나 왕이 중국 외교부장이 리용호 북한 외무상과의 양자회담에서 “중국 정부의 ‘(한)반도 비핵화 3원칙’(비핵화, 평화·안정 견지, 대화를 통한 평화적 해결)엔 변함이 없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영향 없음’이란 평가는 표피적이다. 실제론 이미 한-중 관계 악화와 대북제재 국제공조의 균열 조짐이 현실화하고 있음이 드러났다. 사드 배치 논란의 부정적 여파다. 왕이 부장의 ‘사드 반대 외교 시위’가 대표적이다. 왕이 부장은 한국의 윤병세 외교부 장관을 냉대하고, 리용호 북한 외무상을 두드러지게 환대하는 ‘외교 시위’로 한국을 향한 불만을 거칠게 드러냈다. 지금 동북아엔 폭풍전야의 긴장이 감돈다. 중요 행위자들이 ‘현상변경’을 시도하고 있어서다. 북한이 핵실험, 탄도미사일 발사 등으로 거칠게 현상변경을 시도하는 데 더해, 미국이 남중국해, 사드를 앞세워 중국 견제 전선을 확대·강화하려 하고 있다. 국제정치에서 ‘현상변경’ 시도는 충돌로 번질 때가 적지 않다. 지금 동북아 정세를 규정하는 가장 중요한 대치선은 미-중 대립·갈등이다. 동아시아 패권을 유지하려는 미국의 ‘공격적 방어’ 전략과 동아시아의 주도국으로 부상하려는 중국의 ‘방어적 공격’ 전략의 충돌이다. 패권국(미국)이 공격자로 나서고 부상국(중국)이 방어를 하는 전도된 상황 전개는, 동북아 정세의 위험성과 복잡성을 가중시킨다. 한국의 살길은 미-중 대립에 휩쓸리지 않으면서 한반도 비핵화를 추구하는 것뿐이다. 그런데 박근혜 정부의 선택은 거꾸로다. 사드 주한미군 배치 결정으로 한-중 관계에 평지풍파를 일으켰다. 여기에 미국의 설득·압박에 따른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 관련 12·28 합의까지 더하면 그림이 더 분명해진다. 다수의 전문가들이 우려하는 ‘한국의 미·일 동맹 하위파트너화’다. 숨은 뇌관이 하나 더 있다. 8월 하순부터 2주간 진행될 을지포커스가디언(UFG) 한·미 연합연습이다. 리용호 외무상은 “8월의 검은 구름이 밀려오고 있다”며 “조선반도 정세가 통제 밖으로 벗어나게 되면 그 책임은 미국이 지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반도의 뜨거운 8월이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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