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12월15일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고향인 야마구치현 나가토에서 열리는 러-일 정상회담에서는 두 나라 사이의 오랜 영토분쟁 해결의 극적인 계기가 마련될 것이란 전망도 조심스레 나온다. 사진은 9월초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열린 동방경제포럼 행사 중 아베 총리(왼쪽)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환담하는 모습. 연합뉴스
▶ 최근 시베리아 철도의 일본 연결 구상에서 드러나듯, 북방 4개 섬의 반환 문제를 놓고 오랜 갈등 관계에 놓여 있던 러-일 사이에 미묘한 해빙 기류가 형성되고 있다. 북방 영토 문제의 해결은 러·일 양국 관계뿐 아니라 한반도를 포함한 동아시아 지역의 전략적 균형을 깨뜨려 이 지역 정세 전반, 나아가 미국의 세계 전략에도 복잡한 영향을 불러올 수 있는 중대한 사안이다.
“북방영토 문제 해결에 대한 (일본 정부의) 기본방침은 ‘북방영토의 귀속 문제를 해결하고 평화조약을 체결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귀속이라는 것은 일본으로 귀속한다는 말로 이해하면 되는 것인가?”(마에하라 세이지 의원)
“4개 섬의 귀속 문제를 분명히 하고 평화조약을 체결한다는 것이 기본 방침의 전부다.”(기시다 후미오 외무상)
“다시 묻겠다. 4개 섬의 귀속이라는 것은 일본으로의 귀속인가?”
“4도의 귀속 문제를 분명히 한다는 것 이상은 말할 게 없다.”
“간단한 질문이다. 귀속이라는 것은 예를 들어 4개 섬이 있으니 4-0, 3-1 등을 포함해(일부 섬의 러시아 귀속을 인정한다는 의미) 귀속을 한다는 것인가, 아니면 4개 섬의 일본 귀속, 즉 4-0을 말하는 것이냐?”
“4개 섬이 어디에 귀속하는지, 일본에의 귀속 ‘등을’ 분명히 한다는 것이다.”
지난 3일 오전 9시, 일본 국정과 관련된 전반적인 현안을 논의하는 중의원 예산위원회. 이날 첫 질문자로 나선 이는 마에하라 세이지(54) 민진당 의원이었다. 간 나오토 정권 시절 외무상으로 직접 러시아와 북방영토(쿠릴열도 남단의 4개 섬) 교섭에 나서기도 했던 마에하라 의원은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12월 방일을 앞두고 초미의 관심사로 떠오른 러시아와 영토 협상에 대해 날 선 질문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흐루쇼프, 2개 섬 반환 의사 내비쳐
동아시아 지역의 해묵은 난제인 러-일 간의 영토분쟁은 한국인들에겐 익숙지 않은 주제다. 그러나 이 협상의 결과는 러-일 양국 관계뿐 아니라 한반도를 포함한 동아시아 지역의 전략적 균형을 깨뜨려 이 지역 정세 전반, 나아가 미국의 세계 전략에도 복잡한 영향을 불러올 수 있는 매우 심도 싶은 ‘전략 현안’이기도 하다.
러·일 양국이 12월15일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고향인 야마구치현 나가토에서 열리는 정상회담 때 영토 문제에서 결정적인 진전을 이끌어낸다면, 2013년 3월 우크라이나 사태 이후 미국이 유지하고 있는 ‘대러 포위망’은 극동의 일본을 통해 구멍이 뚫릴 수밖에 없다. 이 경우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 행사 등으로 인해 애써 강화해둔 미-일 동맹에 일정 부분 타격이 예상된다. 나아가 러-일 관계가 급속히 가까워지면 오랜 시간 미묘한 견제·협력 관계를 이어온 중-러 관계, 나아가 동중국해 등을 둘러싸고 갈등의 골이 깊어지고 있는 중-일 관계에도 여러 파급 효과가 나타날 수밖에 없다. 최근 일본 언론이 보도한 시베리아 철도의 일본 연결 구상에서 보듯, 러시아 극동 개발을 둘러싸고 일본과 경쟁관계에 있는 한국으로서도 러-일의 급속한 관계 개선은 마냥 환영할 만한 일은 아니다.
지난 3일 공방은 북방영토 문제를 둘러싼 일본 내의 지난한 논쟁 과정을 압축해 보여주는 동시에, 현재 아베 정권의 대러 협상의 기본 방침을 암시했다는 점에서 여러모로 곱씹어볼 여지가 많다. 마에하라 외상이 4도 일괄반환이라는 ‘원칙론’에 기대 기시다 외상을 공격했다면, 기시다 외상은 이에 대해 즉답을 피하는 ‘현실론’을 통해 향후 러시아와의 협상에서 유연한 대응에 나서겠다는 분명한 의사를 밝혔기 때문이다.
러·일 오랜 쟁점인 북방 4개섬 문제
12월 푸틴 방일 앞두고 해빙 분위기
동아시아 균형 깨트리는 ‘전략 현안’
극동개발 놓고 경쟁하는 한국도 영향
70년간 지속된 원칙론 대 현실론 구도
미국 타격 주려는 러시아 속내와
이를 지렛대 삼으려는 일본의 계산
미국의 반대와 일본 내 반발이 변수
북방영토를 둘러싼 러-일 간의 갈등은 냉전과 탈냉전으로 이어지는 지난 70년 동안 3막으로 짜인 장대한 드라마를 만들어냈다. 1막의 직접적 계기는 1953년 소련의 독재자인 이오시프 스탈린의 사망이었다. 일본은 2차 세계대전을 공식적으로 종료시킨 1951년 9월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으로 쿠릴열도뿐 아니라 러-일 전쟁을 통해 취득한 북위 50도 이남의 사할린에 대한 “모든 권리와 소유권 및 청구권을 포기”하기에 이른다. 그러나 일본이 포기한 쿠릴열도(일본어로 지시마열도)의 범위가 어디까지인가를 두고 러-일 간의 분쟁이 시작됐다. 일본은 쿠릴열도 남단의 4개 섬인 에토로후, 구나시리, 시코탄, 하보마이 군도는 일본이 1855년 ‘러일통호조약’에 의해 취득했기 때문에 일본이 포기한 쿠릴열도에 포함되지 않으며, 소련이 이들 4개 섬을 점령한 것은 전쟁이 종료된 1945년 8월15일 이후였다는 주장을 내세우고 있다. 이에 대해 러시아는 “4개 섬은 일본이 2차 대전의 결과로 취득했다”는 원칙을 유지하고 있다.
양보의 여지가 없는 양국의 대립에 첫 변화를 가져온 인물은 스탈린 사후 소련의 새 지도자로 등장한 니키타 흐루쇼프였다. 그는 미-소 냉전 체제 속에서 미국에 타격을 입히기 위해 일본 등 소련의 옛 적국들과 관계 개선에 나서게 된다. 흐루쇼프의 아들인 역사학자 세르게이 흐루쇼프(81)는 19일 <마이니치신문>과 한 인터뷰에서 “미-소 간 핵전쟁을 피하고 평화공존 노선을 추진하기 위해 (소련은) 서독과 일본 등 옛 적국들과 교섭을 진행했다. (대일 접근을 통해 일본의) 대미종속을 약화시킬 수 있을 것으로 봤다”고 당시 상황을 증언하고 있다. 마침 일본에서도 1954년 12월 친미 요시다 시게루 정권이 무너지고 대미 자주외교 노선을 내세운 하토아먀 이치로 정권이 들어서게 된다. 이런 흐름 속에서 양국은 1955년 6월 영국 런던에서 평화조약 체결을 위한 본격적인 교섭에 돌입한다.
일본 <엔에이치케이>(NHK) 방송이 2011년 2월 방송한 다큐멘터리 <북방영토 해결의 길은 있는가>를 보면, 당시 일본 정부는 소련에 대해 3단계의 협상안을 준비했던 것으로 확인된다. 1안은 일본이 패전으로 상실한 모든 영토의 반환, 2안은 북방영토 4개 섬의 반환, 마지막 3단계 안은 이 가운데 가장 작은 시코탄과 하보마이 군도의 반환 요구였다. 상식적인 기준으로 볼 때 2차 대전의 승전국인 소련이 패전국인 일본의 요구에 응할 리 만무했다. 그러나 러-일 관계 회복을 통해 미-일 관계에 타격을 주길 원했던 흐루쇼프는 1955년 8월4~5일께 시코탄과 하보마이 군도 2개 섬의 반환 의사가 있음을 일본에 전달하게 된다. 일본으로선 예상치 못했던 커다란 외교적 성과였다.
일본, ‘8개 항목의 경제협력 계획’
당연히 미국이 이 흐름에 제동을 걸고 나선다. 존 포스터 덜레스 미 국무장관은 8월18일 시게미쓰 마모루 외상에게 “일본이 에토로후, 구나시리를 소련 영토로 인정하면 우리도 오키나와를 영구히 영유하는 입장에 설 것”이라고 위협했다. 이에 큰 충격을 받은 일본은 결국 1956년 2월 ‘소일공동선언’을 통해 영토 문제 해결을 보류하고 국교만 정상화하는 타협안을 선택하게 된다. 그러면서 소-일은 공동선언 9조에 양국이 평화조약을 체결한 뒤 “하보마이와 시코탄을 일본에 넘겨준다”는 데 합의한다. 그러나 냉전 격화라는 국제 질서의 흐름 속에서 일본 국내에선 ‘4도 일괄반환론’이 당연한 상식처럼 뿌리를 내리게 되고, 소련과 합리적인 논의를 진행하는 것은 불가능해진다.
2막은 1991년 12월 소련의 해체를 계기로 시작됐다. 보리스 옐친 당시 러시아 대통령은 엉망이 된 러시아의 경제를 되살리기 위해 일본과 경제협력을 추진하길 절실히 희망했다. 2막의 가장 극적인 무대는 1998년 4월 시즈오카현 가와나에서 이뤄진 옐친 대통령과 하시모토 류타로 총리 사이의 비공식 회담이었다. 이때 일본은 “러시아가 4개 섬에 대한 일본의 주권을 인정한다면 이들 섬의 반환 시기는 유연히 대처할 수 있다”는 내용의 ‘가와나 제안’을 내놓는다. 4개 섬의 일괄반환이라는 원칙을 유지하면서 일본이 내놓을 수 있는 최대한의 타협안이었다. 당시 이 회담장에 배석했던 단바 미노루(사망) 전 외무성 외무심의관은 지난 9월19일 <엔에이치케이> 다큐멘터리 <일소·일러 교섭 비화>에서 4월9일 아침 보리스 옐친 러시아 대통령에게 이 제안을 전했을 때 “옐친이 의자에서 반쯤 일어나 ‘베리 인터레스팅’이란 반응을 보였다”고 증언했다.
이런 옐친을 만류한 것은 러시아 쪽의 배석자 세르게이 야스트르젬프스키 대통령부 부장관이었다. 그로 인해 옐친 대통령은 “이 안을 본국에 가 검토해보겠다”는 응답에 머무르게 된다. 단바 전 외무심의관은 당시 상황에 대해 “옐친 대통령이 ‘예스’라고 답했으면 영토협상은 당시 해결될 수도 있었다. (이를 만류한) 야스트르젬프스키의 얼굴을 한 대 때려주고 싶은 심정이었다”고 증언하고 있다. 일본은 가와나 제안이 실패한 뒤 1956년 소일공동선언에서 합의한 하보마이와 시코탄에 대해선 반환의 구체적인 방안을 논의하고, 에토로후와 구나시리에 대해선 계속해 논의를 이어가자는 ‘2도 우선 반환론’ 혹은 ‘병행협의안’을 추진한다. 그러나 이에 반대하는 일본 보수세력의 반격으로 이 안을 추진하던 도고 가즈히코(71) 구아국장(러시아와 중앙아시아를 담당하는 부서)은 매국노로 몰려 외무성에서 쫓겨난다. 이러한 일본의 움직임을 확인한 러시아는 일본과 교섭할 의욕을 잃게 된다.
현재 진행 중인 러-일 협상은 이러한 긴 드라마의 3막에 해당한다. 세번째 막이 열린 계기는 2013년 3월 ‘우크라이나 사태’였다. 우크라이나 사태를 통해 주요 7개국(G7)의 일원인 일본을 통해 미국의 대러 포위망을 뚫어내려는 푸틴 대통령과 이를 지렛대 삼아 영토 문제를 해결하려는 아베 총리가 같은 배를 타게 된 묘한 상황이 만들어진 것이다.
어렵게 열린 3막을 대하는 아베 총리는 철저히 현실론에 입각한 접근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를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것이 지난 5월 러시아 소치 정상회담에서 아베 총리가 밝힌 “지금까지의 발상에 얽매이지 않는 ‘새로운 접근’”이란 개념이다. 이 ‘새로운 접근’이 구체적으로 어떤 내용인지는 불명확하지만, 이에 대한 힌트가 될 만한 일본 언론의 보도가 잇따르고 있다. <요미우리신문>은 지난달 23일 1면 머리기사로 복수의 정부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정부가 러시아와 북방영토 문제 교섭에서 하보마이, 시코탄 등 2개 섬을 넘겨받는 것을 (협상) 최저 조건으로 한다는 방침을 굳혔다”고 보도했다. 이어 <니혼게이자이신문>도 지난 17일 “일본 정부가 러시아와 북방영토 문제의 타개책으로 일·러 양국에 의한 공동통치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런 보도가 일관되게 가리키는 방향은 아베 정권이 오랫동안 유지해온 ‘원칙론’에서 벗어나 러시아가 받아들일 수 있는 현실적인 접근법으로 거대한 정책 전환을 시도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와 함께 일본 언론들은 일본이 러시아를 위해 준비하고 있는 ‘8개 항목의 경제협력 계획’ 등 다양한 협력안을 경쟁적으로 보도하고 있다.
뿌리 깊은 4도 일괄반환론
이는 러시아가 오랫동안 기다려온 변화이기도 하다. 푸틴 대통령은 2001년 3월 <엔에이치케이> 인터뷰 등을 통해 옛소련과 일본이 체결한 소일공동선언에 대해 “이는 (옛소련) 의회가 비준한 것으로 우리에게는 (시행해야 할) 의무가 있다. 이 어려운 문제에 대해 일본과 대화를 할 생각이 있다”는 입장을 여러 차례 밝힌 바 있다. 즉, 일본이 12월 방일하는 푸틴 대통령에게 러시아가 받아들일 수 있는 합리적인 제안을 내놓는다면 당장이라도 양국 관계에 극적인 변화가 시작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현재 공을 쥐고 있는 쪽은 일본이다.
물론 부정적인 변수도 많다. 가장 큰 불안 요인은 미국이다. 아베 총리는 러-일 접근에 불편한 감정을 숨기지 않는 미국을 안심시키기 위해 지난달 21일(현지시각) 뉴욕에서 조 바이든 미 부통령과 회담했다. 바이든 부통령은 이 만남에서 “아베 총리를 믿는다. 앞으로도 양국(미·일)이 긴밀히 의사소통을 해가자”는 견해를 밝혔다고 전해진다.
또 하나의 변수는 일본 내 반발이다. 고이즈미 준이치로 정권 때 대북 외교 등을 담당한 이지마 이사오(71) 특별담당내각참여는 6일치 <주간문춘>(슈칸분혣)과 한 인터뷰에서 “4도의 잠재주권이 일본에 있다는 것을 러시아가 인정한다면 총리에게 120점을 줘도 좋지 않으냐”는 견해를 밝혔다. 이 견해는 한 번 실패한 ‘가와나 제안’의 맥을 잇는 견해로, 일본에서 4도 일괄반환론의 뿌리가 얼마가 깊은지 보여주는 것이다.
도쿄/길윤형 특파원 charisma@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