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6일 말레이시아 경찰 4명이 북한 국적 용의자 3명에 대한 진술을 듣기 위해 말레이시아 북한 대사관을 방문했다고 말레이시아 현지 중문매체 <중국보>가 보도했다. <중국보>누리집 갈무리/연합뉴스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의 이복형인 김정남(46)의 주검이 화장 뒤 북한으로 인도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지난달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국제공항에서 신경작용제인 브이엑스(VX) 공격을 받고 숨진 지 한달 보름여 만이다. 시신이 북한으로 인도될 경우 김정남 피살을 둘러싼 말레이시아와 북한 사이의 외교적 갈등은 일단락될 것으로 보이지만, 핵심 용의자 체포를 비롯한 진상 규명은 결국 불가능해질 가능성이 높다.
수브라마니암 사타시밤 말레이시아 보건부 장관은 26일(현지시각) 김정남 주검의 북한 송환 가능성을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그럴 가능성이 높다”고 답하며 “정부의 최종 결정과 경찰 조사 결과에 따라 주검을 처리하겠다”고 밝혔다고 싱가포르 <연합조보>가 전했다. 같은 날 아맛 자힛 하미디 말레이시아 부총리 역시 기자들과 만나 “말레이시아 외교부가 북한과의 협상과 관련한 공식 성명을 낼 것”이라고 밝혔다. 김정남의 주검을 화장한 뒤 북한으로 인도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대체적인 관측이다.
관련 수사를 마무리하려는 움직임도 26일 곳곳에서 목격됐다. 말레이시아 현지 중국어매체인 <중국보>는 26일 아침 4명의 경찰관이 북한 대사관에 들어가 대사관에 은신해 있던 핵심 용의자인 현광성(44) 북한대사관 2급 서기관, 고려항공 직원인 김욱일(37), 리지우(30) 등을 2시간30분가량 조사했다고 전했다. 이들 중 두 명은 슬랑오르(셀랑고르)주 범죄국 소속의 경찰관이다. 대사관은 치외법권 지역이어서 북한 당국의 허가 없이는 수사가 불가능하다는 점을 고려하면, 말레이시아가 형식적으로라도 이번 사건과 관련한 경찰 조사를 마무리하기 위해 사전에 북한과 협의한 것으로 보인다.
같은 날 김정남의 주검이 이송되는 모습도 목격됐다. 현지 매체인 <뉴 스트레이츠 타임스>는 26일 오후 2시께 김정남의 주검이 ‘종교적 의식’을 위해 쿠알라룸푸르 종합법원 국립법의학연구소에서 쿠알라룸푸르 외곽 체라스 지역으로 이송됐다고 전했다. <중국보>는 소식통을 인용해 “김정남의 주검이 26일 오후 쿠알라룸푸르 외곽의 화장장으로 옮겨졌으며, 화장한 뒤 북한 측 특사에게 인도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전했다. 다만, 말레이시아 현지 매체인 <더 선 데일리>는 김정남의 주검이 마카오에 있는 유족에게 전달될 것으로 보인다고 전해, 구체적인 내용은 말레이시아 당국의 공식 발표가 나와야 확인할 수 있다.
김정남 피살의 최대 쟁점인 주검 인도 문제가 정리되면, 북한과 말레이시아 사이의 외교적 갈등도 봉합 국면에 들어설 것으로 보인다. 말레이시아 경찰은 범행에 가담한 북한 국적 핵심 용의자들의 신원까지는 확인했지만, 이들은 이미 북한으로 도주했거나 치외법권 지역인 북한대사관에 은신해 있어 추가 수사는 사실상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말레이시아 정부는 부검으로 밝혀낸 사인을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북한의 재부검을 막고자 화장을 실시하고, 이를 통해 북한에 억류 중인 자국민 9명을 인도받는 협상을 진행할 것으로 보인다. 김정남 피살의 여파를 최소화하려는 북한 역시 이 같은 제안을 수용했을 가능성이 높다.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장남인 김정남은 지난달 13일 쿠알라룸푸르 국제공항 제2청사에서 신경작용계 독성물질인 VX 공격을 받고 인근 병원으로 이송되던 중 숨졌다. 그간 ‘김철(김정남의 여권상 이름)의 사인은 심장마비’라고 주장해온 북한은 북한 내 말레이시아 국민에 대해 출국 금지 조처를 내리며 말레이시아의 경찰 수사 결과에 강하게 반발했다. 말레이시아 정부 역시 자국 주재 강철 북한대사에게 추방 명령을 내린 데 이어, 말레이시아 내 북한대사관 관계자들에 대한 출국 금지 조처를 내리면서 양국간 외교 갈등은 심각한 양상으로 치달았다.
황금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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