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관광객들이 오키나와를 방문할 때 이용하는 나하국제공항이 있는 나하 기지에는 일본 항공자위대 주력전투기인 F-15 전투기를 비롯해 조기경보기(E2C) 등 일본 군사력의 최전선이 눈앞에 펼쳐져 있다.
▶ 동중국해가 출렁인다. 중국과 일본이 마주한 바다에 군사적 긴장이 높아지고 있다. 두 나라가 센카쿠 열도를 사이에 놓고 일촉즉발의 상황으로 내달리고 있다. 여기에다 미-일 동맹의 숙원사업인 미군기지 건설마저 위기를 부추기고 있다. 오키나와현 북부 나고시의 태평양 연안 헤노코 신기지 건설 현장을 다녀왔다.
지난 3월25일 오키나와 북부 나고시의 미군 캠프 슈워브 앞에 주민 3500명이 모였다. 신기지 건설에 반대하는 집회가 열린 것이다. 이날 집회엔 매우 이례적으로 자민당 출신 오키나와 지사가 참석했다. 오나가 다케시 지사는 주민들 앞에서 강한 어조로 말했다. “더 이상 오키나와에 기지는 필요 없다.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 신기지 건설을 막을 것이다.” 이날 집회는 오키나와에서도 교통이 불편한 중부의 해안가 미군기지 앞에서 열렸지만, 참가한 주민 수는 예상을 크게 웃돌았다. 신기지 건설이 본격화하면서 긴강감이 감도는 현지 분위기를 잘 반영하고 있었다.
지난 2002년 처음 불거진 헤노코 신기지 건설 논란은 이제 막바지를 향해 치닫고 있다. 2015년 오나가 지사는 전임 지사가 승인한 ‘기지 건설 관련 행정허가’를 취소하며 헤노코 신기지 건설을 중단시켰다. 이후 일본 정부와 오키나와 현청 간의 본격적인 싸움이 시작됐다. 기지 건설 공사를 밀어붙이는 일본 정부와 이를 막으려는 오키나와 현청이 힘겨루기에 나섰기 때문이다.
다음날인 26일. 일요일에도 기지 건설 기초공사가 한창이었다. 헤노코 해안에는 해상 매립을 위한 해저 측량 작업이 일찌감치 진행 중이다. 공사용 장비를 실은 대형 선박이 바다 한가운데 떠 있었다. 헤노코 연안 전체엔 매립 예정지 주변에 어떤 선박도 접근할 수 없도록 바다 울타리 역할을 하는 차단용 대형 부표가 길게 둘러쳐졌다. 이 울타리 경계를 따라서 일본 해상보안청 순찰선이 24시간 내내 반대 주민들의 출입을 저지하고 있다. 헤노코 신기지 건설 반대 주민대책위원회의 감시선이 울타리 10m 앞까지 바짝 접근하니, 해상보안청 순찰선 마이크에선 “물러나라! 이곳은 정부의 국책사업 공사 중이다. 위험하다, 물러나라!”는 경고방송이 반복됐다.
최고재판소, 일본 정부 손들어줘
헤노코 신기지 건설 반대 주민대책위 쪽은 해상 감시 활동을 이어가며 주민들에게 소식을 전하고 있다. 헤노코 바다에 함께 나간 대책위 소속 히가시온나 다쿠마 나고시의원은 “지난해부터 이곳에 바다 울타리가 쳐지고, 본격적인 해상 토목공사를 앞둔 측량 선박이 빈번히 오가고 있다. 그래서 우리도 거의 매일 이 바다를 살핀다. 우리는 물러설 수 없다. 헤노코 연안의 바다는 세계적인 산호 서식지다. 생태적 가치가 가장 높은 바다에 미군기지는 안 된다”며 지역주민들의 결연한 의지를 전했다.
일본 정부가 건설공사를 강행하고 나선 데는 지난해 12월 최고재판소 판결이 결정적으로 영향을 미쳤다. 법원은 헤노코 신기지 건설 반대 행정소송에서 정부의 손을 들어줬다. 공사 착공의 법적 근거를 마련한 아베 정부는 이때부터 앞뒤 가리지 않고 질주하기 시작했다. 전후 일본 정치에서 중앙정부가 지방정부의 입장을 무시하고 국책사업을 강행한 예는 없었다. 하다못해 돈폭탄과도 같은 예산 지원을 하거나 자민당 소속 의원을 지방정부에 대거 배치해 전방위적으로 회유하는 등 어떻게든 설득하는 모양새를 거치며 동의를 구하는 게 관례였다. 국방이나 안보를 위한 사업도 마찬가지였다. 지방정부의 동의 없는 국책사업 강행은 전례 없는 일이다. 그럼에도 오키나와 주민들의 반대 의사는 여전히 확고하다. ‘더 이상 기지는 안 된다’는 주민 여론이 70%를 넘는다. 아베와 같은 자민당 출신인 지사마저 헤노코 신기지 반대에 나선 건 이런 사정과 무관치 않다.
2006년부터 신기지 건설 본격 추진
‘후텐마 기지 이전’의 해법으로 등장
활주로 2개, 항공모함 접안 군항 갖춰
동중국해 위치한 차세대 미군기지
오키나와에 일본 최신 군사력 결집
본토 최북단의 조기경보기도 이동
최고 수준의 도·감청 기능 확보해
모든 중국 선박 한눈에 감시 가능
아베 정부는 왜 이토록 헤노코 신기지 건설을 밀어붙이려 할까. 헤노코 신기지는 주일미군의 숙원사업이자 미-일 동맹의 핵심 과제다. 잠시 지난 2월11일 열린 미-일 정상회담을 되새겨보자. 당시 회담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아베 신조 총리는 공동성명을 통해 “미-일 양국은 헤노코 신기지 건설이 필요하며, 후텐마 기지 문제의 유일한 해결방안”이라고 밝혔다. 조지 부시부터 버락 오바마에 이르기까지 일본을 방문한 역대 미국 대통령들은 줄곧 헤노코 신기지 건설에 공을 들였다. 미-일 정상이 만나면 항상 빠지지 않고 협의가 이루어진 미-일 동맹의 상징적인 사업이 바로 헤노코 신기지 건설이다.
기지 건설 공사의 역사가 시작된 건 2006년이다. 미국과 일본 두 나라는 ‘후텐마 기지 이전’을 ‘헤노코 신기지 건설’ 카드로 합의했다. 오키나와에선 1995년 여중생 성폭행 사건과 2004년 오키나와국제대학 헬기 추락 사고 등으로 반미감정이 들끓었다. 이런 가운데 오키나와 기노완시 한가운데에 위치한 후텐마 해병대 항공기지 철수 논란이 증폭됐다. 그래서 두 나라가 찾아낸 절묘한 해법이 ‘후텐마 이전, 헤노코 신기지 건설’이었다.
나하 기지 F-15 40대로 증강 배치
신기지엔 1800m 길이의 전투기 활주로가 두 개 들어서고, 여기에 항공모함이 접안할 수 있는 군항도 갖춰진다. 건설 예정지는 지난 50년간 미군이 주둔했던 오키나와 중북부의 캠프 슈워브 및 해병 탄약고 등의 바닷가 지역이다. 기존 미군 주둔지의 해상을 매립해 건설될 예정이다. 총면적이 205㏊(헥타르)에 이르는 신기지 예정지는 전체 부지의 4분의 3이 해상 매립으로 확보된다. 건설비용은 대부분 일본 정부의 방위비에서 충당되며, 2조원가량의 사업비가 소요될 예정이다.
일본 정부가 헤노코 신기지 건설 기초공사에 착수한 이후, 헤노코 기지 건설 반대 주민대책위는 날마다 배를 타고 주변 바다에 나가 감시활동을 벌이고 있다.
헤노코 신기지가 완공되면 이곳은 해병대를 비롯해 해군과 공군 등이 유사시 즉각 전투 현장으로 전개하는 기지로 탈바꿈한다. 여기서 일차적 전투 현장은 동중국해가 된다. 중국의 코앞에서 신속출동 작전능력이 구현되는 대형 종합군사기지가 출현하게 되는 셈이다. 말 그대로 중국을 겨냥한 미-일 동맹의 칼이다.
더군다나 헤노코 신기지는 미군의 역사를 놓고 봐서도 지금까지 찾아보기 힘들었던 신개념 기지다. 현대전의 핵심이며 미군의 가장 큰 숙제였던 신속한 전투부대 투입이 가능해서다. 이처럼 뛰어난 성능의 기지를 자기 돈 안 들이고, 그것도 맞수인 중국의 코앞에 세울 수 있으니, 미국 정부로선 여간 반가운 게 아니다. 그래서 대통령까지 나서서 애지중지 공을 들이는 것이다.
헤노코 신기지가 예정대로 완공된다면, 이는 동중국해에 가장 공격적인 차세대 미군기지가 탄생한다는 의미다. 이 지역의 군사적 충돌 가능성이 그만큼 높아지는 건 당연한 결과다. 실제로 2010년 전후부터 오키나와엔 일본의 군사력이 집중되고 있다. 오키나와 본섬을 위시한 난세이(南西) 제도에 일본 자위대 전력이 계속 증강되고 있다. 지난해 1월부터 오키나와 본섬 나하 기지엔 항공자위대 F-15 전투기가 40대까지 증강 배치됐다. 2008년 20대에서 10년도 안 돼 갑절로 늘어난 것이다. 홋카이도부터 오키나와까지 전체 일본 열도에서 일본 항공전력의 핵심인 F-15가 40대 배치된 곳은 오키나와 나하 기지뿐이다.
나하 기지는 한국 관광객들이 오키나와를 방문할 때 이용하는 나하국제공항 바로 그곳이다. 대부분의 한국 사람들은 관광 목적으로 오키나와를 찾는다. 다소 들뜬 분위기에서 이국의 아열대 섬을 머릿속에 그린다. 하지만 여객기가 착륙하며 활주로에서 속도가 줄어들 때 창밖을 자세히 내다보면 나하국제공항의 또다른 실체를 만나게 된다. 활주로 양옆에는 일본 군사력의 최전선이 눈앞에 펼쳐져 있다. 일본 항공자위대의 주력전투기인 F-15 전투기를 비롯해 조기경보기(E2C)가 눈에 들어온다. 2015년 12월, 일본 본토 최북단 아오모리현 미사와 기지에 있던 조기경보기를 나하 기지로 이동 배치한 것이다. 또한 일본 해군력의 자랑인 P3C 대잠초계기도 활주로에 보란 듯이 늘어서 있다. 나하 기지는 하늘과 바다에서 동중국해를 24시간 감시하며 유사시 즉각 출동할 수 있는 전진기지다.
일본 방공식별구역과 중국 방공식별구역이 맞물리는 곳에 있는 일본 최서단의 작은 섬 요나구니지마에서는 육상자위대의 해안 감시 부대가 활동을 시작했고, 내년부터는 요나구지니마 안쪽의 이시가키지마에 육상자위대가 주둔할 예정이다. 구글어스 화면 갈무리
‘KAL기 격추’ 당시 교신내용 감시했던 곳
무엇보다 2008년을 전후해 오키나와현 미야코지마 항공자위대 파견기지의 역할이 변하고 있는 점도 눈여겨봐야 한다. 일본 최북단 홋카이도 왓카나이에 있는 자위대 비밀 도감청 기지와 핵심적 기능이 같은 장비·시설이 오키나와 미야코지마의 항공자위대 우에노 기지에 설치됐다. 미야코지마 주민들조차 이 기지의 실체는 잘 모른다. 그냥 평범한 자위대 부대쯤으로 여길 뿐이다. 다만 부대 울타리 안에 세워진 축구공 모양의 레이더 시설이 눈에 띈다. 일본 방위의 촉수인 도감청을 포함한 전자정보 특수부대가 동중국해와 난세이 제도의 정점인 미야코지마의 작은 언덕 위에 세워져 있다. 냉전 시절 일본 최북단에서 소련을 감시하던 도감청 기지가 일본 최남단에도 신설돼 중국을 감시하기 시작한 것이다. 왓카나이 기지는 자위대의 기술 수준을 보여주는 상징으로, 1983년 당시 소련군이 대한항공(KAL) 여객기를 격추할 때 교신 내용 일체를 감시하기도 했다. 미야코지마 우에노 전자정보 특수부대는 미군에도 각별하다. 일본 자위대 기지로 운영되지만 모든 정보는 미군에도 전면 제공된다. 미-일 동맹의 촉수 역할을 하는 기지가 러시아의 턱밑에서 중국의 코앞으로 옮겨왔다고 보면 된다.
이뿐이 아니다. 지난해 3월 일본 열도 최서단의 작은 섬 요나구니지마에선 육상자위대의 해안 감시 부대가 활동에 들어갔다. 대만과 100여㎞ 떨어져 있는 일본의 섬이다. 이곳에 감시 관찰을 임무로 하는 부대가 창설된 것이다. 요나구니지마는 일본인들도 생소한 작은 섬이다. 하지만 지정학적 위치는 절묘하다. 일본 방공식별구역과 중국 방공식별구역이 맞물리는 곳에 자리잡고 있어서다. 이 섬에서 중국과 일본의 영토 갈등 현장인 센카쿠 열도까지는 불과 150㎞ 거리다. 이 감시부대에선 중국의 군함을 비롯해 모든 중국 선박이 한눈에 들어온다. 2018년에는 요나구니지마 안쪽의 이시가키지마에 육상자위대도 주둔한다. 1000억원 이상의 기지 건설 비용이 일본 정부 예산에서 승인됐다.
현재 한국도 사드 문제로 미국과 중국, 두 나라의 긴장 국면 한가운데서 허우적거리고 있다. 동아시아 지역에서 미-중의 패권 경쟁은 남의 일이 아니다. 바야흐로 동아시아 전체가 군사적 갈등의 격랑 속으로 빨려드는 중이다. 그 정점에 헤노코 신기지 건설이 놓여 있다.
오키나와/글·사진 서재철 녹색연합 전문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