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일 저녁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친교 만찬이 이뤄지는 하노이 메트호폴 호텔에 무장한 베트남 경찰이 배치돼 엄중 경계에 나서고 있다. 하노이/로이터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27일 저녁 친교 만찬을 나눈 ‘소피텔 레전드 메트로폴 하노이’(메트로폴호텔)은 1901년 문을 연 인도차이나 최고 명문 호텔이다. 이곳에서 인도차이나반도에선 처음 영화가 상영됐고, 엘리베이터와 전화가 설치됐다.
개장 즉시 호텔은 당시 프랑스의 식민지였던 하노이 사교계의 중심이 됐다. 영국 작가 그레이엄 그린, 서머싯 몸, 당대 최고 영화감독이자 배우였던 찰리 채플린 등이 이곳에 묵었다. 호텔 누리집을 보면, “메트로폴호텔은 1901년 문을 열었고, 두명의 프랑스 투자자들에 의해 디자인됐다. 호텔은 하노이의 전설적인 랜드마크가 되어 있다”적고 있다. 1954년 베트남 독립 이후 국영화 돼 ‘통(통일)호텔’로 이름이 바뀌었다.
이 호텔의 명물은 정원에 수영장과 ‘뱀부바’(야외바) 사이에 난 지하계단이다. 이 계단을 따라 내려가면 베트남전쟁 때 투숙객들이 미군 폭격을 피하기 위해 사용했던 방공호가 나온다. 방공호는 약 40명 정도 인원을 수용할 수 있는 크기다.
베트남전 반전 운동으로 적극 나섰던 배우 제인 폰다, 가수 존 바에즈 등이 이 호텔에 머물면서 폭격이 이뤄질 때면 이곳으로 몸을 피했다. 특히, 바에즈는 호텔에 두달간 머물며 1972년 12월 미국이 감행한 ‘크리스마스’ 폭격을 겪었다. 바예즈는 호텔방에서 23분이 넘는 대작곡인 ‘아들아, 너는 어디에 있느냐’(Where Are You Now, My Son?)를 녹음했는데, 그 때문에 노래에 폭격음이 섞여 들린다.
폭격이 심해지자 1970년대 초엔 각국 대사관이 호텔로 모여들었다. 그 때문에 호텔은 한때 ‘작은 유엔(UN)본부’ 같은 풍경을 연출했다. 호텔 로비엔 바에즈가 2013년 호텔을 재방문했을 때 기증한 베트남 아이의 초상화가 걸려 있다.
냉전 이후 호텔은 한때 서로를 향해 총부리를 겨눴던 미국과 베트남이 역사적 화해를 이룬 장소가 됐다. 1961~68년 미국 국방장관으로 베트남 전쟁을 수행한 로버트 맥나마라가 응우옌꼬탁 당시 베트남 외교부의 차관 등 베트남 관계자들과 1997년 6월20일 이곳에서 처음 만나 전쟁의 원인을 규명한 ‘적과의 대화’를 진행했다. 그에 앞서 맥나마라 장관은 자신의 회고록에서 전쟁은 “미국이 범한 과오였다”고 선선히 인정했다.
그러나 양쪽은 완벽한 의견의 일치에 이르진 못한다. 전쟁의 원인을 ‘양쪽 모두’의 잘못된 정세 판단이었다고 생각하고 싶어하는 미국과 달리, 베트남인들은 “미국은 우리를 국가가 아닌 냉전이라는 게임의 말로밖에 보지 않았다”(다오후이응옥·당시 북베트남 외교부)며 미국의 책임을 추궁한 것이다. 두 나라는 2015년 중국의 남중국해 진출이 본격화되자 관계를 한층 더 강화했다.
베트남이 개혁개방을 선택한 뒤 호텔은 프랑스 자본을 받아들여 1996년 신관(오페라윙)을 증축했다. 2006년과 2017년 각각 아시아태평양정상회의(APEC) 참석을 위해 하노이를 찾은 조지 부시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도 이곳에 묵었다.
하노이/황준범 특파원 길윤형 기자
charisma@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