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트리팔라 시리세나 스리랑카 대통령(왼쪽 두번째)이 23일 이틀 전 자살 폭탄테러가 발생해 많은 인명이 희생된 네곰보의 성세바스찬 성당을 둘러보고 있다. 네곰보/AFP 연합뉴스
311명의 목숨을 앗아간 스리랑카 연쇄 테러를 경고하는 첩보가 외국 정보기관에 의해 17일 전에 전달됐지만 당국이 제대로 대비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나면서 스리랑카 정부의 무능과 무책임에 대한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대통령과 총리가 대립하는 탓에 국가가 양분돼 부처 간 협조가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란 분석이 나오고 있다.
23일 스리랑카 정부의 발표와 <시엔엔>(CNN) 등의 보도를 종합하면, 미국과 인도 정보기관은 이달 4일 스리랑카를 표적으로 하는 공격이 준비 중이라는 첩보를 스리랑카 정보기관에 전달했다. 이어 스리랑카 국방부는 9일 국내 이슬람 극단주의 단체 ‘내셔널 타우히트 자마트’가 테러를 계획하고 있다는 사실과 용의자 명단을 담은 정보를 경찰에 전달했다.
이틀 뒤인 11일엔 경찰 차장 서명이 들어간 관련 문서가 각 부처와 경비업체에 전달됐다. 그러나 21일 테러 발생 때까지 교회나 고급 호텔 등 주요 표적에 대한 보안은 강화되지 않았다. 결국 기독교도들이 기도를 올리고, 여행객들이 여유롭게 아침 식사를 하던 일요일 오전 연쇄 테러가 자행됐다. 라지타 세나라트네 정부 대변인은 22일 “외국 정보기관의 경고가 거듭 이어지고 있었다. 한 경고는 폭발이 일어나기 10분 전에 나왔다”고 주장했다.
외신들은 지난해 말 이후 정치적 갈등이 어처구니없는 ‘부작위’의 원인이라고 꼬집었다. 2015년 3선을 노리던 마힌다 라자팍사 전 대통령을 꺾고 권좌에 오른 이는 같은 스리랑카자유당 소속 마이트리팔라 시리세나 대통령이다. 그는 이후 야당인 통일국민당을 이끌던 라닐 위크레마싱헤를 총리로 임명해 연립정권을 꾸렸다. 그러나 경제 정책과 외교 노선을 둘러싼 대립으로 정권은 출범 직후부터 삐걱거리기 시작했다. 결국 시리세나 대통령은 지난해 10월 위크레마싱헤 총리를 해임하고 전임 대통령 라자팍사를 후임으로 임명했다. 하지만 위크레마싱헤 총리가 헌법에 대통령의 총리 해임권은 규정돼 있지 않다는 이유로 버티면서 ‘한 나라 두 총리’ 사태가 벌어졌다. 대법원이 12월 위크레마싱헤 총리의 손을 들어주면서 갈등이 봉합됐다.
하지만 정부 내 상처는 깊게 남았다. 각 부처를 지휘하며 테러에 대비해야 하는 위크레마싱헤 총리는 관련 첩보를 전달받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세나라트네 대변인은 “총리가 지난해 12월부터 국가안전보장회의에서 배제돼 있다”고 말했다.
시리세나 대통령은 당국이 테러 첩보에 대처하지 못한 이유를 규명하기 위해 대법원 주도 조사위원회를 만들겠다고 밝혔다. 위크레마싱헤 총리의 실책을 추궁하겠다는 정치적 의도가 읽힌다. 스리랑카 정부가 ‘국가 애도의 날’로 지정하고 합동장례식을 치른 23일까지 체포된 사건 관련자는 40명으로 늘었다.
한편 이슬람국가(IS)는 이번 테러가 자신들 소행이라고 선전 매체 <아마크> 통신을 통해 이날 뒤늦게 주장했다. 또 스리랑카 정부는 이번 공격은 지난달 모스크에서 50명이 희생당한 뉴질랜드 크라이스트처치 총격 테러의 복수 행위라고 밝혔다. 하지만 양쪽은 이런 주장의 근거는 제시하지 않았다.
길윤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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