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21일 중국 수도 베이징의 한 미국계 기업 사옥 앞에 미·중 양국 국기가 내걸려 있다. 베이징/로이터 연합뉴스
중국이 미국 등 서방국가의 제재에 맞선 보복 대응을 위해 마련한 ‘반외국 제재법’이 조만간 홍콩에서도 적용된다. 홍콩 주재 외국기업과 개인도 법 적용 대상이 될 것이란 우려가 커지자, 현지 당국이 여론 달래기에 나섰다.
18일 <홍콩방송>(RTHK) 등의 보도를 종합하면, 중국 최고 입법기구인 제13기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 제30차 상무위원회는 오는 20일 폐막에 앞서 ‘반외국 제재법’을 홍콩에서도 적용하는 내용을 뼈대로 한 결의안을 통과시킬 방침이다. 홍콩 몫 전인대 상무위원인 탄야오쭝을 따 “결의안의 내용은 간단하며, 반외국제재법을 홍콩기본법 부칙 3조 규정에 포함시키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홍콩의 헌법 격인 기본법 부칙3조는 홍콩을 포함한 중국 전역에서 적행되는 이른바 ‘전국성 법령’을 규정하고 있다. 전인대 상무위가 특정 법령을 부칙3조에 포함시키면, 홍콩 당국이 관보에 게재해 공포하거나 입법회의 논의를 거쳐 발효시키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지난해 6월 말 발효된 홍콩판 국가보안법(홍콩보안법)은 관보 게재를 통해 발효된 바 있다.
이와 관련 탄야오쭝은 “홍콩 입법회가 언제 관련 법령을 통과시켜야 하는지, 홍콩 당국이 어떤 방식으로 법을 시행할 것인지에 대해선 전인대 상무위에서 구체적인 논의를 하지 않을 것”이라고 전했다. 관보 게재로 곧바로 발효시키는 대신 입법회 논의를 거칠 것이란 뜻이다.
<사우스차이나 모닝포스트>는 내부 소식통의 말을 따 “서두를 이유가 없기 때문에 현 입법회 임기가 끝나는 오는 10월 말까지는 이와 관련한 논의가 이뤄지진 않을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홍콩 차기 입법회 선거는 오는 12월19일로 예정돼 있다.
앞서 전인대는 제29차 상무위원회 폐막에 앞선 지난 6월10일 오후 서방 국가의 대중국 제재에 대한 보복 대응의 근거 법령인 ‘반외국 제재법’을 심의·통과시킨 바 있다.
법 제3조는 “중국은 패권주의와 강권정치에 반대하며, 어떤 국가가 어떤 이유와 방식으로든 중국 내정에 간섭하는 것을 반대한다”며 “외국 정부가 중국 공민과 조직에 차별적 제한 조치를 하거나 내정을 간섭하면, 중국 정부는 이에 상응하는 보복 조치를 할 권리가 있다”고 규정했다.
또 “(중국을 겨냥한) 제재를 결정 또는 이행하는 과정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한 개인 또는 기관”을 제재 대상으로 규정하고, △비자(입국 사증) 발급 불허, 입국 금지, 추방 등 출입국 제한 △중국 내 자산 동결 △중국 내 개인 또는 단체와 협력 활동 제한·금지 등의 제재를 동원할 수 있도록 했다.
특히 외국의 개인 또는 단체에 서방 각국의 대중국 제재를 이행하지 말 것을 요구하는 한편, 중국의 보복 제재를 이행하지 않는 개인이나 단체엔 법적 책임을 지울 수 있도록 규정했다. 미국 등 서방의 제재를 이행해도, 중국의 보복 제재를 이행하지 않아도 문제가 될 수 있다는 뜻이다.
이에 따라 반외국 제재법이 홍콩에서 발효되면 홍콩 주재 외국 기업과 개인에게도 직접적인 타격을 줄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특히 중국 본토에 견줘 국제화 정도가 높은 홍콩 금융권에 치명타를 가할 수 있다는 주장도 있다. 미국의 제재와 중국의 법령 가운데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상황으로 몰릴 수 있고, 둘 중 하나를 이행하면 다른 하나는 위반할 수밖에 없는 구조인 탓이다.
우려가 커지자 홍콩 당국은 “외국 정부의 부당한 징벌적 행태에 대한 보복 조처로만 활용될 것”이라며 여론 달래기에 적극 나서고 있다. 폴 찬 재정사장(재무장관 격)은 “반외국 제재법은 시장 질서를 정상으로 회복시키고, 기업의 발전이익을 보호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캐리 람 행정장관도 “(법 시행과 관련해) 업계와 더욱 긴밀한 소통을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베이징/정인환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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