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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중국

[링링 베이징] 로봇이 만든 정체 모를 덮밥은 양심이 없었다

등록 2022-02-04 12:09수정 2022-02-04 22:45

서빙 로봇이 1월29일 중국 베이징 메인미디어센터(MMC) 구내식당에서 음식을 나르고 있다. 베이징/연합뉴스
서빙 로봇이 1월29일 중국 베이징 메인미디어센터(MMC) 구내식당에서 음식을 나르고 있다. 베이징/연합뉴스

링링은 ‘청량하다, 시원하다’는 뜻의 중국말로, 소리가 깨끗하게 잘 들리는 모양을 의미합니다. 동음이의어 가운데는 ‘춥다, 얼음이 두껍게 얼다’라는 뜻의 말도 있습니다. 선수들의 거친 숨소리부터 올림픽에 대한 우려 섞인 목소리까지, 베이징 현장에서 생생하게 전하겠습니다.

올림픽도 결국 밥심이다. 최고의 컨디션을 유지해야 하는 선수들은 물론, 자원봉사자와 기자들에게도 먹는 문제는 중요하다. 특히 올림픽은 대부분 ‘물 건너’에서 열리기 때문에, 음식이 입에 맞지 않으면 고생이다. 이번 대회는 폐쇄 루프로 대회 참가자와 외부를 완전히 분리했기에 더욱 그렇다. 배달음식도, 폐쇄 루프를 넘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중국은 음식이 맛있기로 소문난 곳이다. 더욱이 메인 미디어센터(MMC) 구내식당에선 로봇이 직접 음식을 만들고 서빙까지 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그런데 벌써부터 참가자들의 불만이 심상치 않다. 폐쇄 루프 안에서 옴짝달싹 못해서 선택권이 사실상 없는데, 가격은 비싸고 음식 맛은 떨어지기 때문이다. 오죽하면 지난여름 도쿄올림픽 때 경기장 곳곳에 놓여있던 땅콩샌드위치마저 간절할까.

조리 로봇이 1월29일 베이징 메인 미디어센터 구내식당에서 음식을 만들고 있다. 베이징/연합뉴스
조리 로봇이 1월29일 베이징 메인 미디어센터 구내식당에서 음식을 만들고 있다. 베이징/연합뉴스
백문이 불여일견, 아니 ‘불여일식’이다. 3일 화제의 메인 미디어센터 식당을 직접 찾았다. 조금 이른 오후 4시쯤이어서, 대부분의 음식은 주문할 수 없었다. 돼지고기덮밥을 55위안(약 1만원) 주고 구매했다. 영수증에 붙은 큐아르(QR)코드를 센서에 갖다 대자, 로봇이 검은색 뚝배기에 담긴 음식을 옮겨줬다. 음식을 바로 받아볼 수 있는 점은 간편했다. 이 돼지고기덮밥도 로봇이 만드는데, 한꺼번에 여러 뚝배기를 조리한 뒤 주문이 들어오면 하나씩 내놓는 방식이다.

기대에 차 뚜껑을 열었다. 짧은 탄식이 마스크 사이로 흘러나왔다. 밥의 양은 많았다. 문제는 고기가 턱없이 부족했다는 점이다. 그마저도 살코기는 얼마 없고, 뼈가 절반 이상이었다. 반찬이라곤 자차이(짜사이) 뿐. 로봇이 만들어서 그런지 양심이 없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이정도 밥과 고기라면, 900원짜리 삼각김밥 2개 정도 분량이 나올 것 같았다. 그마저도 고기에 도달하기 위해선 꽤 많은 맨밥을 먹어야 하리라. 그렇게 늦은 점심을 겨우 해결했다. 살 없는 뼈를 씹고 밥을 먹으며, 실제 돼지고기덮밥이 아니라 그냥 돼지고기덮밥 이름만 빌려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음식보다는 현대미술에 가까웠다.

베이징 구내식당에서 판매하는 돼지고기 덮밥. 가격은 약 1만원. 베이징/이준희 기자
베이징 구내식당에서 판매하는 돼지고기 덮밥. 가격은 약 1만원. 베이징/이준희 기자
2018 평창겨울올림픽 때 평창 케이푸드 플라자에서 판매했던 떡갈비. 가격은 8000원. <한겨레> 자료 사진
2018 평창겨울올림픽 때 평창 케이푸드 플라자에서 판매했던 떡갈비. 가격은 8000원. <한겨레> 자료 사진
미디어센터가 아니라면, 호텔 음식을 먹어야 한다. 쇼트트랙 훈련 취재를 마친 뒤 저녁 늦게 숙소에 도착했다. 이미 저녁 뷔페 이용 시간은 지났다. 다행히 호텔은 24시간 룸서비스를 운영한다. 식사류로는 하이난 치킨 라이스·나시고랭·동파육·일본식 장어덮밥·스테이크 등이 있는데, 가격대는 50위안(약 9500원)∼150위안(약 2만8500원)이다.

중국에 왔으니 중국 음식을 먹자는 생각에 동파육을 주문했다. 재료가 없다고 했다. 이미 결제를 한 상태여서, 같은 가격(85위안·약 1만6000원)인 장어덮밥으로 바꿔달라고 했다. 약 10분 뒤쯤 요리가 도착했는데, 아무리 봐도 나시고랭이었다. 전화를 걸어 요리가 잘못 왔다고 했고, 호텔에선 잘못 보낸 게 맞다며 음식을 다시 보내줬다.

문제는, 새롭게 온 음식도 전혀 장어덮밥처럼 보이지 않았다는 점이다. 밥 위엔 장어가 올려져 있는 모습을 상상했지만, 파만 덩그러니 있었다. 대신 밥 속에 무언가 잘게 잘려 들어있었다. 처음엔 버섯이라고 생각했고, 순간 식용밀웜을 떠올리기도 했다. 맛을 보니 세상에, 장어가 맞았다. 일본식이라기보다는, 대패장어덮밥 같은 이름이 어울렸다. 한국에 있는 지인 몇 명에게 음식 사진을 보냈다. 누구도 이 음식의 정체를 알지 못했다.

호텔 룸서비스로 제공되는 장어덮밥. 가격은 약 16000원. 베이징/이준희 기자
호텔 룸서비스로 제공되는 장어덮밥. 가격은 약 16000원. 베이징/이준희 기자
음식 때문에 고초를 겪는 건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다. 앞서 스켈레톤 국가대표 윤성빈(28)은 <연합뉴스>와 한 인터뷰에서 선수촌 음식 맛에 대한 불만을 표시했다. “요리를 못 하는 것 같다”는 직설적인 표현까지 했다. 베이징 내 경기장에서 일하는 한 중국인 자원봉사자는 “베이징 물가를 고려해도 기자들에게 파는 음식이 지나치게 비싼 것 같다”면서 “실은 우리도 음식 맛 때문에 고생 중”이라고 귀띔했다.

한편 대한체육회는 선수들을 위해 지난 도쿄올림픽 때처럼 선수촌에 자체 도시락을 공급하고 있다. 2008년 베이징 대회 때부터 이어져 온 전통을 이어가는 셈이다. 급식지원센터는 베이징 올림픽선수촌 인근 호텔에 차려졌는데, 진천 국가대표선수촌 영양사와 조리사 등 14명이 요리를 담당한다. 센터는 개막일인 4일부터 17일까지 총 2주 동안 도시락을 제공한다.

베이징/이준희 기자 givenhapp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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