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일 중국인민은행 정저우지점 앞에서 예금주들이 예금액을 석달 가까이 못 찾는 상황에 대한 대책을 요구하며 시위하고 있다. AF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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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일, 한 해커가 중국 상하이 공안국 시스템에서 10억명의 개인정보를 해킹했고, 이를 10비트코인(우리 돈 2억8천만원)에 판매할 것이란 소식이 전해졌다. 10억명의 이름과 성별, 생년월일, 거주지와 출생지, 학력, 직업, 종교, 정치성향, 위법기록, 사진, 전화번호 등 민감정보가 알리바바 클라우드 시스템 보안의 심각한 버그로 인해 유출된 것이다.
위스콘신매디슨대학의 이푸셴은 25만명의 샘플 데이터 분석을 통해 “중국 전역의 인구정보가 담겨 있다”고 밝혔다. 이 사건에 대해 <뉴욕 타임스>의 존 류 기자는 “중국 정부가 방대한 양의 시민정보를 수집하는 데에는 매우 앞서나갔지만, 이를 보호하는 데는 실패했음을 보여준다”고 논평했다.
일주일 뒤 허난성 내 소형 마을은행들의 예금주 4천여명이 대규모 시위에 나섰다. 인민은행 정저우지점 앞에 모인 시민들은 400억위안(약 8조원)에 이르는 예금액을 석달 가까이 못 찾는 상황에 대한 대책을 요구하며 “부패를 규탄한다” “40만명의 중국몽이 허난에서 무너졌다” 등 구호가 적힌 펼침막을 들고 시위했다.
무슨 연유일까? 4월18일, 정저우시 기반 4개 마을은행이 예금 인출을 봉쇄해버렸기 때문이다. 은행 고객서비스나 정부 은행감독국에 신고했지만, 깜깜무소식이었다. 5월 말에 이르자 시민들은 금융감독 당국으로 항의의 초점을 바꾸었고, 마침내 대규모 시위까지 이른 것이다.
서로 무관해 보이는 해킹과 예금인출 중단에 따른 시위는 ‘사회신용체계’라는 모순과 연결돼 있다. 지난 몇년 동안 중국 정부는 일상생활과 사회관계에 대한 데이터를 수집하고 일원화된 빅데이터를 구축해왔다. 소셜미디어 분석과 생체정보 수집, 휴대전화 추적, 수억개의 감시카메라를 통한 실시간 정보 파악 등 전방위적이다.
중국 정부는 왜 개인정보를 수집해온 걸까? 주지하다시피 중국은 더이상 글로벌 공급사슬의 생산지 역할로는 경제성장을 지속할 수 없다. 이에 따라 중국 정부는 적극적인 재정 정책과 완화적인 통화 정책으로 경기부양을 도모해왔다. 그러나 상당 부분은 주식시장과 부동산시장으로 유입됐고, 기대만큼의 효과를 누리지 못하면서 거품을 낳았다. 문제는 중국 정부가 신용 공급을 늘리면 위안화 가치가 떨어지고, 금융 안정성을 제고하면 국부 유출을 겪는 딜레마에 빠진다는 것이다. 금융시장이 개방되면 중국은 외국 자본과 경쟁해 압도적 우위를 유지하는 걸 지상과제로 삼을 것이다. 하지만 금융시장의 높은 변동성과 신용평가 시스템에 대한 낮은 신뢰도는 이를 저해한다. 은행으로선 민간에 자금을 풀어 경기순환을 추동해야 하는데, 누구에게 돈을 빌려줄지 알 수 없다 보니 불안정성을 감내할 수밖에 없다.
사회신용체계는 자본의 신용도 평가를 위해 설계됐다. 하지만 14억 인구나 중소영세기업에 대한 신용기록이 부족해 신용도 측정이 불가능했고, 은행은 대출 여부를 효율적으로 판단하기 어려웠다. 그러니 국유기업들에 대출이 쏠릴 수밖에 없었고, 경질자산이 거의 없는 중소기업들은 유동성 확보에 어려움을 겪었다. 그 때문에 그림자금융이나 피투피(P2P) 재테크 상품의 과열로 이어질 수밖에 없었고, 마을은행 핀테크 대출의 난립으로 이어진 것이다. 인민은행 통계에 따르면 작년 2분기 기준 122개 마을은행이 고위험 리스트에 올랐는데, 이는 전체에서 29%를 차지한다.
중국의 사회신용체계는 개인·기업·정부의 신용정보, 블랙리스트와 레드리스트, 보상과 처벌 등 세가지 요소로 구성돼 있다. 가령 ㄱ씨가 법원의 벌금 명령을 무시하면 통신사는 체납자의 통화발신음에 “발신자는 벌금 체납자입니다. 시민의 의무를 다하도록 설득해주세요”라는 멘트를 강제 삽입한다. 고속열차나 비행기 예약이 어려워지고, 자녀의 대학 입학이 취소될 수도 있다.
정부 정책에도 활용된다. 시진핑 주석은 사회신용체계를 통해 정책 신뢰도의 결함을 정정하려 시도해왔다. 여기엔 지방정부 정책의 지속성과 통치 안정성, 지방 부채와 관료 부패, 기업 투자를 얼마나 많이 유치했는지도 평가 항목에 포함된다. 이를 통해 중앙의 권한을 확대하고, 감찰을 강화해 정책 집행을 통합적으로 관리하겠다는 것이다. 엔지오(NGO)나 노동운동, 대학까지 범위를 확장해 곳곳으로 침투하면 더욱 체계적인 사회통제가 가능할 것이다. 이처럼 사회신용체계는 통치 안정화를 위한 수단이 된 셈이다.
동시에 사회신용체계는 기술굴기와 만나 감시자본주의의 축이 되고 있다. 각국 대사관이 밀집되어 있는 베이징시 량마차오(亮馬橋)엔 얼굴인식 데이터와 인물 동선 등 우리 일상의 다양한 정보를 수집하도록 설계된 스마트 가로등이 설치돼 있다. 이렇게 수집된 정보는 사회신용 데이터베이스로 구축된다. 보안 연구자 존 웨딩턴의 분석에 따르면, 행인들의 성별이나 안경·마스크 착용 여부, 생김새 등 세부사항이 기록되며, 대략적인 나이와 신용점수도 표시된다. 사회신용체계가 구축한 신용점수라는 모델이 얼굴인식 인공지능 카메라와 만나 고도의 감시 시스템을 구축한 것이다.
애초 사회신용체계는 중국 국가자본주의의 위기를 관리하기 위한 전략으로 추진됐다. 실제 신용제도는 빅데이터와 인공지능 기술을 만나 심화됐고, 자본시장 안정화에 기여하고 있다. 개인과 기업의 재무정보가 불투명해 대출시장 발전을 가로막는 ‘신시대 중국특색’ 체제에서 안정성을 높이겠다는 취지는 만능열쇠처럼 보인다. 하지만 방대한 감시 네트워크와 알고리즘 기술에 기반한 평가·예측·제어 시스템이 사회 깊숙이 스며든 모순을 해결할 수 있을까? 개인의 신용을 평가하는 시스템은 필연적으로 그 개인의 사회적 행동과 경제적 배경을 근거로 한다. 이는 개인에 대한 통제와 억압을 심화하고, 기업과 정치 엘리트들에게 힘을 내줄 수밖에 없다. 그 사이 민주주의와 인권은 희생양이 된다.
한국 사회가 이와 무관하다고 할 수 있을까? 최근 법무부와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2005년 2월3일부터 2021년 10월20일까지 출입국한 내국인의 사진 5700만장과 개인정보, 2010년 8월23일부터 2021년 10월20일까지 출입국한 외국인의 사진 1억2천만장을 얼굴인식 기업들의 머신러닝 소스로 제공해왔다는 사실이 밝혀진 바 있다. 얼마 전 한덕수 총리는 네이버·카카오·쿠팡을 만나 빅데이터 규제를 완화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우리나라에서도 빅데이터 규제완화 찬가만 흘러나오고 있다. 일련의 흐름이 중국 사회신용체계가 꿈꾸는 그것과 무관할 것이란 생각을 떨치기 어렵다. 남 얘기하듯 떠들 때가 아니라는 것이다.
동아시아 연구활동가. 플랫폼C 활동가. 동아시아 이야기를 씁니다. 각 사회의 차이를 이해하고, 같은 꿈을 지향하자(異牀同夢)는 의미로 이름을 붙였습니다. 이상을 품은 동아시아의 꿈(理想東夢)이라는 뜻도 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