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오른쪽) 중국 국가주석과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이 19일 중국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만나 악수하는 모습이 베이징 쇼핑 거리의 모니터에 나오고 있다. 베이징/AFP 연합뉴스
“우리는 지금 여기 올바른 길 위에 있다. 그(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가 대단한 일을 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19일(현지시각) 캘리포니아주 샌타클래라를 방문한 자리에서 미-중 관계에 대한 기자들의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양국 관계에 진전이 있었다고 보느냐는 질문이 이어지자 “아시다시피 진전이 이뤄졌다”며 “여러분은 그런 식으로 질문할 필요가 없다. 얼마나 진전이 있었는지 물어야 한다”고 다소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였다.
바이든 대통령의 반응은 중국을 방문한 블링컨 장관이 이날 예정에 없던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까지 만나면서 미국과 중국이 다시 대화 궤도에 들어선 점을 강조한 것으로 보인다. 블링컨 장관은 18~19일 이틀 동안의 중국 방문에서 시 주석과 중국 외교 1, 2위 인사인 왕이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위원(중앙외사판공실 주임)과 친강 외교부장(장관)을 모두 만났다. 반도체 문제, 대만 문제 등 양국 간 핵심 이슈에 대해서는 서로의 강경한 입장 차이를 거듭 확인했지만, 국가 명운을 건 전략 경쟁을 벌이고 있는 미국과 중국이 대화를 통해 위험 관리를 하기로 한 것은 상당한 진전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블링컨 장관의 방중은 시작부터 험난했다. 애초 지난 2월 초 추진되다가 중국산 고고도 기구가 미국 영공에서 발견되면서 취소됐고, 이달 들어서는 중국의 쿠바 도청기지 설치 의혹이 제기되면서 흔들렸다. 하지만 미국이 적극적으로 밀어붙이면서 5년 만의 미 국무장관의 방중이 성사됐다. 대중국 압박 정책을 펴더라도 위기관리를 위해 양국 간 소통 채널이 필요하다는 바이든 대통령의 의지가 반영됐다.
중국은 미지근한 태도로 끝까지 미국의 의사를 확인한 뒤 문을 여는 소극적인 자세를 보였다. 지난해 안정적인 5년 임기를 확보하고, 최근 중동 문제 등에서 깜짝 성과를 내고 있는 시 주석으로서는 미국과 대화가 덜 시급했던 것으로 보인다. 시 주석과 블링컨 장관의 만남도 실제 회담이 이뤄지기 한 시간 전에야 발표됐으며, 시 주석은 긴 테이블 두개를 양쪽에 놓고 가운데에 홀로 앉았으며, 한쪽에 블링컨 장관 등 미국 쪽 일행을 앉게 했다. 시 주석이 상석에 앉아 회의를 주재하는 듯한 모습이었는데, 2013년 존 케리 그리고 2017년 렉스 틸러슨 장관, 2018년 마이크 폼페이오 등 역대 미국 국무장관이 시 주석과 만날 때 서로 비교적 대등하게 마주 앉았던 모습과는 달랐다.
양국 정상의 대화 의지가 확인되면서, 둘이 언제 직접 대화를 할지에 관심이 쏠린다. 오는 9월 인도 뉴델리에서 열리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와 11월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아펙) 정상회의가 거론된다. 특히 시 주석이 미국을 방문한 것은 2017년이 마지막인데, 시 주석의 11월 아펙 회의 참석을 놓고 양국 간 줄다리기가 예상된다.
이번 방중 결과를 놓고, 미-중 간 주요 문제가 전혀 해결되지 않았다는 지적도 있다. 군사 분야에 대한 합의가 이뤄지지 않았고, 반도체 문제나 대만 문제 등 양국의 핵심 이슈에 대해서도 큰 입장 차이를 확인했다는 것이다. 특히 왕이 위원은 지난 19일 블링컨 장관을 만나 반도체 문제와 대중 제재 등에 대한 불만을 쏟아냈고, 시 주석도 “미국이 중국을 존중해야 한다”고 쓴소리를 했다. 블링컨 장관 역시 19일 저녁 주중 미국대사관에서 한 기자회견에서 대만해협 안정의 중요성과 중국 정부의 인권침해 문제, 디리스킹 정책 등에 대해 언급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는 미·중이 국가 명운을 건 전략 경쟁을 벌이는 상황에서 불가피한 것으로 보인다. 양국의 핵심 이익이 걸린 문제에서, 더군다나 대화가 끊긴 가운데 한쪽의 극적인 양보나 돌파구가 나오긴 어려운 상황이다. 커린 잔피에어 백악관 대변인은 19일 회담 결과를 설명하며 “우리는 중국과 치열하게 경쟁하겠지만 갈등으로 비화하지 않게, 경쟁을 책임감 있게 관리할 것”이라고 했다. 중국 역시 미국과 공존을 강조한다. 시 주석은 블링컨 장관을 만난 자리에서 “지구는 중국과 미국이 각자 발전하고 공동 번영할 정도로 넓다”고 말했다.
베이징/최현준 특파원
haojun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