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새 국왕 찰스 3세와 왕비 커밀라가 9일 런던 버킹엄궁에 도착해 전날 숨진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을 추모하는 조화 행렬을 살펴보고 있다. 런던/UPI 연합뉴스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서거로 8일(현지시각) 아들 찰스 3세가 영국 왕위에 오르면서 왕비 커밀라(75)의 굴곡 많은 인생도 새삼 주목을 받게 됐다.
커밀라는 엘리자베스 여왕의 큰 아버지인 에드워드 8세가 미국인 이혼녀 월리스 심프슨과 사랑을 이루려 왕위를 포기한 것으로 시작된 현대 영국 왕실의 스캔들 역사에서도 정점에 위치한 인물이다. 커밀라는 지난 수십여년 동안 다이애나와 결혼했던 찰스와 염문, 찰스와 다이애나와 이혼, 다이애나의 죽음, 이후 찰스와 재혼에 이르기까지 영국 왕실을 전 세계 언론과 대중의 화젯거리로 만들었다.
이 때문에 커밀라는 결혼 뒤 이름인 ‘커밀라 파커 볼스’로 대중들에게 각인되며 찰스 왕세자 부부의 관계를 파탄으로 몰고 간 ‘결혼 파괴자’로 악마화됐다. 생전에 다이애나도 <비비시>(BBC)와 유명한 인터뷰에서 “이 결혼에는 우리 3명이 있다”며 자신과 찰스, 그의 오랜 연인인 커밀라를 지목했다. 다이애나는 커밀라를 덩치 크고 사나운 독일 개인 ‘로트바일러’라고 불렀다고 전해진다.
1947년 런던에서 태어난 커밀라는 부유한 상류층 가정의 전통적 양육을 받았다. 결혼 전 이름은 커밀라 로즈멜리 섄디였고, 할아버지는 애쉬콤 3대 남작인 롤런드 커비트였다. 커밀라는 스위스와 프랑스에서도 교육을 받은 뒤, 잉글랜드 남부 서식스의 전원 영지에서 지냈다.
자신감 있고 매력적이었던 커밀라는 1970년대 초 폴로 경기에서 2살 연하인 찰스 왕세자를 처음 만났다. 둘은 곧 친밀한 관계가 됐다. 하지만, 커밀라는 찰스가 자신에게 결코 결혼 제안을 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고, 영국 육군 장교 앤드류 파커 볼스와 1973년에 결혼했다. 그의 결혼식에 엘리자베스 여왕의 동생인 마거릿 공주, 찰스의 여동생인 앤 등 왕실 가족들도 참석했다. 커밀라는 두 명의 남매를 낳았는데, 큰아들 톰 파커 볼스의 대부는 찰스였다.
둘은 각각 결혼한 뒤에도 관계를 이어갔다. 찰스는 1981년 다이애나와 세기의 결혼식을 한 뒤에도 커밀라와 만남의 끈을 놓지 못했다. 둘의 밀애는 영국 타블로이드 신문의 집중적인 먹잇감이 됐다. 그들의 전화통화 내용이 날것 그대로 보도된 적도 있다. 이는 결국 찰스와 다이애나의 관계를 파국으로 몰고 갔다. 커밀라 자신의 결혼생활도 파탄에 이르러 1995년에 이혼하게 된다. 커밀라의 이혼으로 찰스 왕세자 부부의 불행했던 결혼생활도 마침내 종지부를 찍는다. 커밀라가 홀로된 지 1년 뒤인 1996년에 왕세자 부부는 이혼했다.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이 버킹엄궁에서 주최한 한 행사에 참가한 찰스 왕세자와 부인 커밀라의 모습. 8일 여왕이 숨지며 둘은 왕과 왕비가 됐다. 로이터 연합뉴스
다이애나는 이혼한 지 1년만인 1997년에 파리에서 이집트 출신의 부호 도티 알파예드와 만나다가, 자신들을 쫓는 파파라치들을 피하는 도중에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다이애나의 불행으로 인해 여론은 다시 커밀라를 악마화했다. 하지만, 찰스와 커밀라는 관계를 신중하게 유지했고, 점차 공식화해 나갔다. 두 사람은 사실상 남편과 부인으로 생활했다.
찰스와 커밀라는 1999년 처음 공식 석상에 함께 모습을 드러냈다. 결국 두 사람은 2005년 4월9일 윈저의 교회에서 엘리자베스 여왕이 참가한 가운데 결혼했다. 두 사람이 이혼한 전력이 있어서, 교회에서 결혼할 수 있는지 논란이 있었다. 특히, 찰스가 왕위에 오른 뒤 영국 국교회의 수장이 될 수 있을지도 논란거리였다. 어쨌든 결혼식은 영국 대중들의 큰 관심과 환호를 자아냈다. 2만명의 군중이 결혼 뒤 윈저 성으로 가는 이들을 축복했다.
결혼 뒤 콘월 공작부인으로 불린 커밀라는 곧 영국 왕실의 일원으로 안착한다. 특히, 찰스와 다이애나 사이에 태어난 윌리엄과 해리 왕자가 커밀라를 새어머니로 인정했다. 해리는 2005년에 “사악한 계모”라는 커밀라의 이미지를 일축했다. 그는 커밀라가 “놀라운 여인이고 그가 우리 아버지를 매우, 매우 행복하게 해주고, 그것이 가장 중요한 것”이라고 말했다. 또 “윌리엄과 나는 그녀를 대단히 사랑한다”고 강조했다.
찰스와 결혼한 커밀라는 자신의 어머니가 앓은 골다공증 퇴치 캠페인을 벌이고, 북클럽 등을 운영하며 사회 활동을 했다. 엘리자베스 여왕은 즉위 70주년이던 올해 초 찰스가 왕위에 오르면 커밀라도 ‘왕비’(Queen Consort)로 불리기를 희망한다고 발표했다. 커밀라의 향후 지위에 대한 오랜 논란에 종지부를 찍은 것이다.
정의길 선임기자
Egil@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