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참석차 인도네시아 발리를 방문 중인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오른쪽)이 16일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가운데)과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이 듣는 가운데 안제이 두다 폴란드 대통령과 통화하고 있다. 이번 통화는 전날 러시아에서 발사된 것으로 추정되는 미사일 2기가 폴란드 영토에 떨어져 2명이 사망한 데 따른 것이다. 연합뉴스
15일 저녁 7시40분. 러시아의 미사일이 폴란드 영토에 떨어져 2명이 목숨을 잃었다는 <에이피>(AP) 통신 속보가 떴다. 전 유럽이 경악했다. ‘정말 러시아군이 쏜 미사일이 폴란드를 타격한 것인가.’ <비비시>(BBC) 등 주요 외신들은 전 유럽과 세계를 파멸로 이끌 ‘확전’이라는 불길한 시나리오를 머릿속에서 지우려 애쓰며 속보에 속보를 쏟아냈다.
피해를 입은 폴란드는 1949년 만들어진 군사동맹인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회원국이다. 역사적으로 러시아·소련의 안보 위협에 시달려온 이 나라는 냉전이 해체된 뒤인 1999년 동유럽 국가 중에서 가장 먼저 나토에 가입했다. 나토 헌장 5조는 ‘한 나라에 대한 공격을 회원국 모두에 대한 공격으로 간주’해 대응하도록 못박고 있다. 러시아가 폴란드에 ‘의도적 공격’을 가한 것이라면, 나토 회원국들이 힘을 합쳐 이에 맞서야 한다. 이는 지난 9개월 동안 진행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러시아-나토 전쟁으로 확전된다는 의미였다.
이번 사태를 불길하게 볼 수밖에 없는 이유는 또 있었다. 러시아는 이날 남부 주요 도시 헤르손을 빼앗긴 데 대한 보복으로 우크라이나 전역에 100발 넘는 미사일을 퍼부었다. 이 미사일 중 하나가 폴란드 영토에 떨어졌다면…. 경악한 폴란드 정부는 재빠르지만 신중하게 움직였다. 일단 저녁 8시 긴급국가안보회의를 소집했다. 안제이 두다 폴란드 대통령은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등 나토 주요국 정상들과 전화 회담을 시작했다. 사안의 심각성 때문인지 우크라이나와 러시아도 ‘성명전’에 돌입했다. 우크라이나는 이 비극이 ‘러시아의 소행’이라 주장했고, 러시아는 ‘우크라이나가 꾸민 짓’이라고 반박했다.
첫 보도가 나온 뒤부터 약 7시간 반,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 참석하던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이 입을 열었다. 발리 현지 시각으로 16일 오전 9시53분, 중부 유럽 시각으로 16일 오전 2시53분이었다. 바이든 대통령은 “궤적을 볼 때 러시아에서 발사된 게 아닌 것 같다”고 말했다. 이후 옌스 스톨텐베르그 나토 사무총장이 기자회견을 열어 “러시아의 공격을 막으려던 우크라이나 방공 시스템 때문에 발생한 일”이라며, “러시아 역시 나토를 공격할 의도가 없는 듯하다”는 ‘예비 결론’을 내렸다. 전세계를 3차 세계대전의 공포에 빠뜨린 폴란드 미사일 사태가 마무리된 순간이었다.
하지만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16일 “그것은 우리 미사일이 아니다. 우리가 요격한 게 아니다”라는 주장을 이어갔다. 하지만 밤엔 태도를 조금 누그려뜨려 “우크라이나 전문가들이 조사에 참여해 협력국들이 볼 수 있는 정보를 확인하고, 미사일 폭발 현장에 접근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번 위기는 완전히 해소되지 않았다. 전쟁이 계속되는 한 언제든 같은 일이 벌어질 수 있다. 15일 밤에서 16일 새벽으로 이어진 시간엔 ‘인류의 이성’이 작동했지만, 다음번 위기 땐 누군가 돌이킬 수 없는 ‘오판’을 저지를지도 모른다. 벌써 10만명 넘는 이들이 죽거나 다쳤다. 이제 전쟁을 멈춰야 한다.
베를린 노지원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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