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틴과 러시아 정보기관 개입 여부 놓고 시끌
여기자 청부 살해와 옛 스파이의 독극물 중독, KGB 배후설 등 마치 첩보영화를 방불케하는 미스터리 사건이 영국 런던 한복판에서 벌어졌다.
러시아의 전 비밀경찰 간부 출신으로 2000년 영국에 망명한 알렉산드르 리트비넨코(43)는 지난 1일 런던의 한 식당에서 이탈리아인 마리오 스카라멜라를 만나 식사한 뒤 귀가하자마자 쓰러져 병원으로 옮겨졌다. 그는 지난달 청부살해된 러시아 여기자 안나 폴리트코프스카야 사건 자료를 넘겨주겠다는 제보를 받고 스카라멜라를 만났다.
병원 검사 결과, 유독성 화학물질인 탈륨 중독이 확인됐다. 리트비넨코는 현재 중환자실에서 집중치료를 받고 있다. 탈륨은 신경이나 장기의 치명적인 손상을 가져오는 독극물로 과거 변절 스파이를 제거하는 용도로 사용되어 왔다.
리트비넨코는 러시아 여기자가 청부살해된 뒤 공개적으로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살인 배후라고 주장했다. 3년 전엔 300명 이상이 사망한 1999년 모스크바 아파트 폭파 사건을 KGB의 후신인 연방보안부(FSB)가 저질렀다고 폭로하는 는 책을 펴내기도 했다.
리트비넨코와 함께 비밀경찰 활동을 했던 그의 지인들은 러시아 정보당국 개입설을 주장하고 있다. KGB 런던 분실장이었던 올레그 고르디에프스키는 “국가가 주도한 독극물 기도”라면서 “오직 러시아 정보당국만이 저지를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한 것으로 <더타임스>는 보도했다.
역시 옛 비밀경찰이었던 알렉산드르 골드파브는 리트비넨코가 스카라멜라를 만나기 직전 런던 중심부 호텔에서 모스크바에서 온 2명의 러시아인을 잠깐 만났다면서, 이 때 리트비넨코가 마신 차에 독극물이 뿌려졌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여기자 살해에 관련된 것으로 보이는 연방보안부 요원들의 이름 몇이 적힌 서류를 리트비넨코에게 전달했던 스카라멜라는 독극물 중독이 알려진 뒤 곧바로 로마에 있는 영국대사관에 자진 출두했다고 외신은 전했다. 크렘린 쪽은 골드파브 등의 주장에 대해 “허무맹랑한 이야기여서 언급할 가치조차 없다”고 일축하고 있다.
강성만 기자 sungm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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