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KGB대령 부부 보복살해 시달려
조국을 등진 반체제 인사를 겨냥한 독극물 암살 기도?
<007> 같은 첩보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비정한 암살이 시도됐다는 정황이 드러나 유럽 언론들의 비상한 관심을 모으고 있다. 영국 <비비시>(BBC)와 <데페아>(dpa) 통신 등은 27일 “독일 베를린 검찰이 러시아 반체제 인사 부부가 누군가에 의해 독극물에 중독됐을 가능성에 대해 수사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피해자들은 옛 소련 국가보안위원회(KGB)의 전직 대령 빅토르 칼라시니코프(58)와 그의 아내이자 역사학자인 마리나로 이들은 1990년대 후반부터 프리랜서 언론인으로 활동하며 여러 매체에 러시아 정부를 비판하는 글들을 기고해왔다. 칼라시니코프는 소련 시절 국가보안위원회 요원으로 브뤼셀·빈 등지에서 활동했다. 이들은 처음에는 러시아 국내에서 활동했지만 국가보안위원회 후신인 러시아 대외정보국(SVR) 요원들로부터 ‘당신은 블랙리스트에 포함돼 있다’ ‘피의 보복을 당하게 될 것이다’라는 등의 협박을 당한 뒤 2004년부터 우크라이나, 폴란드, 에스토니아 등을 전전하며 글을 써왔다.
영국 <더타임스>는 최근 “이들이 심한 불안증세와 두통 및 척추 통증 등에 시달리고 있다”고 보도했다. 베를린에 체류중인 이들 부부는 지난달 검진 결과 혈액에서 정상인보다 수십배 많은 수은이 검출된 것으로 확인됐다. 남편은 몸무게가 수십㎏이나 빠졌고, 부인도 머리카락이 반이나 빠진 상태인 것으로 전해졌다. 베를린 검찰청 대변인은 “이 사건은 정치적 동기에 의해 이뤄진 범죄를 다루는 부서에서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며 “부부가 의도적으로 독극물에 중독됐는지 여부를 가려낼 것”이라고 말했다.
<비비시>는 “2006년에는 전 러시아 요원인 알렉산드르 리트비넨코가 방사능 독극물에 의해 런던에서 살해당한 적이 있다”며 “영국 검찰은 이번 사건에 전 국가보안위원회 요원 안드레이 루고보이가 개입돼 있다고 보고 있다”고 전했다.
길윤형 기자 charism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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