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등 이탈리아 ‘국채 매입’ 공동지원 논의
세계경제 역관계 변화 상징…‘말잔치’ 그칠수도
세계경제 역관계 변화 상징…‘말잔치’ 그칠수도
거대 신흥국들이 부채위기에 시달리는 유럽을 구조하기 위해 나섰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세계 경제에서 기존 선진국과 신흥국의 변화된 힘 관계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조처다.
기두 만테가 브라질 재무장관은 13일 거대 신흥국들이 유럽의 부채위기 해결을 돕기 위해 공동 지원을 제안할 수 있다고 밝혔다. 만테가 장관은 다음주 미국 워싱턴에서 열리는 국제통화기금(IMF) 회의에 앞서 22일 브릭스(BRICS), 즉 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재무장관과 중앙은행 총재가 모여 이 문제를 논의할 것이라고 밝혔다.
중국은 이미 이탈리아 국채 매입을 놓고 협상에 들어갔다. 원자바오 중국 총리는 14일 중국 랴오닝성 다롄에서 열린 하계 다보스 포럼 개막 연설에서 중국은 전세계의 성장을 위해 “새로운 공헌을 할 수 있다”며 “유럽에 대한 투자를 계속 확대하겠다”고 약속했다. 원 총리는 “중국 경제가 전세계 경제의 활발하고, 지속 가능하며 균형 잡힌 성장에 새로운 공헌을 할 수 있다고 확신한다”고 말했다.
2008년 월가발 금융위기 당시 중국은 대규모 국내 경기부양을 통해 세계 경기 회복을 떠받쳤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특히 3조2000억달러나 되는 외환보유고의 대부분을 미국 달러와 국채에 묻어둔 중국은, 이탈리아 국채 매입이 외환보유고를 다원화한다는 전략적 목적과 세계 경제에서의 위상 제고라는 목적에 부합된다. 원 총리가 “유럽연합과 유럽 주요국 지도자들은 중국과의 관계를 전략적인 관점에서 봐야 한다”고 강조한 것에서도 중국의 의도가 드러난다. 1970~80년대 금융위기 빈발국이던 브라질은 이제 식민 종주국 포르투갈을 지원할 수 있을 정도로 완전히 역전된 자리에 섰다.
신흥국들은 외환보유고를 동원해 이탈리아 등 유럽 부채위기 국가들의 국채를 매입하는 방식으로 지원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신흥국들의 유럽 부채위기국 국채 매입은 상징적 수준에 그칠 것으로 예측된다. 에스와르 프라사드 코넬대 교수는 “신흥국들이 단결해 1000억달러 정도의 지원을 할 수는 없을 것”이라면서도 “다만 신흥국들이 이들 국가의 국채를 사는 공개적인 쇼는 약간이나마 자신감 회복을 줄 것”이라고 내다봤다. <월스트리트 저널>은 신흥국들이 도움을 주는 위치에 있다는 사실 자체가 최근 글로벌 경제의 엄청난 변화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브릭스의 유럽 지원이 말잔치로 끝날 우려도 없지 않다. 브릭스는 신흥국 몫의 확대에는 같은 목소리를 내면서도, 국제통화기금 총재 선출에서 다른 행보를 보이는 등 실제로는 이해관계를 달리해왔다. 유럽 지원이 빛을 발하려면, 가장 여유가 있는 중국이 유럽 국채 매입 규모를 늘려야 하는데 벌써부터 중국 내부에서 반대 목소리도 크다. 중국 인민은행 통화정책위원회 위원인 리다오쿠이 칭화대 교수는 유럽 국채 위기가 더 악화될 가능성이 있다며, 중국이 맹목적으로 이탈리아 국채를 매입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한편 이탈리아 하원은 14일 모두 542억6500만유로(약 82조원)의 재정 감축안을 승인했다고 이탈리아 뉴스 통신 안사(ANSA) 등이 보도했다. 재정 감축안은 2013년까지 균형 재정을 이루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으며, 연간 소득 30만유로 이상의 고소득층에 대한 3% 추가소득세(부유세) 부과, 부가가치세율을 20%에서 21%로 인상, 민간부문 여성 근로자의 은퇴 연령 65살로 연장 등의 내용이 추가됐다. 정의길 선임기자, 베이징/박민희 특파원 Eg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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